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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였기에...

유앤미나 2015. 12. 6. 14:47

그였기에 가능했다 한국 야구대표팀이 드디어 미국을 완파하고, '프리미어 12' 초대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것도 간신히 이긴 것이 아니라 8대 0으로 완승을 거뒀으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조의 속에 한국 야구의 승리는 새로운 신기록을 이루었다는 기쁨이 더 크다. 우울한 시기에 우승한 우리 팀에게 축하와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우승의 감격보다는 준결승 경기 때 일본과의 역전승이 더 짜릿했었다. 일본은 자기들이 먹으려고 차려놓은 호화 밥상을 손도 못 대고 한국에 빼앗겼으니 얼마나 배가 아플까. ‘고쿠보 감독 집에 한국 국기 꽂아라’라고 분노한 일본 국민들의 실시간 반응이 너무 재미있다. 1.전범 고쿠보 사형 집행해라. 2.노리모토 시마 마쓰이 도쿄 바다에 던져라. 3.한국 감독은 역시 품격이 다르다 역시 베테랑 노감독이다. 4.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나카무라와는 격이 다르다. ... 마치 한 편의 대서사시를 감상한 듯 한국은 '프리미어 12'에서 초대 우승이란 쾌거를 이루고 막을 내렸지만 긴 여운을 남기며 자연스럽게 우리는 살아있는 논픽션 '도쿄 역전드라마'를 만든 김인식 감독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는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함에도 자리를 절면서 WBC 1회 4강, WBC 2회 준우승, 베이징 올림픽 우승이라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가 ‘프리미어 12’ 대표 팀을 맡는다고 했을 때, 몸은 둘째치더라도 감독직을 내려놓은 지 오래 되어 예전의 감을 잃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란 듯이 이번에 일을 크게 저질렀다. 이번 ‘프리미어 12’팀을 구성하면서 그가 감독이 되기까지 사연이 있었다. 원래 규정상에는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 준우승팀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야 함에도 우승 감독들은 주저하지 않고 김 감독을 먼저 추천했다. 왜 그랬을까. 적어도 객관적인 눈으로 본다면 그는 장애뿐 아니라 70이 다 된 노인임에도 그들은 김인식 감독에겐 포기를 모르는 이순신 장군같은 불굴의 정신을 믿었던 것이다. 최소한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든 환경을 뛰어넘어 약체인 한국팀을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동일한 작품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시대의 멘토라 자부할 수 있는 김인식 감독에 대한 첫 번째 이미지는 역시 불굴의 리더십이다. 평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생철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어떻게든 악착같이 해야 되겠다는 자기만의 결심이라고 했다. 말만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인생이 그것을 증명해 준 사례가 한 두건이 아니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지만 스물일곱에 어깨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이후 아마추어 지도자를 거쳐 프로팀 감독 생활을 시작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한참 감독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갑작스럽게 뇌경색이 찾아와 야구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의학계에선 기적이라고 할 만큼 장애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WBC 4강과 준우승이라는 열매로 국민들에게 보답해 주었다. 김 감독은 우승이 확정 된 후 ‘정말 기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역시 경기는 끝나봐야 아는 것이다’고 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굴하지 않은 김 감독은 우리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오늘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취업난과 경기부진의 우울증 사회에 한국야구 9회 대역전극은 묵직한 울림을 주는 동시에 불리한 조건 밖에 없었던 노장은 환경적인 어려움 속에 고뇌하고 있는 이 땅에 뭇 사람들에게 죽비 같은 깨우침을 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가 온다는 진리를 각인시켜 준 것이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던 미국에서는 야구감독을 매니저라고 불렀다. 다른 경기는 기술과 전술에 대한 ‘지도’에 집중하기에 코치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지만 야구는 보다 폭이 넓어서 ‘운영’이라는 관점에서 매니저라고 부른 것이다. 김 감독은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가슴이라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런 연유였다. 욕하지 않는 감독, 어떤 선수든지 한 번 지지하면 성공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지도 방식으로 선수들의 숨어 있는 능력까지 이끌어내었기에 그에 대한 수식어는 언제나 ‘믿음의 야구’였다. 원정경기 중엔 절대로 1군 선수를 2군으로 내려 보내지 않았던 그만의 고집은 선수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지켜 주었던 것이 엄청난 실적을 만들어 내는데 큰 디딤돌이 되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평소 그가 프로감독은 400패 이상은 해봐야 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해왔다. 김 감독은 수 없는 실패를 통해서 나 혼자 잘해도 안 되구나, 역시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최고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후, 헤드쉽을 포기하고 구성원의 자발적인 동의를 중시하는 섬김의 리더십을 통해 생산과 통합을 만들었기에 통산 980승이라는 성적과 함께 국내 야구 지도자 중 최고의 덕장이라는 소문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있다. 믿음은 역시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자산이 아니었다. 자신의 질병과 자신의 실패를 통해 믿음이 만들어졌기에 그는 승리에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으로 존재하기에 앞으로도 우리는 그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일본 경기 후 그의 인터뷰는 현자의 답변이었다. ‘강자가 약자에 질 수도 있다’, ‘극적인 역전승에 기쁨, 오타니에겐 항복’ 이기고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상대 선수를 극찬하는 그를 통해 일본인조차 그 말에 조금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으리라. 기자들의 질문에도 대답은 똑 같다. 내가 수를 써서 어떻게 된 건 없고 선수들이 잘 싸우고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을 내줬다고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렇듯 자신을 낮추고 오히려 아랫사람을 올려주는 독특한 그의 리더십은 자율이라는 시너지를 만들어주어 초반에는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은 자신의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타인의 입장에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할 줄 아는 겸손한 덕장이 수장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문득 한 해설자의 말이 떠오른다. '야구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 없어요, 마지막에 이기면 됩니다!' 그렇다. 겸손한 자는 마지막 때 반드시 승리한다. 하지만 교만한 자 곧 자신만 옳다고 여기고 남과 하나 되지 못한 자들은 오늘은 어쩜 승리의 잔을 기울일지 몰라도 최후엔 독배를 마실 것이다. 마지막 인생 역전은 항상 겸손한 자의 몫이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지만 피부로 잘 못 느끼지만 김 감독은 이번 경기를 통해 한 번에 알기 쉽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를 만난 자, 스스로 인생의 길이 알게 되고 품게 된다. 나의 족적이 다른 이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게 된다. 2015년 11월 25일 수요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포남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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