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1월 1일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입학하여 새 책을 펼치던 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첫 눈을 맞던 떨림으로 애인과 함께 한다면,
첫 출근할 때 신발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맞는다면...
정채봉씨의 '첫 마음'이란
글은 누구나 품었을 소중한 다짐들이다.
처음 먹은 생각을 갖고 일 할 때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기에 그 모습은
가장 순수(純粹)하고
가장 아름답다.
요즘 동네마다
당선자들이 내건 현수막에는,
‘처음처럼 일 하겠습니다’,
‘초심(初心)을 잃지 않겠습니다.’라는 글귀들이 많다.
처음에는 누구나 활기차다.
처음이야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넘치는 에너지로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심은 흩어져 가는 것이 문제다.
일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현실적인 어려움들과
적당하게 타협(妥協)하기 시작하고,
또 어느덧 자신도 그 환경에
동화(同化)되어 가면서
처음 먹었던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당혹스러워 한다.
그렇다, 인생 승패는 다른 것이 아니라
여기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초심(初心)을 잃으면 자신의 길을 잃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자멸(自滅)하지만,
첫 마음을 끝까지 붙잡고 살아간다면
자신의 꿈도 이루어지고
그리고 민심(民心)도 떠나지 않게 된다.
여당의 색은 노랑색임에도 이번선거에는
온통 푸르스름한 색으로 덧칠하고 있음을 보고서,
국민들은 여론조사가 아니더라도 이번 선거
결과(結果)를 예측할 수 있었다.
3년 전 총선(總選) 때 국민들이
여당(與黨)에게 과반 수 넘게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지역 구도를 극복하고 고질적인 실타래들이
풀려지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열흘 붉은 꽃 없다고,
기대와는 다르게 그들은 처음 먹은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고 민심과 멀어지면서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맞이하게 된것이다.
종교 개혁 모토도
‘처음으로 돌아가자’였듯이,
이렇듯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과제(課題)는
처음 먹었던 마음을 유지하는 일이다.
초심(初心)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본(基本)에 충실해야 한다.
달리기 할 때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준비운동 없이 곧바로 달리기를 하면 무릎이 아프다.
그리고 운동(運動)하는 것이 재미도 없고
졸지에 그것은 일이 되어버린다.
인생은 결과를 위해서만 뛰어서는 안 된다.
기본이 쌓여지면 결과는 좋게 나타난다는 것을 믿고
과정(過程)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성공적인 인생이라 말 할 수 있다.
곧 처음에 먹었던 생각들은
가장 기본적인 일들이 쌓여짐으로 성취되는 것이지
로또복권처럼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간디는 일곱 가지 죄악(罪惡)을
일상 속에서 지극히 기본적인 일에서 찾았다.
-노력(努力)이 빠진 부
-양심(良心)이 빠진 쾌락
-인간성(人間性)이 빠진 지식
-도덕(道德)이 빠진 상업
-인간(人間)이 빠진 과학
-희생(犧牲)이 빠진 기도
-진실(眞實)이 빠진 정치
현대인에게 이런 일들은
죄로 인식하기는커녕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이러한 덕목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 스스로가 알게 될 것이다.
인생에서 기본이란 작은 일이지만
그 유익(有益)은 가장 먼저 자신에게 돌아간다.
마치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여유 있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 감을 타인이
먼저 알고 그와 함께하길 원한다.
무엇보다도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일을 맡긴다는 바이블 말씀처럼
사람들은 계속 일을 맡기게 된다.
그의 인생은 날마다
새롭고 깊어지고, 넓어지게 된다.
아, 이런 것이 진정한
사는 보람과 자신감이 아니겠는가.
둘째는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마음을 비워야(케노시스)만 가능하다.
기본(基本)이 충실하므로 일의 바탕을 깔고서는
이제 겸손한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한다.
지방선거운동 기간 길거리에 나가면
후보자들은 90도 이상 절을 한다.
아니 당선된 후에도 몇 일 동안 사거리에서
인사하고, 낙선된 사람은 성원해 주셔서
고맙다는 현수막을 걸어놓는다.
모두가 이런 자세로만 살아간다면
대한민국은 금방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초심을 잃을 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이번 선거는 정부와 여당의 심판 정도가
아니라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탄핵(彈劾)이라고까지 말한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데,
민심(民心)이 이지경이 되도록
그들은 눈과 귀를 막고 무엇을 했단 말인가.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머리만 숙여 인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낮아진 만큼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들은 백성의 소리를 듣지 못했던지
아니면 무시했던지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상도 좋고 방향도 옳다 해도
전략(戰略)이 부재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겸손(謙遜)은 다른 것이 아니다.
민(民)의 소리를 알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전략이다.
물론 한나라당도 잘해서 표를 받은 것은 아니다.
대안이 없기에 심판의 반사이익을 얻은 것
뿐이니 초심으로 돌아가 겸허하게
수용하자는 박 대표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들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양(羊)은 다른 상처는 다 치료할 수 있으나
귀가 막히면 속수무책이라고 한다.
그 귀가 막히지 않도록
처음처럼 낮아지고
처음처럼 소리가 잘 들려야 한다.
그것이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는 것이다.
셋째로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목표(目標)를 점검해야만 한다.
정말 우리 국민들은 단순하다.
언제나 정치와 언론에 놀아나고 있다.
역사는 이제껏 수구세력과
개혁(改革)세력의 싸움이 반복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로 그 한 쪽의 싹이 잘라버렸다.
걱정스럽게 여기는 것은
좋은 정책이란 항상 균형 잡힌 대립과
견제를 통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젠 그마저도
기대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혼자 잘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곧 초심을 지키려 기본에 충실하고,
또 겸손한 마음으로 일을 해도
자기를 돌아볼 거울과 같은
견제세력이 없다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먼저
스스로 자신을 통해 점검하고,
타인을 통해 반성하고 그리고 우리는
견제(牽制)자들을 통해 수정해야만 한다.
국민들은 220볼트 전기를 쓰고 있는데
나 혼자 110볼트 코드가 좋다고
계속 그것만을 강요한다면,
국민들에겐 무시와 냉소 그리고
모멸감을 주는 것 밖에 얻어지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견제자를 방해(妨害)자가 아니라
파트너로 생각하고 그 기회를
역발상적인 자기개발로 삼아야 한다.
멈춘 물은 썩는다.
그래서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건만
그것으로 부족한지 신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견제와 비판을 통해서 약속한 의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이다.
주여,
처음
기름부음 받을 때,
또 처음 직분을 받았을 때,
저는
두려움을 넘어
당신의 불꽃같은 눈에서
긍휼(矜恤)한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잃어버린 제 초심을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나요.
아니면
당신 앞에 토설해야 하나요.
다시금
눈물이 회복되어
당신의 음성을 듣기 전
저들의 신음소리를 듣게 하소서...
2006년 6월 4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