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크랩] 바보 처세술 (1) / 김금자

유앤미나 2012. 7. 27. 14:17



바보 처세술 (1) / 김금자  
시장 가는 길목에 과일 파는 아저씨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꺼벙이라고 부른다. 
어제도 보니 어떤 아줌마와 잔돈 내어 주는 것을 몰라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만원 주고 6000원어치 과일을 샀으니 4000원 내어주면 될 일을 
그 꺼벙한 눈을 치켜뜨고는 되묻는 것이다. 
곁에서 보니 하도 딱해 4000원 내어 주면 맞네요, 하니 그제야 응응, 하며 거스름돈을 내어 준다. 
이곳에 물건 사는 사람은 거의가 알아서 돈을 지불하고 거스름도 받아간다. 
즉 셀프서비스로 사고 값을 지불해 간다. 
이 아저씨는 정말 그런 것도 계산 못할 만큼 셈에 둔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어벙한 행동을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그런데도 이 가게는 늘 사람이 붐빈다. 또한 치마처럼 두른 전대엔 늘 돈이 두둑하다. 
잘 차려놓은 가게보다 더 많은 과일을 판다.   그리고 늦게까지 파는 일 없다. 
적당한 양을 준비해 해질 무렵이면 덤을 듬뿍 얹어 주어 얼른 처분해 버린다. 
바보 처세술이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일종의 위장술로 바보가 아니면서 바보인 척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 중국 상인들이 상술로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하긴 요즘에도 어떤 회사에선 많은 자격증과 또 많은 경력을 가진 사람은 꺼려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법하겠다 싶다. 똑똑하면 회사에 득을 주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 계산이 빨라 주인이 전도되는 일도 있을 법도 하니까. 
아무튼 사람이 너무 똑똑하면 왠지 모르게 가까이 하기에 자못 조심이 되기도 하고 
또는 은근히 주눅도 들게 된다. 
혹 꺼벙이 아저씨도 그런 처세술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왜냐면 그렇게 모은 돈으로 바로 큰길가 새마을금고 자리 이층건물을 샀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바보는 아닌 듯도 싶은데 하는 양은 또 아니다.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그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겨울 숲을 연상케 한다. 
겨울 산은 여름내 울창하던 잎들을 다 떨어뜨리고 깡마른 몸뚱이를 숨김없이 다 드러내고 있어 
그야말로 가난한 숲이다. 마른나무 사이로 잿빛 하늘이 얼키설키 얼레빗처럼 엉켜 있다. 
그런 나무 아래 서서 하늘을 쳐다보면 빗살 같은 손을 쫙 펴고 있는 마른 가지가 처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성긴 가지 사이로 빈 하늘이 내려와 있어 더없는 여유로움으로 다가온다. 
꺼벙이 아저씨를 보면 그런 겨울 숲을 보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김기창 화백님 그림에도 ‘바보산수’라는 작품이 있다. 그분 그림 중 유독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 유명하기도 하다. 그는 자연 그대로 비어 있음을 잘 표현하는 작가이다. 
그 그림은 나 같은 눈에도 아이들 그림처럼 엉성한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아마 그 엉성함이 또 모자라는 듯한 것이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끌어들이는 게 아닐까 싶다. 
그 또한 처세술이라면 처세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성경에도 바울은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 했다. 
바보가 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가를 짐작이 가고도 남는 말이다.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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