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처세술 (2) / 김금자
예술의 세계라고 다를 바 있을까.
그러한 그림을 그리기까지 얼마나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는 일을 해야만 했을까.
글이나 그림도 바보 같은,
즉 천진한 마음이 아니고는 좋은 그림도 좋은 글도 나오지 않는 것이라는 말도 된다.
물욕과 명예욕도 다 털어낸 빈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때
그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일 게다.
그것도 또한 바보 처세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 들어 물건을 놓은 자리를 까맣게 잊어먹기도 하고 때론 훤히 알던 길도 헤맬 때가 있다.
며칠 전 서면 지하철에서이다. 다른 차선을 갈아타는 곳 찾느라고 몇 십 분을 뺑뺑이를 돌고 헤매었다.
갑자기 겁나고 캄캄해지기도 했다.
길 잃은 아이같이 놀란 얼굴로 왔다 갔다 하는 내가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여러 가지로 심각하다면 참 심각한 증세에 시달린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먹는다.
내 의지로는 마음을 비우지 못하니
하나님은 그 방법 중 하나로 자꾸 했던 일을 잊어 먹게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또 눈도 침침하게 하여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말게 하고 귀도 닫힌 듯 멍하게 하여
세상소리를 잘라버리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생각을 그런 쪽으로 돌리고 나니 한결 편안해 지는 것이다.
잊어버리면 잊은 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눈 비비고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살자고 마음 먹는다.
아프면 아픔까지도 버리려 말고 받아들이자는 쪽이다. 일종의 바보 처세술을 끌어들이자는 생각이다.
좀 억지 같지만 그렇게 하면 덜 우울하고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이다.
바보는 잘 웃는다. 항시 입을 헤벌쭉 벌리고 누가 창피를 주어도 또 놀리고 아프게 해도 헤 웃는다.
꺼벙이 아저씨도 늘 웃고 있다.
그 웃음은 물건을 팔아주어 고맙다는 그런 의미의 미소도 아니다. 대가도 없는 그저 그냥 웃는 것이다.
그의 눈엔 악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모든 게 자기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정말 처세술다운 처세술은 바보가 아니라 정말 바보 같은 바보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