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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소문

유앤미나 2008. 4. 9. 14:46



헛 소문(所聞)


1월 첫째 금요일에는
우리 교육관에 불이 난 날인데,
1월 마지막 금요일(金曜日)에는 나훈아 씨가
국민들 가슴에 불이 붙인 날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무대(舞臺)의 황제요,
영원한 오빠인 나훈아 씨에 대한
출처를 알 수 없는 괴담을
경찰이 조사하고
전 국민의 관심사로 등장하면서,

급기야 본인이 입장(立場) 표명식의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하니,
무슨 큰 국제회의보다
더 많은 700여명의 기자들이 몰렸다.

마침내 1년 여 만에 등장(登場)한 그는
놀랍게도 젊은 사람들도 소화하기
힘든 은발의 꽁지머리를 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환한 미소를 띠며
회견장으로 들어섰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이제 언론(言論)이
내 말을 들어줄 차례’라고 운을
띠우면서 그동안 세간에 떠도는 의혹들에 대해
낱낱이 해명을 했음에도 모든 것이
거짓이므로 해명할 것도 없다고
끝까지 항변을 했다.

남자들은 그의 몸매에 기가 죽었고,
여자들은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그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은
거침없는 말투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회견장을 사로잡는 그의
카리스마 앞에 열광(熱狂)하며 졸지에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그 날 기자회견을 통해
변명이든 해명이든 뭔가 의혹(疑惑)이
풀어지길 기대했는데 해명은커녕,

무슨 큰 공연(公演)을 본 듯
40년 동안 갈고 닦은 대스타의 포스를
느끼며 드라마와 같은 감동을 받고
돌아갔으니 어찌 혼돈스럽지 않았겠는가.


원래가 천부적인 꾼이었지만,
‘역시 나훈아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빈틈없는 그의 연출 앞에 사람들은
진실의 여부를 떠나서,

강하고 분명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극과 극의 반응(反應)들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그 날 그를 통해
사람들은 대리(代理)만족은 물론이요,

잠재되었던 무언가를 그가 대신
해명하는 것 같아,
쌓인 스트레스가 풀렸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치명적인 루머로 고통(苦痛) 받던
연예인들이 억울해하며 하는
해명성 기자회견과는
사뭇 달랐던 것은 그는 1시간 내내
격앙된 어조로 시종 기자들에게
호통을 쳤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괴(傀)소문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밝히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은 언론을
훈계하는 게 기자회견의 목적처럼 보였다.


이전과 다르게 지금은
언론 매체(媒體)가 너무나도 많다.
지상방송,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그리고
인터넷과 UCC 등 각종 매체에서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거기에다 미니홈피와 블로그까지 가세하여
사적인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通)해서
순식간에 기사화 할 수 있기에
얼마든지 어떤 이야기든지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기에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정보(情報)라는 것은
판단의 기준이나 성찰의 기회가 아니라,

단순히 가십성 수준밖에 되지 않기에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은
갈수록 더해 감을 누구도
부인(否認)할 수 없는 사실이 되고 있다.





나훈아 씨는 누구보다도 이러한
연예계 언론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분노(憤怒)했을지 모르겠다.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어떤 소문(所聞)이든지 상품적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에는,
유언비어가 순식간에 진실로 바뀌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활개 치며 다닐 때,
본인은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던 것이
여태껏 관례가 아니었던가.

지난해 12월에 방송된 ‘라인업’의
‘서해안을 살리자’ 편이 조작(造作)됐다는 글이
방송직후 인터넷에 오르면서 엄청난
파장(波長)을 몰고 왔다.

물론 나중에 어느 중학생이
재미삼아 올렸던 글이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익명(匿名)성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되 버렸다.





물론 이렇게 희생양이 되려고 해도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지 않고는 불가능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내 자신도
소문의 유포(流布)자가 될 수
있음에 조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소문을
별미(別味)로 여기며 오히려 즐기려 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유익(有益)에 따라
다르게 듣고 다르게 해석하는
구조적 모순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기억력(記憶力)과 관찰력이 형편없다.

똑 같은 것을 보았으면서도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이익에 따라
방송작가 이상으로 사건을
각색(脚色)해서 말하는
본능과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잠재된 자신의 상처와 한(恨)을
발산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문이 날 때
아무리 부인(否認)해도 소용이 없다.
살다보면 이렇게 억울(抑鬱)한
일을 당할 때가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문의 폭력과 맞서 싸워
이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그 때는 변명(辨明)하지 말고,
거짓의 폭풍이 잠잠해 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나는 나훈아 씨를 통해
오래 전에 읽었던 어느 일본작가의
책(冊)이 갑자기 생각났다.

어느 목회자가 같은 멤버 여성(女性)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온 교회에 퍼지자,
그는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교회를 사임하고
어느 공동체에 들어갔다.

3년이 지나자 모든 진실(眞實)은
자연스럽게 밝혀졌다.
그 교회는 그 목회자를 다시
초빙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왜 3년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안했는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처음에는 말하고 싶었지만,
기도 중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씀 앞에 꼬꾸라져
그를 믿고 기다렸습니다.’





말이 그렇지 실제(實際)
이런 일을 당하고서 무작정 진실이
드러나길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소문(所聞)은 빨리 퍼지지만,
진실만큼은 오래 갈 수
없음을 알기에
기다리면서 할 일이 있다.

그 일이란 나쁜 소문을 통해
먼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정말로 소문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
이전처럼 성실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 일이란
'발 없는 말(言)이 천리 간다.'는
속담(俗談)을
역발상으로 생각해 보면 된다.

곧 어떤 소문이 났다면,
모든 초점이 자신을 향할 때
소문과 다른 성실하고 진실(眞實)한 모습이
있다면 금방 또 소문을 타고
전해진다는 논리다.





나훈아 씨 기자회견 때
여러 가지 일로 놀라는 일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회견장에 들어설 때
61세 라는 나이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직도
건강하고 매력 넘치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이미 모든 루머는 거짓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듯 했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탄탄한 몸매와 구릿빛 나는
피부는 그가 평소에 얼마나 자기관리(自己管理)에
철저한 사람인가를 보여준 셈이다.
특별히 튼튼해 보이는 치아는 환상이었다.

이렇게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은
나쁜 소문의 진위(眞僞)를
가리기가 쉽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평소에 이런 식으로 자기관리를
잘 하는 사람에게 소문(所聞)과 같은 일이
오히려 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날마다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여,

그가 4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외적인 카리스마도 있겠지만
철저한 자기관리가
있었기에
루머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저도
오늘에 안주(安住)하지 말고
끝없는 도전으로

당신과
우리 멤버들에게
진실(眞實)한 모습을 보이게
하소서.


헛소문보다
불성실(不誠實)을 더 두려워하는
종이 되게 하소서.

2008년 2월 3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작가ꁾ해와달(장재국님) lovenphoto님 크로스맵(정기로의동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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