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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여유

유앤미나 2010. 8. 16. 14:16



인생과 여유(餘裕)


오늘은 50년 역사 속에 아직까지도
무섭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라면교'(敎)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라면교의 주된 교리는 많은 것이 있지만
크게 세 가지를 믿으면 누구라도
라면교인이 될 수 있다.

첫째로 부활 신앙이다.
끓는 물에 돌아가신 후 3분 만에
부활할 것을 믿는 것이다.
둘째로 삼위일체다.
면발과 국물과 김치의 조화됨과 하나 됨이다.
셋째로 사랑과 자비의 정신이다.
주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오늘도 아낌없이 희생한다.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돈과 지식 그리고 명예가 있다 해도
가끔은 옛 추억이 묻어나는
라면 하나 끊여먹을 여유가 없다면,

그리고 아무리 빠듯하게 산다해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함께 자장면 먹을 여유가 없다면,

그 사람은 지금
목마르고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감히 피러한이 단언한다. ㅋㅋㅋ





웰빙바람이 분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까지도 주말이나 휴일을
어떻게 보내느냐라는 질문에
63% 가량이 TV시청이라고 대답을 했다.

우리는 지금 비록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사는지는 몰라도
여가 문화의 빈곤이라는
이중적인 구조 속에서 인생의 참된 여유도
모르고 오로지 앞만 보고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인생의 여유에 대해 말을 하면
경제적인 풍요함과 함께
넉넉한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따져봐도 우리는 벌써
세계 상위권 안에 들어가 있고,
시간으로 따져도 주 5일 근무제 실시한지
2년이 되어간다.


인생에서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결코 이런
외적인 요소가 아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배려(配慮)하는 마음만 있다면
장소나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곁에는 환경과 상관없이
미소를 지으며
모든 일 속에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쩜 그들은 인생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요,
또 이미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결코 요지경이 아니다.
인생은 오직 마음먹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그 일의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보고
그 지점에서부터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감으로
상대적인 행복한 마음으로 어려움을
대처하려고 한다.


‘생선에 절임 당하지 않으면
또 얼음에 냉장을 당하는 고통이 없다면
그 고기는 썩는 길 밖에 없다‘라는
어느 작가의 글처럼,

어차피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라면
지금 그 일은 자신을 살리는
최선의 처방(處方)임을 믿고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어차피
생각대로 그리고 내 염려대로 되는 것도 아니요,
또 자신이 그렇게 조급하게 여기는 그 일도
다 때가 되어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고통의 순간 속에서도
여유를 갖고 사는 것은
어떤 종말이든 가장 지혜롭게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인생의 여유란
종교를 통해서 또 취미생활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가 있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지금 이 순간(瞬間)을 즐김으로 얻어지는
일상적인 여유가 더 중요하다.


나는 지난 주 어딜 다녀오다가
라디오에서 다른 나라 민요를 듣다가
흥에 겨워 신호등을 보지 못해
딱지가 떼였음에도
그 날 기분(氣分)은 세상이 다 내 것 인 것처럼
최고조에 달했다.

물론 나는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음악을 들으니
자연과 하나되고
또 그와 내 사랑하는 이웃들과
그 분의 축복을 나눌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몇 일전에는 시내로
나갔다가 어떤 사람 이사 짐 속에서
큰 화폭의 그림을 발견하는 순간 그 주인이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이렇게 그림 하나만 보아도
그 사람은 왠지 인생을 아는 사람 같고 또
무슨 대화든지 통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당기는 그 어떤 미지의 힘은
세상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그 분이 허락한 자유요
자신에게 주어진 은총임을 알기에 가슴은
그렇게 벅찼던 것이다.





‘인간은 위대해지지 않고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자유롭지 못하면서
위대(偉大)해질 수는 결코 없다....

그래서...
이전에 그렇게 정죄 했던 일들이
이전에 그렇게도 수치(羞恥)스럽게 여겼던 일들이,

이제는 모든 전통과 율법들을 초월하여
오직 내 자신이 얼마나 자유 할 수 있는가 라는 새로운
잣대 속에서 재해석되면서,

나는
인생의 참된 자유와 함께
인생의 참된 여유를 누리므로
인생의 참된 쉼을 얻길 갈망(渴望)하는 것이다.’

이 글은 칼릴 지브란의 시(詩)이다.
감사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그의 시는 이렇게
현실 속에서 가슴 깊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직업상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보지만
이렇게 인생의 여유를 아는 사람은 결코
특별한 사람이나 전문가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고
자연의 소리를 들을 줄 알고,
그리고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그 의미를 알고
그 속에서도 쉼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인생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라는
철학적 논제 같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意味)하는지를 알 것 같기에,

벌써 인생의 2/3를 보낸 생(生)이지만
내일에 대한 기대로 이 밤도
짧게만 느껴진다.





주여,

이제 보니
인생의 여유란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내 미래를 보고
내 이웃을 보고
당신을 볼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답니다.


주여,

이제 보니
인생의 여유란
단순히 쉼을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 되고
당신과 일치되는 것이라는 것을
...
이제야 알았답니다.


2010년 8월 16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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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허락작가ꁾ이요셉님, 갈릴리마을(우기자님), 포남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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