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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을 두는 것'의 힘

유앤미나 2016. 8. 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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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을 두는 것'의 힘   

입력 2016-08-03 오후 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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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나는 원고지와 만년필을 일단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만년필과 원고가 눈앞에 있으면 아무래도 자세가 '문학적'이 되어버립니다. 그 대신 붙박이장에 넣어두었던 올리베티 영자 타자기를 꺼냈습니다. 그걸로 소설의 첫 부분을 시험 삼아 영어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아무튼 뭐든 좋으니 '평범하지 않은 것'을 해보자, 하고. 
물론 내 영작 능력이라야 뭐, 뻔하지요. 한정된 수의 단어를 구사해 한정된 수의 구문으로 글을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장도 당연히 짧아집니다. 머릿속에 아무리 복잡한 생각이 잔뜩 들어 있어도 그걸 그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요. 내용을 가능한 한 심플한 단어로 바꾸고, 의도를 알기 쉽게 패러프레이즈 하고 묘사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전체를 콤팩트한 형태로 만들어 한정된 용기에 넣는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몹시 조잡한 문장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가며 문장을 써 내려가는 동안에 점점 내 나름의 문장 리듬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49쪽)
 
 
(예병일의 경제노트)
 
'제한을 두는 것'의 힘은 강합니다. 스스로 일부러 한계를 설정해 단순화시키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른 살 때 첫 소설을 자신이 운영하던 카페 주방의 식탁에 앉아 썼습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습니다. 그런데 다 쓴 것을 읽어보았더니 자신이 생각해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재능이 없다고 느껴 깨끗이 포기하려다, 마음을 돌렸습니다.
"어차피 멋진 소설은 쓸 수 없어. 그렇다면,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기성관념은 버리고 느낀 것,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써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쓴다는 것도 당연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루키는 원고지와 만년필을 내려놓고, 영자 타자기를 꺼내 시험삼아 소설을 영어로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의 영작 능력은 뻔했다고 합니다. 한정 된 수의 단어와 구문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고, 문장도 짧아졌습니다.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군더더기를 덜어낼 수 밖에 없었지요.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영어 능력에 맞춰 '한정된 용기'에 글을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영어로 쓴 한 장 분량의 문장을 일본어로 '번역'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하루키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체를 발견해냈습니다. 이후 하루키는 그런 식으로 일본어로 소설을 썼습니다. 
 
사실 외국어로 소설을 쓰는 것이 하루키가 처음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몇 명이 있지요.
헝가리 출신의 작가인 아고타 크리스토프. 그녀는 1956년의 헝가리 혁명 때 스위스로 망명해 거기서 소설을 썼습니다. 그런데 헝가리어로 소설을 써서는 도저히 먹고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후천적으로 학습한 외국어로 소설을 쓴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녀는 외국어를 창작에 사용해 새로운 문체를 고안해냈고, 좋은 작품을 여럿 남겼습니다. 
짧은 문장을 조합하는 리듬감, 번거롭게 배배 꼬지 않는 솔직한 말투, 자신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적확한 묘사, 그러면서도 원가 아주 중요한 것을 일부러 쓰지 않고 깊숙이 감춰둔 듯한 수수께끼 같은 분위... 하루키는 자신이 그녀의 소설을 읽어보고 거기서 뭔가 그리움 같은 것을 느꼈던 게 그런 그녀의 문체 때문이었다고 말했더군요.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스스로 '제한'을 설정해 보세요. 그러면 의외로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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