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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생 유감

유앤미나 2008. 4. 9. 13:35



변(便)선생 유감


국민 MC 유재석 씨가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어서 남은
휴지(休紙) 한 장을 엉덩이 사이에 붙이고
나온 일화를 소개함으로 일약
스타의 반열에 서게 됐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똥에 관한 에피소드는
그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무궁무진하다.
똥에 대한 뿌리 깊은 친화력(親和力)은
그 어떤 주제와도 비할 수 없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처럼 똥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關聯)이 있으면서도,

대화 중 가장 솔직하고 겸손한 자기표현으로
인정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주제다.


그만큼 똥은 부담 없는 친구모양
친숙하고 즐거움을 주는 기능과 함께,
건강 상태까지 체크할 수 있는
바로미터도 되고 있다.

똥은 우리 몸과 같이
70% 정도가 수분(水分)인데,
건강 상태에 따라 그 비율이 달라지면서
똥의 양과 모습 그리고 색깔이 달라지게 된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뛰는 변화는
똥의 양(量)에 있다.

똥도 산업화(産業化)를 거치면서 선진국일수록
육식과 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하면서
배변량은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나 서유럽인 경우에는
하루에 100~200g의 변을 배출하는데,
아프리카 파푸아뉴기니 족은 지금도
하루에 1kg에 이른다고 한다.





똥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면서
더럽다고 피하지만,
알고 보면 이것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

하지만 똥은 이렇게
건강의 척도가 되기도 하지만,
건강과 비할 수 없는 인생(人生)에서도
여러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똥은 철저(徹底)하게
날마다 버려져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똥을 영어로 덩(dung)이라고 부르는 것에
친근감이 든 것은 우리말과 어감도
비슷하고 또 물에 떨어질 때
소리도 유사(類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권에서의 똥이란
음식을 소화하고 남은 찌꺼기라는
의미로 분(糞)이나 변(便)이라고 부른다.

‘덩’이든 ‘변’이든 똥은 분명
먹다 남은 찌꺼기이므로 빨리 버려야 한다.
물에 씻겨 내려가는 자신의 변을
보고서 아쉬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녀가 어릴 때 부모(父母)의 소원은
잘 먹고 잘 싸는 일이다.
먹는 것만큼 잘 비우는 일은
성장하는데 중요한 과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작년에 지하철 승무원이 선로에
용변(用便) 보려다 떨어져 죽은 일이 있었다.
그들은 한번 운행에 들어가면
3~4시간을 기관실에 갇혀 있어야 하는데,
참지 못하고 일을 보다가 그런
일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생리(生理)현상을
참아야 한다는 일처럼
고통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내 보내고 싶어도,
아니 내 보내야 하는데 나오질 않는
경험은 더 끔찍한 고통(苦痛)이다.

현대인은 정제(錠劑)된 것을 많이 먹다보니
똥이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해,
변비(便秘)로 고생하거나
대장암에 걸리는 사람이 늘어만 가고 있다.


인생도 어쩜 똥과 유사(類似)한 점이 많다.
입으로 들어간 건은 반드시 똥으로
내놓아야 하듯이,
우리네 삶도
수입(收入)에만 신경 쓰지 말고
버려야 할 지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번 성지순례 때 예루살렘 12성문 중
하나인 분(糞)문에 갔을 때 남다른
느낌을 받았다.

당시 그 문(門)을 통해
제사 때 사용했던 희생물의 똥과
함께 제물(祭物)들을 남김없이 태웠다고 한다.

그들은 이 문을 통해 진영 밖으로 나가
다른 더러운 것과 함께 태울 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죄(罪)도 함께 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대 사람들은
똥은 제대로 못 만들면서,
똥보다 더 추하고 더러운 죄(罪)는
어찌나 잘 만들어내는지 정신이 혼란스럽다.


나는 오늘 아침에 화장실에서
변(便)과 함께 내가 버려야할 죄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당장 집히는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죄 헌물(獻物)을 드릴 때
짐승의 머리, 다리, 내장, 고기, 가죽
모든 것을 똥과 함께 태웠듯이,

나도 육신을 통해,
생각을 통해 지었던 내 모든 허물을
그 불로 태우길 원(願)한다.

지금 태우지 않으면
마지막 그 날에
불과 유황으로 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똥 냄새를 통한 교훈(敎訓)이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똥이 물에 뜨고
냄새가 적다는 말이 있다.
변을 보았는데 냄새가 심하다는 것은
분명 장 안에 세균(細菌)이 많다는 증거다.

악취는 체내에 노폐물(老廢物)이
배출되지 못하고
몸에 독소가 많이 쌓인 결과로,
평소에도 배에 가스가 차고
방귀도 자주 뀌고 냄새도 아주 고약하다.
또한 설사도 자주하고
식사 전후로 배가 쓰리고 아플 때가 많다.

입 냄새 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 입에서 정화능력이 떨어져
박테리아가 입에서 기생하고 있기에,
설태(舌苔)가 생기며 냄새를
풍기게 한다.

1g의 똥에 세균(細菌)이
무려 1조마리 정도가 있다고 하는데,
더 놀라운 일은 입에서 냄새나게
하는 세균은 똥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하니 어찌 그냥 넘어갈 일이겠는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어떤 사람에게 정화조나, 소똥이나
쓰레기 냄새가 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反應)을 보일까.

식사 후 치아를 닦지 않아도
냄새가 나는데 장(腸)이 안 좋거나
암내처럼 병적으로 냄새가 날 때 본인은
얼마나 속을 앓고 있겠는가.

하지만 진짜 짜증나게 하는 냄새는
이런 외적인 원인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인격에서 악취(惡臭)가 풍길 때 일이다.





꽃에서는 향기가,
똥에서는 악취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시체는 아무리 잘 묻어놓아도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만,
사람냄새는 겉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나온다.

이 시대엔 이중인격자라는 단어로도 부족하여
다중(多重)인격자라는 말을 사용한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선
그 어떤 도리나 진리도 무시하는
악취풍기는 인격자가 너무 많기에 사람들은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을 그리워한다.


진실(眞實)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사람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남을 위해서 풍기는
향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자연히 풍겨 나오는
고유한 자신의 냄새다.

사람답게 살 때,
손해가 있을지라도
정직을 가장 큰 지표로 삼을 때,
이웃을 배려(配慮)할 줄 알 때 풍겨나는 냄새,

그 냄새는
어머니 냄새와 같이 모든
고난(苦難)을 겪은 후에 나타나는 장미의
향기와도 같은 냄새다.


향수(香水) 중에서 최고로 치는 것은
발칸 산맥에서 추출하는 장미원액이라고 한다.
그 원액은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딸 때 가장 아름다운 향을
뿜어낸다고 한다.

우리 인생의 향기(香氣)도
가장 극심한 고통 중에서 만들어진다.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극도의 고통의 밤을 통해 비로써,
삶의 진정한 가치(價値)를 발견하면서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게 된다.

이런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다만 누군가를 통해 이런 향을
맡을 수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세 번째 똥은 다스려야 한다는 교훈이다.

사람들은 마음에 안 든 세상(世上)을
‘똥 같은 세상’이라 하고,
뒤틀린 사람을 ‘똥 같은 노ㅁ’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똥 같은 세상이란
모든 것이 불합리하고
불공평(不公平)한 사회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엔 착한 사람보다
악(惡)하고 불법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이
더 잘살고 더 잘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게 자신을 맹신(盲信)했던
위선자들의 모든 형통은
똥처럼 어느 한 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을
간과(看過)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똥 된 사람의 모습이다.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정리하고 하늘에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들은 젊을 한 때처럼 여전히 건강(健康)을
최고로 여기며 돈만 쫓아다니고 있다.
아니 세상 모든 것이 자기 것 인양
수단(手段)방법 가리지 않고
쌓아 놓으려고만 한다.

이젠 돈도 있고 주위에 사람까지 많지만
만족은커녕 외로움을 느끼기에.
사람만 만나면 자신의 것을
뽐내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라는 속담처럼,
어리석은 그들은
똥이 된 자신의 눈으로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세상을 똥이라는 것을 깨달고,
이전의 모든 영화(榮華)들을 철저하게
배설물로 여기고 똥을 다스리는
슬기로운 사람이 있다.

이 깨달음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없는 인생의 고난을 통해
마침내 세상은 똥보다 더 추하고
쓰레기같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알고,
똥에 이끌려 다니지 않고 그 똥을
다스릴 줄 알게 된 것이다.


보통 똥을 분뇨(糞尿)라고 할 때
‘분’에는 세 가지로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다.

똥을 찌꺼기라는 의미로의 ‘분’(糞)과
그 배설물로 인해 분노할 때 ‘분’(憤)도 있지만,
똥 같은 세상의 한계를 알고 오히려
분발한다는 ‘분’(奮)이 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바울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세상에서 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면,
그 사명(使命)을 위해
내 자신이 똥이 되고 만물의 찌기가
된다 해도 상관치 않겠다는 의미이다.





주여,

똥 같다는 세상에서
살기에
사람 냄새를 더 그리워하면서도,
여전히 제 안에는 다양한 똥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혈기라는 혈변,
판단과 미움의 염소 똥,
불평(不平)과 원망이라는 설사,
급기야 판단과 정죄라는 흑변(黑便)
...

남의 똥 탓하기 전에
제 똥부터 먼저 처리한 후에,
똥을 바로 알고
똥을 이제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에게 사람들이
된장찌개 같은 냄새가 난다고,
정말로 사람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듣게 하소서.

2008년 1월 20일 많은 눈이 내리는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작가ꁾ투가리님 해와달(우기자님,최용덕님) 포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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