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각, 이 순간은 참으로 행복하구나.’
어쩌면 나는 이러한 시간을 갖기 위해 이곳에 더 오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이곳은 월악산 계곡, 한 농막의 작은 뜰이다.
이곳에 서서 보석 처럼 빛나는 밤하늘의 별과 소근 소근 정담을 나눈다.
여기에서 쳐다본 별들은 어느 날
전율을 느끼듯 섬광 처럼 가슴에 닿은 것이 벌써 오래전 일이다.
밤잠을 설쳐 잠시 뜰에 나왔다 우연히 쳐다본 하늘이었다.
그때 난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었다.
아주 어린 시절 멍석 위에 누워 바라본 밤하늘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오두막은
동생의 소유로 되어있어 심신이 피곤 할 때면 쉼터로 찾기도 하고
형제들의 모임 장소로도 이용되어 한해 네댓 차례 이곳을 들르게 된다.
그때마다 한 밤중, 이 작은 뜰에 나와 밤하늘을 쳐다보며 이야기한다.
그러노라면 의례히 ‘저 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 ......’
별 노래를 아주 작게 허밍으로 부르며
저 세상으로 간 인연들과 내밀한 언어들을 주고받는다.
그들이 나보다 먼저 갔지만
저 드넓은 우주공간에 어느 별이 되어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아니 꼭 그럴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어머니, 외할머니, 편지친구 영,
그리고 생전에 본 적도 없고 주고받은 글 귀 한 구절 없었지만
사후 그의 글을 통하여 진실, 감성, 가치관 등이 너무나 나와 비슷해
동질성을 진하게 느낀 또 한사람의 얼굴도 있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그들이 없다면 나는 아주 살벌한 벌판에 홀로 선 듯 참으로 외로울 것이다.
그래. 언젠가 내가 이 생이 다하는 날엔
아마도 먼저 간 저들이 양팔 벌려 나를 반겨 줄 것만 같은 생각에
때로는 저 세상이 그렇게 무섭지 않게 느껴 질 때도 있다.
어디 이뿐인가 !
저 무한대의 하늘을 보면
우리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가를 새삼 느끼게 되고
지금의 삶도 자연스레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언젠가 부터 화두처럼 끈질기게 내 의식에 자리 잡은 나는 누구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라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정체성의 문제까지, 끝없는 사유의 뜰을 넓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시간들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
수년전 캐나다 여행 때, 밤 비행기에서의 일이다.
한 밤중 갈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모두는 잠들어있었고 희미한 전등불이 겨우 사물의 윤곽을 들어낼 뿐이었다.
나는 몸이 뒤틀리고 갑갑해서 살짝 창문을 밀쳤다.
아!
그런데 그 까만 하늘에서 초롱초롱한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그 때의 신선함은 정말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아! 여러분 그만들 자고 깨어나 저 밤하늘의 보석처럼 빛나는 별을 보라고요.’
소리치고 싶었지만 사실은 옆자리의 남편조차 깨우지 못했다.
홀로 대화하고 감격하면서 행복한 몇 시간을 보냈다.
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명저 중의 명저로 생각한다.
내가 교직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필독도서로 권하던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보통 어린이들만 읽는 동화로 아는데
나는 어른들도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별들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 때문이고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곳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 어른들은 혼자서는 스스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
그래서 아이들이 항상 시시콜콜 설명을 해주어야 하니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볼 수가 없어. 마음으로 찾아봐야지.”
“그가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 할 거야.”
참으로 명대사다.
지금 처럼 팍팍하고 혼탁한 세상살이에선
그 누구라도 이 책의 주인공 어린 왕자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아야한다고…….
밤하늘의 별도 세어야 한다고 …….
내 생애에 가장 슬픈 이야기, 그건 어머니와의 이별이었다.
세모시 옥색치마로 꽃단장하고 소풍가듯 집을 나섰던 어머니께서
의사의 실수로 주검이 되어 돌아왔을 때 막내 동생은 첫돌도 지나지 않았었다.
줄줄이 동생들을 다섯이나 남겨두고 그렇게 갑자기 가셨으니 그 애통함을 어찌 말하랴!
이후 오랫동안
나는 멀리서라도 병원표시인 열십자만 보아도 외면하고 다니는 버릇이 습관화 되었다
아마도 내가 이렇듯 별을 가슴에 묻은 일도 그때부터이지 싶다.
한 여름 그날
병풍 뒤의 어머니가 되살아 날 것 같은 환상에 몇 번이나 병풍을 들쳤고
그때마다 절망하며 뒤뜰로 나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울음을 삼킬 때, 내 앞으로 홀연히 나타난 어머니의 환영!
나는 그때 명멸하던 별 중 유난히 빛을 발하던 한 별을 가슴에 묻었다.
별은 순수며 진실이고 희망의 상징이다.
우리는 현실의 꿈도 꾸어야 하지만 영혼의 꿈도 꾸어야한다.
그 영혼의 꿈은 바로 현실의 바탕을 그리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도 보고 긴 꼬리를 가진 혜성이 하늘을 가르기도 하며
월식의 장엄한 신비가 연출되기도 하니 정말 얼마나 신비스러운가!
그 우주의 신비함에 동경심을 심어야 한다.
예부터 사람들은 별을 이용해 길흉화복을 점쳤고 자신들의 이야기도 새겼다.
수년전 어느 날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던 출가자의 이야기
명문대 출신들이고, 고시 합격생까지 포함한 그들이 낳아 길러준 어머니의 눈물과
약속된 명예와 돈과 권력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출가승이 된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들이 그 고행의 길로 들어선 이유는
아마도 부처님이 되어 영원한 자유의 길, 고뇌가 없는 그 해탈의 길로 들어서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보통 사람들의 의식으론 생각할 수 없는
그 용기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인생길!
길어 봐야 100년을 넘기지 못하는데, 어쩌면 그들이 현명한 것이 아닐까?
정말 깊은 산 계곡의 밤은 적막강산이다.
저만치 떨어진 높은 전봇대의 외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금빛으로, 또는 하얀 진주 빛으로 깜박인다.
이따금 컹컹 짐승의 울음소리인 듯 들리고 철철 물 흐르는 소리, 풀벌레 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이 밤 무척 외로울 것 같지만 행복한 밤이다.
그건 바로 이 우주 안의 나를 거듭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하늘의 그리운 사람들과 교감을 이루는 보이는 별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가슴의 별로 간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