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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시련극복과 겨울나무

유앤미나 2016. 3. 22. 13:53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시련극복과 겨울나무
예병일 이 노트지기의 다른 글 보기 2009년 6월 23일 화요일


"자, 저기 겨울나무를 보세요. 이파리가 하나도 없으니 앙상해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내년 봄에 다시 와 보세요. 눈부신 이파리들을 엄청나게 달고 있을 것입니다. 이게 자연과 인생의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겨울나무처럼 앙상해보이지 않고는 내년 봄 눈부신 이파리들이 달린 나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무를 오래 가꾸면서 깨달은 이치입니다." (219p)
 
신웅진 지음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중에서 (명진출판사)
한국인으로서 국제기구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 반기문 UN 사무총장.

지금이야 언론을 통해 그의 활약상을 자주 접하면서 '한국인 UN 사무총장'이라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지만, 사실 예전에는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이라는 '꿈'에서나 나왔던 자리였지요.

그 반총장에게도 예외 없이 '커다란 시련'은 있었습니다. 순탄하게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것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2001년 2월 그가 외교부 차관이었을 때, 한러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는데, 그만 실수로 우리 정부가 '탄도탄 요격 미사일 조약'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1970년대에 미국과 소련이 맺은 그 조약에는 양국이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미국에 등을 돌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기까지 했습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오해를 풀기 위해 반 차관은 해임됐습니다. 31년의 외교관 생활이 '불미스러운 퇴진'으로 끝나게된 그는 고통스러웠습니다. 그가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지내고 있는데, 4개월 뒤 한승수 외무부 장관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UN 총회 의장으로 가게되었으니 의장 비서실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자리가 보통 국장급이 가는 자리라는 데 있었습니다. 차관을 지냈던 반 총장으로서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자리였지요.
그러나 반 총장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저런 말을 할테지만 그런 뒷말에는 신경 쓰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UN 총회 의장 비서실장 경험과 당시 만났던 사람들은 훗날 그가 UN 사무총장 선거전에서 이길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남들에게 초라해보이는 것이 두려워서 그 때 UN으로 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었다면, 그는 UN 사무총장이 되기 힘들었을 겁니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겨울에 앙상한 가지 뿐이었던 나무가 봄이 되면 아름다운 이파리들을 갖게 되듯이, 사람도 찾아온 시련 때문에 위축되거나 숨지 않고 담담하게 '할 일'을 한다면 결국 멋진 봄날도 찾아올 겁니다.
겨울나무의 앙상해보이는 모습은 결코 '초라함'이 아닙니다. 봄과 여름의 멋진 모습을 준비하는 '의미 있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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