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피러한님의 글모음

인생샷을 찍자

유앤미나 2016. 10. 21. 18:29

인생샷을 찍자 명절에 제사를 마치고 시어머니가 수저를 들자 동서가 이런 말을 했다. ‘어머 형님, 용감도 하시네. 아니 요즘 시어머니가 밥 먹을 수 있을 때는 며느리가 인증샷을 다 찍은 후라는 말도 못 들어 보셨수?‘ 이런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로 어느 때부터인가 가장 엄숙한 순간이라 할 수 있는 각종예식 중에도 어떤 행위를 인증하기 위해 찍는 인증샷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파급효과가 극대화 되고 있다. 처음엔 연예인이나 공인들이 인증샷을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는데, 최근에는 투표인증샷을 본 누리꾼들이 투표에 동참하는 열풍이 일어나면서 인증샷은 삶의 단면도가 되어버렸다. 물론 부모세대들은 여전히 인증샷 문화가 낯설고 부담스럽지만 자녀 세대에서는 이것이 중요한 소통의 한 과정임을 알기에 방법들이 더욱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인증샷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 먼저 개인적인 인생을 기록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좋고 또 다른 사람과 즉시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다. 특별히 예식이나 여행 등의 모든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놓으면 슬픔과 아쉬움이 교차되면서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기에 나이를 떠나 잘만 이용한다면 유익한 점도 많다. 반면에 때와 장소를 분별하지 못하고 찍어대면 오해를 넘어 셀카 중독자가 되어 자기만족과 과시라는 바탕위에 다수에게 계속 주목을 받아야 가치 있는 사람이라 착각하는 보상적 망상이나 과도한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정신질환자에 불과하다고 평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평도 물론 무시할 수 없다. 모든 일상이 그렇듯이 인증샷도 이렇게 양면성이 있겠지만 나는 차라리 인증샷을 찍어야 한다면 그것보다는 인생샷을 찍고 싶다. 인증샷이 어느 한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라면 인생샷은 일생 최고의 순간을 담은 사진이기에 연속성이 있는 또 다른 인생록이 될 수 있기에 가치를 두고자 한다. 마치 연예인들이 젊을 때 누드를 찍어 보관하는 것처럼 인생을 통틀어 제일 잘 나오는 사진을 빗대어 말하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장소에 직접 찾아가서 의미를 갖고 인생샷을 찍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전주 한옥마을과 양림동 펭귄마을 그리고 양주 나리공원 등이 인터넷에 핫한 장소로 연일 소개되고 있다. 물론 중년들은 그들처럼 일부러 시간 내어 명소에서 인생샷을 찍기란 쉽지 않겠지만 최소한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행이나 무슨 행사든 찍은 사진들을 한 권의 책으로 남겨 놓는 일이다. 요즘 누가 여행 후 사진을 인화해서 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여기에 착안하여 상업화한 것이 바로 사진 책이다. 어떤 사진이든 일정대로 편집하여 설명까지 곁들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든다면 기념을 넘어 개인과 가족의 역사가 되지 않겠는가. 나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사진 책을 편집하여 유일무이한 나만의 가족사진 책을 만들고 있는데, 어느 날 두 가지를 생각해 봤다. 과연 이 사진 책을 나는 몇 권이나 만들고 하늘의 부름을 받을까. 아울러 이런 상상까지 해봤다. 만약 내 딸이 부모 몰래 상조회사에 가입해 놨는데 내가 우연한 기회에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느낌은 어떠할까. 더 나이가 들어 작정하고 영정사진 찍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일이기에 세월의 여상함보다는 죽음이라는 현실이 내겐 아련하기만 했는데 순간 상조회 가입 건으로 그것이 내게 너무도 가까이 와 있음을 알고 시한부 생을 진단하는 의사 말을 듣는 것처럼 잠시 동안 머리가 새하얗게 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윤동주 시인처럼 하늘 아래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어느 때라도 부르면 갈 준비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떠오를 것 같다. 고로 진정한 인생샷은 가장 추억어린 사진을 책으로 남기는 일도 가치 있는 일이겠지만 그것보다는 사진으로 남길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 인생샷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선 보여 지는 것이 전부로 여기지만 하늘에선 보여 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 일보다는 관계를 통해 좋은 인생과 나쁜 인생이 자연스럽게 가려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모든 관계를 좋게 하면서도 최고의 인생으로 살 수는 없을까. 그 물음의 답은 간단하다. 아우렐리우스 말처럼 오늘 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좋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 않을까. 인생이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현재 밖에 없다. 오늘을 놓치면 전부를 놓치게 된다.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인생의 결과는 죽음이기에 오늘 이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야만 한다. 지금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지금 소통(疏通)이 이루어져야 한다. 무슨 일이 잘될 때보다는 잘 안 될 때에 신의 섭리로 알고 살아갈 때 마지막 그 앞에 부끄럽지 않고 오늘의 삶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에 오늘도 내 비전을 내려놓길 원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내 생각대로 안 되는 것은 내려놓고 살고,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은 비워내며 살고, 내 의지대로 안 되는 것은 버리며 살아야 한다. 진리가 너를 자유하게 한다는 것은 내려놓아야만 감사가 있고 평안이 있고 열매가 있고 그리고 자유가 있는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인생샷을 찍고 있는 삶이 될 것이다. 2016년 10월 21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포남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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