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피러한님의 글모음

* 우리에겐 내일이 없다

유앤미나 2016. 1. 27. 10:36

심플한 고민 ‘흙수저라고 불행하다고? 그래도 육OO 여사가 내 엄마는 아니잖아!’ ‘남편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그래도 누구처럼 커밍아웃은 안했잖아!’ ‘사위가 시원치 않다고? 그래도 마약은 안했잖아!’ ‘형제간에 우애가 없다고? 그래도 소송은 안 당했잖아!’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며 아쉬워하기 보다는 새해의 새로움이라는 희망을 안고 출발한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지난 한 해 흔히 유명인이라 분류되었던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민낯들을 통해 새삼스럽게 상대적 위안을 받으면서도 한 쪽 가슴 속에는 쓴 웃음을 자아냈던 것은 그들의 모습이 어쩜 모든 인생의 단면도가 되고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그들을 판단하기보다는 쓴웃음이 나올 뿐이다. 땅 아래 가장 친밀한 관계가 가족이건만 지금 우리 가정은 그런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가치 질서 안에서 재편성되고 있다. 피는 당연히 물보다 진함에도 이제는 피보다 진한 것이 너무도 많다보니 지상의 작은 천국이었던 가족을 포기하고 서로 싸우는 통에 보통 사람들은 잠시 우월감을 갖게 했을지 몰라도 그리 편치 않았던 것은 자신도 그들과 유사한 문제로 연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처럼 불안장애를 호소할 정도는 아니어도 오랫동안 각자 이유 있는 고민들을 안고 생의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은 쌀밥보다 커피를 더 자주 마시고 있다. 커피는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음료 이상의 의미를 지닌 지 오래 되었다. 커피는 음료를 넘어 대화 촉진제로써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은 그만큼 현대인들은 고민이 많기에 커피를 통해 대화 상대를 찾아 아픔을 나누고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기에 커피에 목을 매고 있는지 모르겠다. 커피 값도 쏠쏠하지만 돈보다는 누구와 함께 마시느냐 하는 관건은 누구와 내 고민을 풀어놓을 것인가라는 심리 상담학적인 과제가 더 마음 쓰이기에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는 돈을 써가며 아이처럼 무언가에 집착하며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내게 어느 지인을 통해 최근에 <인생이 심플해지는 고민의 기술>이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저자는 완벽주의자로서 고민이 많은 타입이었는데 정신과 환자들과 상담하면서 깨달은 것은 그들은 쓸데없는 고민에 집착하여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자신부터 고민의 관점과 대응자세를 바꾸게 되면서 그 책을 통해 나름대로 그는 고민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는 어떤 고민이든지 5단계 고민정리법에 따라 먼저 고민을 정리해 본 후 손익계산을 도입하여 고민을 객관화시켜 해결점을 찾으라는 것이다. 해 아래 인간이 고민하지 않고 어찌 살아가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고민의 과정은 달라도 결코 바꿔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니 젤린스키 말대로 우리가 하는 걱정 40%는 현실불가한 일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이었고 22%는 사소한 일이고 오로지 4%만이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96% 걱정은 쓸모없는 걱정들이었고 4% 조차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고민도 팔자 인 것처럼 쓸데없이 병든 세월을 자처해 왔던 것이다. 김득중 교수는 현대인들은 두 강도 곧 ‘어제’라는 강도에게 후회를 ‘내일’이라는 강도에게 염려를 날마다 유린당하고 있다고 했다. 염려는 이렇듯 환경적인 요소가 원인이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강도이기에 먼저 어떤 고민이든지 고민의 정체를 바로 정리해야만 고민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은 꿈이 많은 만큼 고민도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고민을 위한 고민이 되어버린다. 누구는 고민의 정체(正體)는 정체(停滯)라고 정의를 내린 것은 고민의 여러 해악이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우리 생을 멈추게 하듯, “내 우물쭈물 하다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쇼 묘비명처럼 고민하느라 생의 중요시기를 다 보낸 후에 나중에 가서야 고민의 헛됨을 알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러므로 고민이 많다고 해서 한 숨 쉴 것이 없는 것은 고민은 하나 안 하나 결과는 똑같기에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 어떤 고민이든 무조건 무시해야 한다. 물론 여태껏 고민을 숙명처럼 여기고 품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겠지만 고민할 일이 있으면 딱 10분 정도만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어차피 수학 문제와 달리 인생의 고민에 대한 해답은 정답이 있을 수 없기에 차라리 시행착오를 할지라도 고민할 시간에 생산적인 일을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태어나는 일도 내 생각대로 안 되지만 죽는 일은 더더욱 내 생각대로 안 된다. 아니 사는 일과 죽는 일보다 더더욱 내 생각대로 안 되는 일은 바로 자식이다. 세상에는 자식처럼 내 생각대로 안 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왜 내 생각대로 안 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인생은 밥 먹고 하는 일이 고민을 벗어나지 못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란 말인가. 고민 대신에 할 일이 있다. 바로 고민에 대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 과거는 우리 힘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관점을 바꾸므로 고민은 재창조될 수 있고 고민은 한 순간에 무용지물이 되게 할 수도 있다. 고민은 대부분 일보다 관계 속에서 사소한 일로 상처받으며 주리를 틀기 시작한다. 모두에게 인정을 받아도 한 사람에게만 미움 받아도 온 신경은 그곳에 쏠리면서 고민은 가중된다. 여기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은 무시해 버리고 굳이 날 미워하는 사람에게까지 내가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는 진리를 인식하고 바로 무시해 버려야 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일은 사람에게 상처도 받지만 위로도 사람에게 받기에 신의 처분을 기다리 듯 일 이든 사람이든 맡기고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도는 없을 것이다. 사람에 대한 염려의 짝처럼 내일(미래)은 고민의 또 다른 주체가 되고 있다. 눈만 뜨면 사람들은 의식주, 자식, 노후, 죽음을 염려하지만 믿음이 없으면 내일은 언제나 절망이요 믿음이 있으면 내일은 언제나 희망이라는 진리를 알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관심대상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어야 하는 것은 내일의 고민과 고통은 오늘 앞당길 수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안개 같은 생명을 갖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겠는가. 우리에겐 내일이 없다. 오늘 아이스크림 같은 인생을 지금 맛있게 먹어야 하듯이 내일은 없는 줄 알고 오늘 선한 청지기같이 충성을 다할 때 내일은 우리에게 기필코 의의 열매로 보답할 것이기에 오늘 고민 대신 오늘 열정을 품고 살자는 것이다. 2016년 1월 27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포남님, 돌팔매님, 이요셉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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