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피러한님의 글모음

진지한 고민

유앤미나 2009. 10. 4. 15:30




진지한 고민(苦悶)


어느 날 시내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서점에 진열한
책(冊)들을 보고 있는데,

‘고민의 힘’이 눈에 확 들어와
페이지를 넘기는데,
제목만큼 내용도 너무 신선(新鮮)해
몇 시간 만에 완독을 했다.


이 책은 재일 한국인 최초
도쿄대 교수가 된
강상중 씨의 인생(人生)론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학창시절
한국인으로 정체(正體)성 혼란을 겪으면서
고민해왔던 문제들을
우리가 지닌 근본적 문제와 결부시켜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베버의 시각을 통해서,

나는 누구인가,
돈은 전부인가,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일, 사랑, 구원, 노후, 죽음 등
아홉 가지 화두를
잔잔(潺潺)하게 풀어나갔다.


그는 고민하는 인간(Homo patience)은
도구를 이용하는 인간(Homo faber)에 비해
비할 수 없이 높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고민의 중요성을 수없이
역설(逆說)했다.

나날이 불안과 고민 속에
살고 있는 일본에서
100만 독자를 일으킨 책으로
고민(苦悶)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젊은이조차
이 책을 통해 인생에서
왜 고민이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왜 갑자기
고민(苦悶)타령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환경적 영향에서 왔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젊은이들이
88만원 세대가 되면서
스스로 우리의 미래는 홈리스
희망(希望)은 전쟁이라고 자조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기에
고민 속에서 고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은 매년 자살(自殺)로 3만 명이
죽어가고 있다.

경제적 풍요 속에서도
이렇게 자살자가 많다는 것은
이 시대의 키워드는 ‘우울(憂鬱)’이요
희망이 없다는 단적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 부모 시대에는
어렵게 살았지만 희망(希望)이 있었는데,
지금은 풍족함 속에서도
소망이 없기에
고민과 시름은 더 깊어만 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우리 삶에 고민이라는 초강력 태풍이
시도 때도 없이 불고 있을까.

그 책에서는 세계화(世界化)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세계화는 생존(生存)을 위해선
도덕윤리도 필요 없다.
더더욱 삶의 방식은
문제도 안 된다.

세계화는 자본주의 극대화를 이루면서
외적으론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주었지만 실제론
빈부격차, 개인주의, 물질우상이라는
괴물들을 만들어 내
외로움과 소외라는 더 큰
사회적(社會的) 문제를 안겨 주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현대인은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야 할지
아홉 가지 질문을 통해
해답을 주고 있는데,

그 해답(解答)이란
다름 아닌
‘고민’에 있다고 역설한다.





고등학교 땐 수능시험만 잘 보면
고민 끝이라 생각했는데,
인생이 어디 생각대로 되던가.

그 후엔 그것과 비할 수 없는
고민(苦悶)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독자들이 이 책에
열광하는 이유는
진지하고 치열한 고민만이
이 어려운 시대(時代)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저자의 말에
백번 공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일본보다 여러 면에서
더 열악하기에 우스운
말 같지만,
최후에 고민하지 않으려면
지금 부지런지 고민하며 살아야만
모든 난국(難局)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제(課題)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만이
인생의 발자취를 찍어가며
살 수 있는 법이다.

곧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요
고민하는 힘이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 볼 때는
고민하는 사람은
아이처럼 불안(不安)하고
육체나 정신건강에 좋을 리 없다.

그렇지만 고민 하지 않으면
무지와 이기심(利己心)은 늘어나고,
영혼은 피폐해짐을 본인도
서서히 알게 된다.





그렇다면 고민(苦悶)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자아(自我)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지난번에 나는
김 전대통령의 서거 소식보다는
같은 날에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분의 자살(自殺)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멤버 중 어떤 이는 자살 전 날 그녀를 만나
함께 식사하면서 다시 살아보자고
약속까지 했는데,
새벽 3시에 그녀는 다시 볼 수
없는 강을 홀로 말없이 건네 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몇 일전에
아내도 시내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더라는
말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나는 더 놀랐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묻지 마 살인(殺人) 사건과 함께
종말(終末)이라는 봇물이 터지기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자살뉴스가 끊이지 않게
들리는 원인은 무엇인가.

나는 그 모든 요인은
한 마디로 자아 상실(喪失)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저자도 이 모든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
인생의 모든 고민의 시작을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정체성에서 출발(出發)했다.

모든 사람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갔건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자아(自我)가
없음을 알게 된다.

자아를 상실하게 되면
모든 기준(基準)이 돈에 있고
돈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인생에서 없는 줄로
착각하고 실제로 돈 외에는
아무 관심조차 갖질 않고 살아간다.

결국 자아를 상실하면
사람도
성공도
아니 인생 자체를 잃게 되므로
고민하므로 자아(自我)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자아는
어떤 방법으로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진지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지함이란 속도나 성과와
상관없는 일이요
관계(關係)를 의미한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두 가지는
자아의 발견과
타인과의 관계(關係) 회복이다.


우리는 수많은 고민 속에 살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한 고민은
얼마나 했던가.

진실로 자신에 대해 고민하므로
자아를 찾았다면 이제
그의 고민은 타자(他者)간의 관계에 있게 된다.

인간은 관계(關係)의 동물이다.
관계 속에서 태어나
관계 속에서 죽어 가는데,
현대사회에 들어와 이웃이라는 관계를
잃어버리고 각자의 성에 갇혀
외로워하다가 죽어간다.

그는 거듭 말하길
진지하게 자아와 대면하고
진지하게 타자(他者)와 마주하라는 것은
타자를 인정할 때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자아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가두고 있는
성(城) 밖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쇠약(神經衰弱)은
20C 모두가 공유하는 병이라고
소세키의 메모에 나온다.

아니 사람이
왜 비싼 밥 먹고
신경쇠약에 걸려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로 인해
생겨난 신경이기에
불가피(不可避)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은
사람은 관계 속에서만
‘나’라는 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돈이란 무엇인가.
세상 모든 것이 변(變)해도
돈만은 불변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진리란 돈은 어떤 군자라도
악(惡)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돈을 갖고
이웃을 섬기는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다.


종교(宗敎)란 무엇인가.
저자의 종교관은
내 생각과 사뭇 다르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종교는 제도가 아니라,

개인이 속해 있는
공동체(共同體) 안에서
인정받는 삶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일(work)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배려를 통해
자신의 존재(存在)의미를 알 수 있고
거룩한 기회라는 것이다.


사랑(love)이란 무엇인가.
아름답고 신성하다는 개념이
결혼 이후에
그것만큼 차갑고 딱딱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곧 서로 간에
자유에 대한 기대가 가정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회복되는 길은
끊임없는 상호작용,
서로에 대한 인정(認定)과
섬김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해 고민이다.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시시각각 느끼면서
그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죽음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두려움도 없어지고,
철없는 젊은이처럼 뻔뻔해지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自信感)이
생기는 사람이 노인이다.

어차피 뭘 해도 잃을 것도 없기에
오히려 젊은 사람보다
더 패기(覇氣)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정말로
노인(老人)이 되어야만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삶과 일, 사랑 그리고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독자에게 주었다.

곧 사람들의 모든 고민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데,
진정 그들을 통해
그 관계(關係)가 정립되었다면,

사랑도
노후도
아니 죽음까지라도
노인처럼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성취(成就)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많은 부분을 잃기도 하지만
그들을 통해 가장 소중(所重)한 것을
다 얻지 않았던가.

모든 이가 두려워하는
죽음까지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구원(救援)은 결코 제도가 아니다.
신과 소통하는 사람은
분명 이웃과도 잘 통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현대산업은
서비스업이라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나도 동감(同感)하는 바이다.

사람장사는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우리는 각자의 직업을 통해
관계를 알고
자신을 재확인(再確認)할 수 있다.

때론 나도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하는
안도감도 들지만,
어느 땐 나처럼 살다간
큰 일 나겠구나 하는 자각심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을 통해
날마다 미래를 준비하고
죽음을 준비한다.





주여,

저는 지금
무엇을
고민(苦悶)하고 있습니까.

돌이켜보면
아직도
의식주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언제나
너희 자신을 위해 울라는
말씀대로,

제 자아를 찾고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련지요...

2009년 9월 15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그룹명 > 피러한님의 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 다른 스타일  (0) 2009.11.01
흠 없는 사람  (0) 2009.10.20
한국인  (0) 2009.09.01
비우는 삶  (0) 2009.08.03
사람냄새  (0) 2009.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