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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과 인성

유앤미나 2008. 4. 9. 16:20



실용과 인성(人性)


그리도 말 많았던 남주홍, 박은경 장관
내정자가 자진 사퇴(辭退)했다.
야당에서는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김성이 씨도 부적격자라고
끝까지 몰아붙이고 있다.

이것도 부족(不足)했던지 인사청문회에서
장관후보들의 코미디 같은 답변은
국민들을 부글부글 끊게 한다.

안타깝게도 이명박 실용정부의
첫 번째 시련은
의외로 인사(人事)에 있었다.

인수위가 두 달간 추리고 추린
사람들임에도 몇 사람은
땅 투기, 재산신고누락, 이중국적,
병역특혜, 탈세, 논문표절 등 의혹투성이였다.

정말로 능력과 코드에 맞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검증(檢證)을 잘못한 것인지
국민들은 지금 헷갈리고 있다.


이미 시중에는 ‘고소영’에 이어
‘강부자’라는 조어(造語)가 떠 돌 정도로
인선에 대한 불신감이 고조되고 있다.

야당(野黨)은 부자 내각에 대한
도덕성을 좀 더 부각시키면 4월 총선에
승산이 있다고 믿고 공격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전(以前) 정권에서도 인물난은 여전했다.
총리로 세운 사람의 부동산 투기에서
정책실장의 논문표절 의혹,
어느 장관의 병역비리와 이중국적 문제 등으로
울며 내려온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결과는
좌파 10년을 거치면서 인재풀이 좁았고.
또 능력을 중시하면서도
부동산 검증(檢證)을 소홀했다는 점,

그리고 청와대 정무기능이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몇 가지 요인들이 그런 실패를 불러왔다고
자체 분석(分析)하고 있다.

실제로 인선 팀이 가장 고민했던 일도
보수 진영에 속하면서 사회 경력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들은 거의
재력가(財力家)들이 많았다는 부분이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재산(財産)이 많다는
자체를 갖고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재산 취득 과정, 재산권 행사의
불법이나 탈세 등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야당의 건수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상위(上位) 5% 집단들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현실이
우리를 더 고민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부자(富者)들을 유독 더 싫어하는 이유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가
거의 부재(不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기 로마시대에
사회 고위층의 사회봉사와 기부 등
공공정신까지는 기대(期待)하지도 않는다.

다만 정당한 방법이 아닌 불법으로
부를 축척한 것에 대해 분노(憤怒)하는 것은
투기가 극성할수록 서민들은 내 집
마련의 기회가 박탈되고,

전세 폭등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국가 발전의 위한 투자 자금이
부동산 투기로 흘려
국가 경쟁력까지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이명박 새 정부가 주창하는
경제도 좋고,
국민 성공(成功) 시대도 좋다.

하지만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은
법과 원칙이 지배하므로,
땀 흘린 만큼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의 바탕 위에 세워나가는 나라다.

벌써부터 여당(與黨)에서는
인사 결과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총선 압승은 어렵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총선(總選)이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우리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려면,

이제라도 더 멀리 내다보고
근본적인 것부터 회복(回復)해야 한다.





첫째는 도덕성(道德性) 회복에 있다.

도덕성은 어느 시대나
인간 내면의 뿌리로서 품성(品性)과
아울러 개개인의 삶에 기본요소가 되고 있다.

뿌리가 시원찮은 나무는 결코
큰 나무가 될 수 없듯이,
도덕성이라는 뿌리가 약할수록 그 사회는
반(反)도덕적인 행위가 속출하여
국가 경제는 바로 세워질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도덕성(道德性)에 대해
말을 하면 고리타분하게 여기거나
아니면 성(性)윤리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도덕성은 그 정도 차원이 아니라
사회성을 담고 있는
공동 운명에 관한 중차대한 일이라는 점이다.

알고 보면 이것만큼 사회와
개개인의 삶 속에서
실제적(實際的)인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산업화를 통해
경제적 부(富)를 이루었지만,
거기에 비례하여 정신적인 빈곤과
사회의 양극화 현상,
환경(環境)파괴 등이 이어지면서
도덕성은 소문도 없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런 결과가 개인과 국가에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은
역사상 부패(腐敗)한 선진국은
존재한 적이 없었고,

거짓된 인생은
행복(幸福)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과거 역사와 주변 사람들이 증거 해 주지 않았던가.





얼마 전 영국 경제제단에서 발표(發表)한
행복지수 1위는 미국이 아니라
남태평양 ‘바누아투로’였는데,
이 나라 경제는 233개국 중 207번째로
가난한 나라였다.

우리는 경제지수로는 상위권에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행복지수는 200위
이하에 머물러 있었다.

이것을 보면
경제성장과 행복(幸福)은 반드시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의 최대
화두(話頭)는 경제 살리기다.

하지만 개인이나 국가에서 도덕성은
경제보다 더 중요한 원리다.

도덕성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현대사회의 역기능(逆機能)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획기적인 방법이다.

도덕성은 반드시 뿌린 대로 거둔다.
사회에 공헌하고,
이웃어르신과 부모님을 공경(恭敬)하면
뿌린 것과 비할 수 없이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되는 것이
만고불변의 법칙임을 우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두 번째는 가정(家庭)교육의 회복이다.

우리는 개화(開化)기를 지나면서
생활양식 전체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교육의 주체다.

모든 교육이
가정에서 학교로 바뀌면서
서구적 교육은 뿌리를 내렸을지 몰라도,
가정에서 그리도
강조했던 인성과 도덕성은
학교 교육의 지식(知識)에 밀려나면서,

교육의 불균형이 생겨나 급기야
오늘날과 같은 윤리적 황폐화 사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가정(家庭)에서 형성된 인격과
바른 도덕의식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활동하게 되므로,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처럼
먼저 가정(家庭)이 바로 서야만 만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사회나 국가도
건강(健康)하게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다.

결국 가정은
인성(人性)을 개발하는 현장으로서,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는 이 땅의 가장 중요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격과 도덕의식은 지식과 기술에
자리를 내주면서,
‘가정은 사라지고, 학교(學校)만 있다’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늘 날 입시(入試) 경쟁이
자녀들을 가정에서 학교로 내 몰다보니,
집에선 얼굴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부모가 있는 고아가 되면서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져만 가고 있다.

곧 가정에서 올바른
인성(人性)교육을 받지 못한 그들은
세상 가치관을 바로 걸러내지 못한 채,
기성세대처럼 물신 숭배와
탈선(脫線)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인 모순으로 이어진다.


이제 더 이상 인간교육을
학교(學校)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가정에서 제 역할을 다하므로
진정한 사람다운 교육을 시켜야 한다.

우리의 자녀(子女)는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를 통해
인생의 모든 시련들을 이기게 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통하여
어딜 가든지 양보의 미덕을 갖게 하는 것이다.

가정이 이러한 역할(役割)을 다해야만
어떤 교육이든 바로설 수 있고,
사회인으로서 바른 가치관이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세 번째는 인성(人性)교육의 회복이다.

도덕성 회복은 가정교육의 회복이요,
가정교육(家庭敎育)이란
인간교육과 인성교육의 회복을 의미한다.

지식이 아무리 많다 해도
사람다운 모습이 없을 때 그 사람은
어떤 공동체(共同體)에서든지 설 자리가 없기에,
무슨 교육을 하든지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인성교육이 바로 되어 있어야만,
가정과 학교, 사회, 국가 어느 곳이든지
유기적으로 관계(關係)를 맺으며
유용한 사람으로
맡겨진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성(人性)교육은 무엇인가.
나는 인간으로서 필요한 인성적인 모든 요소들이
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에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약할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졌을 때에도 당당하고,
이겼을 지라도 겸손하고,
실패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고,
편안한 길보다는 도전(挑戰)하는 길을 택하고,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며,
어제를 통해 내일을 디자인하는
지혜로운 자녀를 원했다.

요즘 들어 이 기도가 더욱 실감(實感)나는 것은
가정에서 올바른 정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녀들이,
타인에 대한 배려심은 찾아보기도 힘들고
이기주의가 만연된 사회에 익숙해져
부모까지 배신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선(大選) 전에 김경준 이라는
특별한 젊은이를 통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게 되었다.

그는 인물도 잘 났고 머리도 좋아
미국의 명문대를 나와
벌써 30대 초반에 고액의 연봉을 받고 일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료(同僚)들은 그를 꺼려했는데
그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그는 일을 잘하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곧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거든요’

그들의 염려대로 김경준은
자신의 야망(野望)을 성취하기 위해
여권과 공문서까지 위조하다가,
한 순간에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런 사고를 저지른 배경은
기본적인 인성교육과 도덕적 가치 결여에
있었다는 것은 캐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주변의 외적인 조건들을 떠나서
바르게 가정교육 받은 자녀들이 부모(父母)의
노후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섬기는
모습은 흔치 않지만,
얼마든지 찾아 볼 수는 있다.

이 사회는 능력(能力) 있는 사람을 요구하지만,
가장 큰 능력은 인성과 도덕성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인성교육을 회복시켜야만 한다.

실용(實用)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쩜 가장 인간다운 사람이 가장 실용적인
사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여,

모니카 여사의 기도가
어거스틴이라는 인물을 만들었듯이,

기도(祈禱)하는 부모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음을
내 자녀를 통해 확인케 하소서.

그들은
내 소유물이 아닌
당신이 맡겨준 기업(企業)이기에,

언제나
말씀을 통해 길을 찾고,
기도하므로
아버지 마음을 품고 살아가므로,

어디서나 겸손하고
감사를 아는 자녀가 되어
베풀고 섬기는 당신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008년 3월 2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작가ꁾ 해와달(우기자님, 제임스박님) lovenphoto님 투가리님 크로스맵 포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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