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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유앤미나 2009. 7. 9. 12:57




사람냄새


아는 분과 통화하던 중
어떤 사람에 대해 말을 하자,
대뜸, ‘그 사람 사람냄새가 안 나!’하며
역정(逆情)을 냈다.

모처럼 들어보는 ‘사람냄새’라는 말이
그리도 향수를 자극했던 것은
나도 그 냄새가 그리운 모양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마음 한 구석엔 수없이 되 뇌이고 있다.

‘사람 냄새가 안 나...’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사람에게 사람냄새가 안 난다면,
본능으로 살아가는 동물과 다를 바가 없기에
다시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이후 계속 언론에
두드러지게 등장했던 어떤 칼럼리스트가
아무개는 사람냄새가 안 난다며
공개적으로 특정인물을 비판(批判)했다.

순간 나는 그의 글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사람냄새?
누가 사람냄새가 안 나는데...’


나이가 들수록,
‘사람 냄새’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조금은 알기에,
내 자신도 다른 어떤 수식어보다
듣고 싶은 말이다.

비록 물질문명으로
각박한 시대가 되어 사람냄새 맡기가
갈수록 더욱 어렵지만,

아직도 진정한 리더들은
대체로 사람냄새가
물씬 풍겨 온다.





다른 직업군도 마찬가지지만
특별히 연예계는 특성상
개인적인 스캔이 없어도
확인도 되지 않는
악성 루머 한 마디에 추락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연예계일지라도
평소 사람냄새가 났던
연예인은
설령 어떤 스캔이 있다 해도
팬들의 뇌리에 긍정적인 바이러스가
작용하여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남게 된다.

그만큼 세상은 원칙보다는
사람냄새라는 정을
더 우선시하는
아직도 여유(餘裕)가 있는 시대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사람냄새란 어떤 냄새를 말할까.

첫째는 사람냄새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心)을 말한다.

최근 들어 김정일이 뇌졸중 후유증으로
술을 마시며 자주 운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김일성도 죽기 전에
말년에 많이 울었다고 하는데
그 때보다 김정일은 지금 더 운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그렇게 악한 독재자(獨裁者)가
뭐가 아쉬울 것이 있다고
운단 말인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김정일이 아니더라도,
크든 작든 우울증 환자처럼 마음이 늘
허전하기만 하다.

옳은 소리 잘 하고
감수성이 예민하여 잘 웃고
잘 우는 사람도
왠지 새벽바람마냥 시리기만 하다.

그 누구에게도
따스함은 기대할 수도 없고
깊은 영혼의 숨결은
갈수록 옛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모든 인간은
이렇게 불안전하기 짝이 없다.
남 앞에선 강한 척 하지만
혼자 있을 땐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어찌할 줄 모른다.
알고 보면 사람은 다 불쌍하다.

이 단순한 진리를 알지 못하고
사람을 차별하고
끼리끼리 지내다보면
어느 덧 자신도 그 덧에 빠져있음을 알게 된다.


신은 어리석은 인간에게
이러한 진리를 깨우치고자 가끔
자신과 완전히 상극인 사람을 만나게 하고
황당(荒唐)한 일을 겪게 한다.

그러므로 돈 냄새밖에 나질 않는
세상 속에서도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은
사람을 긍휼(矜恤)이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어느 철학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6백만 유태인을 학살했던
나치전범들에게 공통점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불쌍히 여길 줄 아는 공감(共感)이
결핍되었다고 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부족할 때
우리는 분명 가장
위험한 자리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불쌍히
여기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만약 무능력한 남편을
사랑이 없는 눈으로 바라보면
화가 나지만
사랑의 눈으로 보면 한없이 불쌍하다.

천국이란 사람들을 바라볼 때
불쌍하게 여겨진다면
이미 그 사람의 천국은 시작되었다.


긍휼(矜恤)에 대한 더 중요한 진리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또한 자신도
긍휼함을 얻는다는 일이다.

모든 기적의 이면에는
종교적인 여러 현상을 차지하더라도
밑바탕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흐르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란
자신과 이웃이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였던 것이다.





둘째로 사람냄새란
상대를 용납(容納)함을 의미한다.

어떤 분은 만날 때마다,
A형은 나쁘고
O형은 좋다고 말하기에 나는
그에게 혈액형에 관해 떠도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해 주었다.

A형은 성격이
소심하고 세심하며 지라ㄹ같다고 해서
‘소세지’라고 하고,
B형은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지라ㄹ같다고 해서 ‘오이지’라고 하고,
O형은 단순하고 무식하며 지라ㄹ같다고 해서
‘단무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지막 AB형이 압권이다.
성격이 지라ㄹ같고 지라ㄹ같고 또 지라ㄹ같아
일명 ‘쓰리지’형이라고 한다.

내 말을 듣던 그는 대뜸,
‘그럼 모든 사람들은
지라ㄹ같다는 말이야?’
라고 말하며 눈을 똥그랗게 떴다.





나는 직업상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처음엔 인상으로 가름하지만,
차츰 알고지내다보면
혈액형과 상관없이
성격(性格)을 파악할 수가 있는데,

누구라 할 것 없이
사람마다 연약한 점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는
관계(關係)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안에 또 다른 자아는
까다로운 이들을 용납하기보단
상대의 부당한 점을
지적하며 불평(不平)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지금 불의한 자로인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본인은 위로받고 싶어서 말했지만
사실은 '자기 의'라는 올무에
걸려있음을 후에 가서야 알게 된다.





인간사회에서
서로 불쌍히 여기고
서로 용납(容納)하지 않고는
남은커녕 부부간에도 전쟁밖에 날 것이 없다.

베이컨은 인간이 복수할 땐
그 원수와 동등하지만,
용서할 때에는 원수보다 위에 있다고 말했다.

연약한 인간에겐
용서(容恕)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신의 섭리(攝理)를
믿으므로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수용하고
용납하는 모습 속에서
우린 사람냄새를 맡게 되면서,

구수한 된장국처럼
일마다
심령이 평안(平安)케 된다.





셋째는 사람냄새 나는 사람은
분야를 초월하여
덕(德)이 있는 사람들이다.

짧은 인생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사람들이 만나고 싶은 사람은
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덕이란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면서도,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하게 대하지만,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게 대하는 덕목(德目)을 말한다.


만약 의사가 환자를 수술할 때는
제거해야 할 부분은
정확히 그리고
단호하게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잘라내는 것으로
의사의 할 일이 끝난 것은 절대 아니다.

더 중요한 일은
종양(腫瘍)을 잘라낸 후에는
수술했던 부위가
잘 아물도록
수술할 때보다 몇 배의 시간을 요하면서
치료해야 한다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잘라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살이 다시 붙도록
싸매고 치료하는 일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 역할을
우리는 덕(德)이라고 말한다.





세상(世上)에는
악한 세포를 기가 막히게 잘
도려내는 사람이 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원칙대로 할 말은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이 사회에는 그렇게
기술이 좋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만사
그것만 갖고는 절대로 안 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기술과 원칙(原則)이 아니라 덕이다.

덕이란 기다림이다.
덕이란 용납이다.

아니
덕이란 그와 한 배를 타는 것이다.

재래시장 같은
그런 넉넉함과 훈훈함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며
생을 디자인하게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덕이다.

그러므로
덕이라는 덕목만큼은
어떤 위선(僞善)도 통하지 않고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에 사람들은
덕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것이다.





주여,

지금 저에겐
무슨 냄새가 납니까.

다른 사람에게 나는 냄새에는
그리도 민감하면서
정작
저에겐 무슨 냄새가 납니까.

원하기는
당연히 사람냄새도
나야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냄새가 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009년 7월 9일 강릉에서 피러한이 보냅니다.


사진작가ꁾ투가리님, 정기로님, 이요셉님, 해와달(원강님, 우기자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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