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한 지도자는 보통의 사회적 관계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에게서는 슬픔의 흔적이 느껴진다. 크나큰 야망을 지닌 채,숭고한 목적을 위해 인간적 교우 관계를 포기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슬픔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실없는 행동을 하도록 용납하지 않으며,단순한 행복감이나 자유로움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대리석과 같다.
고결한 지도자는 자신의 본성으로 국민들에게 커다란 혜택을 주는 일을 하라는 소명을 받는다. 그는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부과하고 공적 기능을 행하는 데 스스로를 헌신한다. 고결한 지도자의 큰 그릇은 공적-정치적 삶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정치와 전쟁만이 최고의 희생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최고의 재능을 이끌어 낼 만큼 충분히 규모가 크고, 충분히 경쟁적이고,충분히 중대한 무대다. (233쪽)
(예병일의 경제노트)
20대 국회가 시작됐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국민에게 깊은 실망을 주고 있습니다. 계속 드러나고 있는 법조와 군의 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된 지도층을 가질 수 없는 것인가...
조지 마셜.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그는 마셜플랜, 즉 유럽부흥계획의 제창자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참모총장을 지냈고, 전후에는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지냈지요. 마셜플랜으로 1953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삶을 지배한 것은 절제력과 통제력이었습니다.
마셜은 군인 시절 가슴이 무슨 광고판이라도 되는 것처럼 각종 훈장을 잔뜩 단 군복은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순하고 수수한 군복을 좋아했습니다.
CBS 종군기자 에릭 세버레이드는 그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몸집이 크고 수수한 느낌을 주는 이 사내는 눈부신 지적 능력의 소유자인 동시에 비범한 천재,진실한 그리스도교 성인을 연상시킨다. 그가 내뿜는 제어된 힘의 분위기는 그 앞에 선 누구라도 악해지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임무에 대한 그의 사심 없는 헌신은 공적 압박이나 사적 우정의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마셜은 195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마지막 입원을 하자, 드골, 마오쩌둥, 장제스, 스탈린, 티토 등으로부터 쾌유를 비는 편지가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세 번이나 문병을 왔고, 트루먼도, 당시 여든 네 살이었던 윈스턴 처칠도 문병을 왔습니다.
그의 참모부장이었던 톰 핸디 장군이 장례식 문제에 대해 묻자, 마셜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걱정은 할 필요 없네. 필요한 지시사항은 이미 다 남겨 놨으니까."
그가 죽은후 그 지시사항이 공개됐습니다.
"간소하게 매장해 달라. 조국을 영예롭게 섬긴 평범 한 미군 장교와 다름없이. 수선 떨지 말고. 거창한 의식 같은 것도 금지. 장례식은 짧게. 장례식 손님은 가족들만. 무엇보다도 조용히 장례식을 치르도록."
그의 엄명에 따라 국장을 거행되지 않았고, 장례식에는 가족과 몇몇 동료들, 그리고 오래된 그의 이발사가 참석했습니다.
마셜은 자신의 진실성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즉시 호감을 사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정치판에 대해서도 군인다운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앞에 소개해드린 데이비드 브룩스의 표현이 떠오릅니다.
"고결한 지도자는 보통의 사회적 관계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에게서는 슬픔의 흔적이 느껴진다. 크나큰 야망을 지닌 채,숭고한 목적을 위해 인간적 교우 관계를 포기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슬픔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실없는 행동을 하도록 용납하지 않으며,단순한 행복감이나 자유로움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대리석과 같다."
계속 실망을 주고 있는 공공 분야의 지도층들을 바라보며, 절제력과 통제력을 갖춘 '고결한 인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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