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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you

유앤미나 2008. 4. 8. 18:39



I am You.


얼마 전 법정(法廷) 공방까지 치달았던
박철-옥소리 부부의 파경으로
생각지 않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연말(年末)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겉과 속이 다른 부부들의 사연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나는 그것을 보는 내내
아름다운 가정이란 이름 속에
각자가 분리(分離)된 째,
원망과 분노, 복수심의 칼을 가는
부부들의 모습이 호러영화보다
더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은 그 부부(夫婦)를 욕하면서도
석연치 않았던 것은 우리 주변에는
밖에서는 잉꼬부부지만
집에서는 남남처럼 살고 있는
부부가 많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중속의 고독(孤獨)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는 시대 속에서,
자식들을 위해 이혼은 못하지만 오래 전부터
별거 아닌 별거의 삶을 살고 있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으려
출입 시간대를 지혜롭게 조절하고,
생활공간도 한 집 속에 두 집이 사는 것처럼
남편은 방에서 아내와 딸은 거실(居室)에서 지낸다.

큰 딸은 어렸을 때 행복할 때를 떠오르지만,
엄마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고
딸에게 얼굴을 붉힌다.


거창한 행복(幸福)의 세레나데를
포기한지는 오래 전이요,

몸둥아리 하나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 지옥이 되어버린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적과 동침하고 있는
그들을 통해,

나는 인간이 얼마나 모질 수 있는지를
얼마나 파괴적(破壞的)인지를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다큐를 보면서
우린 저 정도는 아니야 하면서
안심 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부부는 한 순간에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무촌 관계이기에 날마다
조심(操心)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

설령 혹 그들처럼 심각(深刻)한 상태에
놓여있다 해도 모든 연기를 멈추고
남을 의식했던 무대에서 내려와,
둘 만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自身)을
돌아본다면 답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부부해법의 첫 번째는
자아(自我)의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부부는 서로 다른 존재가 한 집에서
살기에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 싸우지 않는다면,
유전자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특별한 사연이 있는 부부임에 틀림이 없다.

결혼 초기야 서로
사랑하느라 싸울 틈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냉혹한 현실 속에서
감정들이 충돌되면서 신경전으로 이어지다가
기약(期約) 없이 서로 빗나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한 마디 말을 갖고도
서로 빗나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안타깝게도 그 원인을 정확히 아는
경우가 드물기에 싸움이
일상(日常)화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원인을 밖에서만 찾는데,
의외로 본질적인 문제는
자신이 제공(提供)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만약에 외부적인 일이라면
불가피(不可避)하겠지만,
내 자신이 문제라면 사전에 갈등을
통제하거나 제거할 수 있기에
생각보다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만의 잘못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먼저
자신이 주범(主犯)임을 깨달지 못한다면,
그 부부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만 특별히
부부란 양보와 희생 없이는
하루도 평안(平安)한 날이 없는 사이다.

젊은 땐 모르나 나이가 들수록
체득되는 명백한 인생 진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모든 일마다 상대방 관점에서
생각하고 상대를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생각지 않는
행복(幸福)이 쏟아지더라는 진리다.

상대를 이해하고 돌보는 것이
진정 자신(自身)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평범한 이 사실을 빨리 깨달은
부부만이 가장 확실한
노후(老後)를 준비한 셈이 된다.





둘째는 부부갈등은 대화(對話)로 풀어야 한다.

대부분 부부(夫婦)간의 다툼은
돈과 의사소통 그리고 생활습관의 차이가
주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의사소통(意思疏通)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말싸움이
부부갈등의 90%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본래 여성은 남성보다 말을 잘 표현(表現)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에 종반으로 갈수록
기세는 여성으로 역전되면서
급기야 폭력과 파탄이라는 극으로 치닫게 된다.


남자는 말싸움으로 여자를 이길 수 없고,
여자는 하고 싶은 말 다해가지고는
가정은 절대로 평안할 수 없다.

남녀 간의 이러한 차이를 인정한다면,
남편은 다른 어떤 선물(膳物)보다
따뜻한 말이 필요할 것이고,
부인은 행복을 위해서 말을 아껴야 할 것이다.

여자를 이겨야 한다는 잘못된 신화(神話),
남자에게 따질 것은 따져야 하겠다는
강박관념(强迫觀念),
백해무익한 이 두 가지 쓰레기를
빨리 치울수록 좋은 것은
부부싸움에는
어떤 승부도 결론도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렇게 말이라도 하면서
싸우면 해결점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아예 대화의 끈을 놓고 있는 부부가 더 큰 문제다.

말싸움에 지친 많은 부부들이
대화 없이 한 집안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은 차마 인간의 삶이라고
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어떤 주부는 20년간 부부로 살아오면서
이혼얘기가 나왔던 7년 전부터
전혀 대화를 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했다.

이런 식으론 종말(終末)이 다가와도
이혼 외에는 해법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언어(言語)적 존재다.
모든 문제는 반드시 대화로 풀어야 한다.

인생 삼분의 이를 함께 보낼 부부가
대화에서 막힌다면 만사(萬事)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명령식이나 경고식, 설교식이나 논쟁식,
그리고 결론식 대화처럼
‘네가 이렇게’ 식의 방식을 자제(自制)하고,
‘내 생각은 이렇다’ 식의
나-전달법(I-Message)을 권하고 있다.

한마디 말이 이혼을 하게도 하지만,
한마디 말이 이혼을 막기도 한다.

그래서 부부 간에도
항상 예의(禮義)가 있어야 한다.

내 말 속에 모든 갈등(葛藤)의 씨앗이었던
의사소통에 걸림돌이 될 만한 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대화할 때마다 연습하여 제거해야만
건강(健康)한 대화 속에 행복한
가정을 세울 것이다.





세 번째는 근본적으로 부부(夫婦)중심으로
돌아가야 부부갈등이 해결된다.

대가족(大家族) 형태에서는 어른이
가정의 중심이 되었는데,
핵가족이 되면서 가정은 자녀(子女)가
중심이 되어버렸다.

대한민국 부모(父母)만큼 자녀사랑에
유별난 나라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노년에 가서야
그러한 눈먼 사랑에 대해 후회를 한다.

일본에서는 황혼이혼과 함께
자녀가 대학교에 들어가면 이혼한다는
대입이혼이 성행한다고 한다.

이만큼 자녀를 상전처럼
모시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주저 없이 따로 따로 갈 길을 찾는다.
그만큼 평소 부부 간의 애정지수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는 증거다.


왜 이래야만 하는가.
자식이나 타인의 이목 때문에
가면(假面)을 쓰면서 마지못해 살아간다면
결혼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가정의 중심(中心)은 분명 부부이건만
무엇이 이들의 애정을 무시하고
가면부부가 되게 했는가.

그래서 요즘에는
자녀 중심의 삶에서 과감히 벗어나
부부 중심의 삶을 선언하는
통크족 부부(夫婦)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정은 부부 중심이 되어야만
자녀들에게도 좋은 역할모델이 될 수 있고,
본인들도 노후에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김홍신 씨가 방송에 나와
모든 사람이 죽을 때,

‘좀 더 참을 껄’, ‘좀 더 베풀 껄’,
‘좀 더 누리고 살 껄...’
이 세 가지를 후회 하다가 죽는 것이
인생(人生)이라고 했다.

한평생 땅강아지처럼
자식을 위해 버둥거리며 사느라,

부부의 정 한번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불쌍한 존재가 된 것이다.


부부(夫婦)는 부모보다 아니 자식보다
더 오래 함께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손님처럼 대한단 말인가.

원래 부부란 사랑의 7단계와 같은
관계가 되어야 정상이다.

남남이 만남으로(meet)
생각하고(think) 좋아져서(like),
사랑(love)한다 고백했다.

그 이후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상대가 필요(need)했고,
아니 그 자체를 원(want)하므로
내가 당신(you)이 되는 것이 사랑이요,
부부가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내 옆에 그가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한편으론 늘
미안(未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부부는 천하를 얻은 자처럼
당당할 수 있는 법이다.





주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바울의
권면(勸勉)처럼,

항상(恒常)
첫 사랑을 지키도록
조심하며 살길 원합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여
가장 낮고 천한 사람의
종이 되셨듯이,

저도
그를 만나
그가 되었으므로
그의 모든 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2007년 12월 30일 피러한이 강릉에서
송구영신(送舊迎新)을 맞이하여 인사 올립니다. ^*^


사진작가ꁾ해와달(즐거운님) 투가리님 돌팔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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