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크랩]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유앤미나 2012. 7. 28. 22:06

시와 함께 떠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신정일 (문화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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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가슴 속엔 저마다의 풍경들이 살고 있다. 다양한 얼굴을 한 그 풍경들은 우리들을 추억에 잠기게 하거나, 우울하게 하거나 때로는 끝 모를 환희로 인도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의 삶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발 디딜 땅이 필요하고 기댈 나무가 필요하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풍경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풍경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신정일의 시선집 <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에는 참 많은 풍경들이 나온다. 그것은 시로, 사진으로, 때로는 작가의 입을 빌어 우리의 예민한 심장을 자꾸만 건드린다. 그리하여 결국은 책을 접고 창 밖, 어딘가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걸으면서 만나는 새로운 세상

“보름이나 한 달쯤, 전쟁터에 나선 전사처럼 죽기 살기로 걸어보라. 하루 이틀이 가고 대엿새가 지나면 밤이면 밤마다 바뀌던 꿈의 풍경이 비슷해질 것이다. 꿈 속에서도 계속 걸어가고, 길을 묻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 가을, 고즈넉한 산사와 한없이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中
그는 ‘걷는 사람’이다. 걷는다는 일상적 행위가 무슨 직업이라도 되느냐고 반문한다면, 적어도 그에게는 그렇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그는 걸으면서 역사를 공부하고, 지리를 익히며, 시와 글을 쓴다. 황토현 문화연구소의 소장이며 우리땅걷기 모임 대표이기도 한 신정일 씨는 길을 걸으며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한 운동을 쉼 없이 펼쳐왔다. 요즘도 한 달에 서너 번씩은 강으로 산으로 답사를 떠난다는 그의 여행 수단은 무조건 ‘걷기’이다. 엊그제 경주에서 돌아왔다는 그는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로 오른쪽 눈 주위를 다쳐 몇 바늘을 꿰맨 상태였다. 그러나 상처가 아물기도 전, 벌써 또 다른 답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의 걷기에 대한 열정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태백시에서 김포까지 한강변을 차로 달리면 8시간 반이 걸립니다. 같은 길을 걸으면 얼마가 걸리는지 아십니까? 16일이 걸려요. 요즘 사람들은 물론 이해를 못합니다. 차로 몇 시간이면 갈 거리를 십수 일씩이나 걸려 힘들게 가는 게 의미가 있겠느냐는 거지요. 그러나 차로 가는 길은 길이 아닙니다. 내가 내 발로 땅을 딛고 걷는 것이 길이지요. 그렇게 강가를 걷다 보면 매 순간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가 있어요. 그것은 드라이브와 비할 것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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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시가 되고, 시는 다시 풍경이 되고……

“나는 너무도 많은 세월을 떠돌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제 진정한 ‘떠남’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기도 하고 이제야 떠나고 돌아오는 의미를 알기 시작했는지도 모르지만 새삼스럽게 세낭쿠르의 <열두번째 편지>가 마음 속에 더 깊숙이 파고든다. ‘난 될 수 있는 한 방향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할 수 있는 한 길을 잃으려고 한다.’”
– 여름, 산은 가까워지고 바다는 하얗게 춤추네 中

 <다시 쓰는 택리지> 등 이미 다수의 저서를 낸 문화사학자이기도 한 신정일 씨는 원래 시인을 꿈꾸던 문학도였다고 한다. 300편의 습작시를 갖고 있지만 아직 공개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만큼 문학에 대한 애정이 깊은 그이기에 그의 발 닿는 아름다운 산천이 모두 ‘시’였으리라. “제가 시를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시 속의 배경이 되는 곳을 가게 될 때가 많습니다. 또 반대로 그 장소에서 너무나 어울리는 시를 찾게 되기도 하고 지난 추억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제 경험들이 좋은 시들을 이해하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의도한 바처럼 <자꾸만 그곳에 가고 싶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시인들의 친숙한 시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에세이, 또, 글과 너무 잘 어울리는 사진들이 결합된 최상의 앤솔로지가 되었다. “옛날 선비들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이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연 속에서 만나는 시의 아름다움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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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시인, 아름다운 여행은 계속되다

“내가 가장 먼 길을 걸어갔던 때가 아마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일 것이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당시 제일 부러운 것은 친구들이 입고 있던 중학교 교복이었다. 딴세상에 사는 것처럼 중학교에 간 아이들은 활기에 차 있었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들의 까만 교복만 보고도 괜히 주눅이 들어 그들을 피하곤 했다.” – 겨울, 첫눈이 내리면 내 어두운 마음도 하얘지고 中
신정일 씨는 공부 욕심이 참 많다. 그 동안 출간한 도서만해도 30권에 육박하는데다 그 분야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인터뷰 내내 그가 정확하게 인용하는 문구의 양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돈이 없어서 어렸을 때 학교를 못 다녔어요. 그래도 책을 좋아해서 이웃집에서 빌려 읽은 책만 해도 어마어마했지요. 절박한 상황에서 읽은 책이기에 아직도 이렇게 기억에 오래 남는가 봅니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아직도 배우려는 욕심이 남다르다. 언젠가 시인의 꿈을 꼭 이뤄볼 생각이라며 마음을 다잡는 신정일 씨. 그러나 다만 그 뿐이다. 그에게 길이 집이고, 하늘이 지붕이며 전국 곳곳에 있는 사찰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쉼터다. 서로 어우러져 한데 모여 바다로 나아가는 강물처럼 그는 오늘도 유유히 흘러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의 아름다운 여행이 계속되고 있다.


글, 사진 | 홍유진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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