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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

유앤미나 2009. 11. 15. 16:23



3년 뒤


종말론(終末論)은
더 이상 먹잇감이 아닌 듯 함에도
‘2012’ 영화 개봉 전부터
세상은 때 아닌
종말론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예고편을 보면
규모 10이상의 지진으로
세계(世界)는 쑥대밭이 되면서
바티칸 성당, 브라질의 초대형 예수상,
히말라야산맥까지 맥없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엄청난 스케일과
정교(精巧)한 컴퓨터그래픽에
사람들은 벌써부터 입이 떡 벌어진다.


출판계 역시
이러한 종말론에 편승(便乘)하면서,
서점가에는 ‘2012’를
핵심 키워드로 한
출판물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2012’을
검색하면 50,800권이 넘는 신간서적들이
검색(檢索)되는데, 거의 대부분
2012년 종말론에 관한 책들이라고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종말론이 득실거리기는 마찬가지인데,

이번 종말론이 이전과 다른 점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나름대로 근거 있는 자료들이
동원(動員)되었다는 것이다.

고대 마야의 달력,
주역을 재해석한 타임웨이브,
성서의 독특한 글자 배열 바이블코드,
웹봇의 예언, 그리고
21세기답게 행성 충돌 시나리오까지
등장하면서
사람들을 긴장(緊張)시키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감지한
방송국에서도
이전 종말론과는 다르게
더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진화한 2012년
지구(地球) 종말론을 다루었다.





2012년에는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긴 난단 말인가.

우연(偶然)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 해는
한국과 미국 대통령 선거,
김일성 출생 100주년과 김정일 출생 70년,
중국 18대 공산당대회,
런던올림픽 개최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있는 해이다.

또 그때쯤에는 과학적으로도
완전 딴 세상이 된다.

둘둘 마는 TV, 노트북, 휴대폰이 가능하고,
유전자 치료로 암, 에이즈, C형 감염이
정복(征服)되고,
기후도 마음대로 조절하고,
수소 차와 무인 차가 질주하는 등
불과 3년 만에 세상은
개벽천지가 이루어질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실제적(實際的)인 일들이
점점 다가와서 그런지
미국에서는 종말을 대비하는
각종 컨퍼런스와 행사가 끊이지 않고,

한국에서도 의외로
대재앙(大災殃)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금융(金融)위기 확산과 함께
최근에는 신종 플루를 통해
2012년 종말론은 점차 더 힘을 얻고 있다.





세기적으로 실패(失敗)한 8대 종말론이
있음에도 새삼스럽게 또
2012년 종말론 태풍이 멈추지 않고
강하게 불고 있을까.

그 이유는 첫째로
상업적(商業的) 목적으로 볼 수 있다.

관련 학자들은 2012년 멸망설이
지극히 상업적 목적에서
비롯한 괴담(怪談)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영화나 책에서
종말론 근거(根據)로 삼고 있는
마야인 달력도 알고 보면,

그 날은 마야인들이
한 주기(週期)가 끝나는 날로 오히려
크게 축하하는 날임에도,

종말론자들은 이러한 특정 날짜를
멸망하는 날로 정한 것은
돈벌이 기회(機會)로 삼으려는 사람들의
소행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그 달력조차도
뉴에이지와 신비주의 그리고
할리우드의
기회주의(機會主義)가 만들어 낸
사기극이라는 말한다.

결국 인터넷과
마야의 유산(遺産)을 이용해
급조된 2012 종말론은
돈벌이에 급급한 자들이 만들어 낸
종말론 상품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둘째는 시대적 불안(不安)이 이러한
종말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최근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신종 플루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4천명이나 죽어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유럽에서도 계속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은
2012년 종말론에 시너지 효과를 더하여,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실제적인
공포심을 안겨주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한 상태를 경험할 때
거의 본능적(本能的)으로 확인해 보고 싶고,
그리고 왠지 따라가고픈
마음이 생겨난다.


어느 시대든 종말론이 대두될 때,
당시 사회적 현상과
심리적 특성이 반영(反影)된다는 것은
지난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역설적으로 풀어본다면
오늘의 상황이
혼란(混亂)스럽다는 것이요,

내일(來日)도 불확실하다는
심리적 상태가
이러한 종말론을 낳았던 것이다.





하지만 종말론은 한편으로 본다면
숨길 수 없는 진실(眞實)이라는 사실이 문제다.

이전에 종말론은 예언가들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는데,

지금은 과학자들이
외적으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갖가지 현상을 갖고,
앞으로 일들을 예측(豫測)하는 것이
종말을 예고하는
새로운 타입이 되어버렸다.

과학자들은 이전에
종말 예언들이 쏟아져 나올 때,
과학적(科學的) 근거를 갖고 그들 예언이
거짓됨을 반박했는데,

지금은 어찌된 노릇인지
이전 예언(豫言)들에
과학적 논증을 더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보니 종말에 관한 예언들이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現像)들을 통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기관측소의 변화,
지진과 화산활동에 심상치 않는 변화,
소행성 충돌론 근거,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홍수론,
변종바이러스의 위험지수 증가 등

끊임없는 학자들의 경고들은
한낱 지나가는
취객(醉客)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날마다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종말론을 어떻게 수용(受容)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자세로
준비해야 할까.

그냥 무시하란 말인가.
아니면 맹신하는 광신도처럼
그들과 한 패가 되어
추(醜)한 꼴을 보이며 살란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긍정적(肯定的) 시선을 갖는 것이
무작정 부정하는 것보다
유익할 것이다.

사실 종말론 원조는
예언가들이 아니라 성경(聖經)이다.

바이블 곳곳에
종말에 관해 묘사(描寫)되어 있는데,
특별히 계시록에 보면 주가 재림한 후
천년왕국이 찾아오고
그 후 백보좌 심판이 있은 후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된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종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비극적(悲劇的)인 상황이 아니라
이렇듯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듯,

새로운 세상(世上)이 시작되는
희망의 메시지이기에,
현재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내일(來日)에 대한 소망을 갖고
극복하게 하는 지혜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현실을 핑계 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경건(敬虔)이라는
또 다른 선물이라는 긍정적 시선에서
2012년 종말론은 차라리
자신에게 얼마든지 유익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러한 종말론은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명(使命)적 시선이다.

탈무드에서는
오늘이 최초의 날이요,
오늘이 최후의 날이라고 생각하라는
명언(名言)이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좋은 의미(意味)를 갖기가 쉽다.

인생은 그런 하루 하루가 모여
오늘을 이루었지만,
오늘이 또한 최후의 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매 순간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오늘이라는
시간들을
처음 시작하는 마음과 함께
또한 마지막이라는 자세(姿勢)로 살아갈 때,

인생은 진지해 지며 더불어
경건(敬虔)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익하다는 것이다.


천하의 미실이도 이번 주에 죽었다.
그녀는 이름에 걸맞게
자살(自殺)하므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했다.

과연 나는
인생 마지막 날,
아름다운 죽음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자살이 아니라
날마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보람 있게 사는 길이요,

그리고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이라 생각하고
매 순간 충성(忠誠)스럽게 살았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2012년 종말론을
지금 이 순간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비(對備)할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다.

지구 종말에 관한 과학적 정보는
수없이 쏟아지지만,
지혜로운 자는 이 일들을 미리
예견하고
실제적인 준비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종말을 향한 지구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하여 지하 병커나
종자(種子)들을 저장할 것이 아니라,

진정 마지막 그 날 그 분 앞에 당당하게
서기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準備)다.


어떤 사람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닌텐도를 하겠다고 농담(弄談)했지만,
스피노자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왜 하고많은 나무들 가운데
사과나무란 말인가.
그 나무는 인간에게 형벌을
가져다 준 유혹(誘惑)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스피노자는 이러지 않았을까.
이제 마지막 날,
욕망(慾望)에 따라 살았던 과거를 청산하고
신의 마음으로 돌아가,
사명(使命)을 위해
살겠노라는 결단의 마음이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





아프면 철든다고
죽음을 넘나드는 수술(手術) 받은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음을 나는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을
통해 또 한 번 깨달았다.

첫째는 살아있음에 감격하고,
둘째는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고,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되겠노라는
사명에 대한 결단(決斷)을 하게 된다.


죽음이란
단순히 삶과의 이별이 아니라,
종교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하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의 분리(分離)요,
영혼은 신 앞에서 농부처럼 살아생전
뿌렸던 씨를 거두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두려움이 아니라,
가장 진실한 모습이요
인생의 참 질서(秩序)라는 사실을 안다면,

농부처럼 태풍이 불고
소나기가 온다 해도
씨를 뿌리고
거름 주는 일을 그만 두지 않을 것이다.





주여,

세상은
온통 유황(硫黃)냄새가
가득함에도,

저는 지금
무엇에 취해있기에,
아직까지도
정신 못 차리고 있습니까.

더 이상
폭풍을 탓하지 않게 하소서.
더 이상
폭우를 탓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이
제 인생의
첫 날이요 마지막 날인 것처럼
포도원에서
열과 성을 다하게 하소서.

2009년 11월 15일 추수감사일에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경포호수’ 카페 자유게시판
공지(피러한 그림...)를 읽어보세요.
주위에 혹 해당되시는 분이 계시면 소개 많이
해 주세요^*^



사진허락작가ꁾlovenphoto님 투가리님 갈릴리마을(우기자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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