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한 중독 때문에 스스로를 고문하는 남자들이나 여자들을 애처롭게 여긴다. 다시 말해서, 생수 중독자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불쌍한 사람들은 플라스틱 병에 든 물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은 어디를 가거나 생수병을 반드시 지참하며,
15분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채 희열과 고통이 적당히 버무려진 표정, 즉 신비스러움을 가득 담아 물을 들이킨다.
이 불행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자. 이들은 언젠가 이 플라스틱 병에 든 생수를 생산해내는 기업들이 내건 "하루에 최소한 1.5리터의
생수를 마셔야 한다"는 광고 문구가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인 줄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날 이후 이들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351p)
에릭 오르세나 지음, '물의 미래' (김영사) 중에서
생수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공기업까지 진출하고 있지요. 해양심층수 등 프리미엄 생수가 잇따라 시판되고 생수
메뉴판도 나왔습니다. 항상 플라스틱 병에 든 생수를 갖고 다니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1995년 본격화된 생수 시판은 올해 시장규모가
500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합니다.
생수시장의 급성장은 '건강'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입니다. 물 한 잔을 마시더라도 건강을 생각해 마시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커진 것이겠지요.
'웰빙' 트렌드에 따라 커지고 있는 생수시장. 그러나 건강에 대한 뜨거운 관심 때문에 늘어난 생수 소비가 역설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키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정치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프랑스 학술원 회원인 에릭 오르세나. 그는 생수병을 들고다니면서 마시는
사람들을 '갈음증' 환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의학적으로 물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피부가 부드러워지거나 비뇨기적 질환이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단지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면 된다, 그 나머지는 신장이 알아서 조절을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그리고 시니컬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물을 지나치게 많이 마실 경우 소변의 색이 엷어지는, 아주 논리적인 결과가 발생한다. 그리고
환경이 손상된다."
플라스틱 병으로 만든 생수병들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그 생수 병들을 운반하는 트럭들이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겁니다.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생수병들이 웰빙 트렌드속에서 쓰레기로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무거운 제품'인 생수를 유통시키기 위해 많은 양의 석유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르세나는 생수업체들이 수돗물이 건강을 위협한다는 전제를 깔고, 자신들이 생산하는 생수야말로 우리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는 식의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갈음증 환자' 대열에 합류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누구나 물맛이 좋다거나, 독특한 향이 좋다는 등의 개인적인 이유로 특정 생수를 좋아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묽은 빛깔의 소변을
만들어낼 권리도 얼마든지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미학적인 선택의 문제이니까.
하지만 당신의 신체 기능이라는 면만을 놓고 본다면, 시에서 공급하는 수돗물을 100퍼센트 믿으시라!"(오르세나)
그럴 필요는 없어보이지만 꼭 집 밖에서도 정기적으로 물을 마셔야겠다면,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를 사서 들고 다니는 사람보다, 집에서
보온병에 보리차를 넣어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세련된 디자인의 가벼운 플라스틱 생수병이 아니라 투박한 보온병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우리가 더 아름답고 멋있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웰빙 트렌드 속에 급팽창하고 있는 생수 시장을 보면서, 무엇이 진정 우리의 웰빙과 생존을 가능케해주는 좋은 산업이고 현명한 소비인지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