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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타버린 자존심

유앤미나 2008. 4. 9. 15:40



불타버린 자존심(自尊心)


구정(舊正) 명절 마지막 연휴 날,
우리나라는 미국의 911테러에 버금가는
211테러가 일어났었다.

지난 600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국보(國寶) 제1호 숭례문이 불이 났을 때,
국민들은 무슨 큰 경기를 보듯
밤새도록 가슴 조이며 지켜봐야 했다.

임진왜란과 일제치하 그리고 6.25전쟁(戰爭) 때도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았던 숭례문이
타오르면서 기왓장이 떨어질 때
심정이란 부모를 잃은 듯
가슴을 치며 눈시울을 붉혀야만 했다.

한 나라의 문화적 자존심(自尊心)이라고
할 수 있는 국보1호를 우리는
이렇게 너무도 어이없이,

태워먹은 한심한 나라의 국민으로써
5시간 뒤 숭례문 몰골이
드러났을 때는
더 큰 좌절(挫折)이 찾아왔다.

날개를 잃어버린 봉황처럼
이미 잿더미가 돼버린 숭례문은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향해
경고(警告)의 메시지를 주었다.

이번 화재로 우리는 문화적 가치(價値) 상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이 일로 인해
현실적인 우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첫째는 안전(安全) 불감증에 대한 경고다.

이번 사건을 통해 국민(國民)들이 놀란 것은
국보 1호를 평소 그렇게 허술하게
다루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무명의 사찰(寺刹) 하나에도
스프링쿨러는 기본이요,
완벽한 방화체제를 갖추고 24시간
순찰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명색이 국보급 목조건물임에도
문화재(文化財) 관리시스템이란
고작 소화기 8대와 침입자 센서기 정도였다.
그 흔한 CCTV하나 달지 않았다.
거기에 화재 대처 능력은 더 엉터리였다.

사고(事故) 후에도 관련기관 사이의
책임 미루는 모습들은
낮 뜨거워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든다.


더욱 놀랄 일은
평소 그 곳에서 노숙자들이
라면을 끊여먹고 잠을 잤다는 보도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서,
국가 기강 자체도 이런 식으로
허술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疑心)이 들게 했던 것이다.

결국 숭례문의 방화는
한 사람의 잘못보다는 이러한 평소(平素)
안전 불감증이 국보를 태웠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바로 전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으로 무고한
시민(市民)들이 숨진 사건을 잊을 수가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이
숭례문 방화사건은 잘 잊고 사는
우리들에게 귀한 역사적인 교훈을 주었다.

미국(美國)대사관은 물론이요
내가 사는 아파트도 수위가 24시간 지키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믿음으로 국보 1호라는
보물을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화재 후 잔해(殘骸)들을 폐기장에
그냥 버려졌다는 뉴스는
이해 정도가 아니라 더 큰 혼란을 가져주었다.

세상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란 말인가.
아니 아직도 사고 이후 대책(對策)을
세우지 않았단 말인가.





인생(人生)도 마찬가지다.
매사 우리는 돈과 결부시켜 우선순위를
결정하지만 인생은 돈을 떠나서
더 중요하게 관리(管理)해야 할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 보물(寶物)1호는 무엇인가.
내 인생의 숭례문을 나는 지금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날마다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눈에 보이는 일들은 이중 삼중으로
안전(安全)하게 관리하면서도,

더 근본적인 일임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숭례문처럼 돈 타령만 하면서 무관심하게
여기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우리는 이번 방화를 통해
문화재(文化財) 측면은 물론이지만,
인생 보물도 새로운 측면에서
관리의 기회(機會)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는 사회적 불만(不滿)에 대한 경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국 각지에서 불특정 다수를 노린
우발적 방화가 계속 늘고 있는데,
그 동기(動機)가 사회적 불만 해소라는
사실 앞에 왠지 씁쓸함을 더해 주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나라 사회적 구조와 현상은
모든 것이 돈(Money)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지면서 사람들은 갈수록
더 단순해져만 가고 있다.

그런데 그 불만이 문화재를
통해 표출(表出)한다는 ‘반사회적 반달리즘’
경향이 나타나면서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있다.

2년 전에 개인적(個人的) 분풀이로
수원성의 서장대 누각을 태웠고,
작년에는 트럭을 몰고 운현궁 정문으로
돌진한 사고까지 있었다.

문화재는 다른 곳 보다
국가적 상징성과 사회적 공공성이
강하기에 불만(不滿)의 타깃으로
옮겨 가고 있는 실정이다.





숭례문에서 조금 떨어진
서울역 지하도는 노숙자들의 천국이다.
그들은 클레물린 광장에 모여 보드카에 취해
사회를 저주하는 러시아 사람처럼,
지하도에 모여 비판(批判)을 멈추지 않고 있다.

물론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環境)은 국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비자(備資)금으로 평생 미리 먹을 것을
챙겨놓는 사람은 놔두더라도,
방학 때마다 공항은
해외여행 하는 사람으로 붐비는데,
누구는 하루아침에 명퇴당하여
칼바람 부는 육교 위에서 물건을 팔아야 하는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세상을
어찌 그들이 곱게 볼 리 있겠는가.


물론 양극(兩極)화 현상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요, 새로운 과제임은 분명하다.

가까운 중국(中國)에서도 개혁개방을 통해
놀라운 고도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혜택은커녕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소외계층과 약자들의 불만과 저항은
중국 사회의 또 다른 사회적 긴장과
불안정성을 증폭시켜 주었던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분노가
증오(憎惡)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번 일은
사회학적인 진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해 주고 있는 셈이다.





어느 시대나 사회적 불만은
사회적 통로(通路)가 막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일탈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불만 해소를 위한
사회적 통로 활성화와
사회적 안전(安全)망을 강화시키는
일은 분명히 사회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더 근본적인 일은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임(Noblesse Oblige)이
우선(優先)되어야만 그 일이 가능하다.

지금 우리의 부(富)의 축적이란
부동산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구조 하에서는 지도층들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소수이긴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긴 있다.
그들은 일시적 돕기 운동을 벗어나
장기적으로 소외계층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며 그들과 더불어
삶을 실천(實踐)해 나가는
한줄기 빛이
어둠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게 하고 있다.





셋째는 충동(衝動)조절장애 환자 증가에 대한 경고다.

방화용의자 채모 씨는
외적으로는 토지보상과 법원판결에
불만(不滿)을 품은 것이 범행 동기라 했지만,
사실 그는 충동조절장애요
반사회성 인격 장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런 범죄를 일으켰다고
전문가들은 진단(診斷)을 내리고 있다.

한 순간의 울컥하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폭행이나 방화 그리고 절도 등
인격 장애 환자(患者)가 최근 5년 사이에
143%나 늘었다고 하니 큰일이다.

그러므로 충동조절장애는
방화범 채 모씨에게만 적용되는 일이 아니라,
누구라도 빠질 수 있는 현대인의
새로운 정신적 질병임을
그를 통(通)해 우리는 알게 된 셈이다.


충동조절장애는
본능적 욕구가 너무 강하거나,
자기(自己)방어 기능이 너무 약해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모든 일을 충동적(衝動的)으로 저지른다.

이들에게 충동쇼핑은 기본이요
가출이나 이혼 심지어 자살(自殺)까지도
충동적으로 하는 사람들인데
중요문화재 방화가 무슨 대수였겠는가.

이러한 인격 장애는 우울증(憂鬱症)처럼
겉으론 쉽게 드러나지 않기에
본인 스스로도 또 정상이라고 생각하기에
진단도 어렵고 치유(治癒)가 어렵다.





이 병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躁急症)에 있다.

급(急)한 것을 참지 못하는 한국인에게
‘빨리빨리’라는 닉네임은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증세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참으라’는 말이 아니라,
근본적인 ‘예(禮)’라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번 남대문 방화 때 불행 중 다행은
소방사가 ‘숭례문’ 현판을 미리
떼어놓은 일이다.

본시 숭례(崇禮)란
‘예절을 숭상한다’는 뜻이지만,
현대인은 ‘예절’보다는 ‘예전(禮錢)’에
관심을 두고 숭배하여 숭례문이 탔다고 말한다.

이렇게 물질만능에 빠져 살다보니
무슨 일이든 기다릴 줄 모르고,
성격만 급해져 충동에 의해 일하다보니
숭례문이 탄 것처럼 예(禮)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조선시대 때 서울 사대문(四大門) 이름을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홍지문이라
한 것은 공자의 가르침과
정신적인 문물을 잘 유지하고자
‘인의례지’라는 글을 넣어 만들었던 것이다.

인(仁)은 하늘과 땅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고,
의(義)는 공동체 유익을 위해 싸우라는 것이요,
예(禮)는 이웃에 대한 바른 태도요,
지(智)는 늘 자신을 살필 줄 아는 슬기다.
이렇게 사대문은 서로 바른 관계를
맺어 세상의 중심을 잡자는 연유에서 붙였던 이름이다.

이 시대는 물질문명은 잘 발달되어있지만,
사람의 근본인 이러한 정신적인
문물을 이어받지 못하고 충동(衝動)에 의해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잿더미가 되어버린 숭례문을
복원(復元)해야 하듯이,
우리 인생의 정신적 문물들도 다시 재건하여
충동조절장애를 다스리고 시대를
향한 뜻을 알고 대비하며
살아야 할 과제가 다시 한 번 모두에게
있음을 주지한 사건이었다.





주여,

제 인생에서
보물(寶物) 1호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숭례문처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우선순위가 바뀐 채
보이는 일에만 에너지를 쏟고 있는
어리석은 종을 용서하소서.

이제라도 잃었던
인의(仁義)와
예지(禮智)를 찾음으로,

충동을 다스리고
사명을
감당(勘當)케 하소서!

2008년 2월 17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사진작가ꁾ 해와달(장재국님, 고해진님) 투가리님 크로스맵 lovenphoto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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