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흔히들 18c는 민중이 발견되었고
19c는 여자가 발견되고, 20c에는 어린이가,
21c에는 노인이 발견(發見)되었다고 한다.
가장 보호받아야할 그들이 이제야
보물(寶物)처럼 새롭게 발견되어져 가고 있는데,
그들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어린이를 꽃으로
비유하는 것은 그들은 사회(社會)나
가정 그리고 미래에 꽃과 같은 존재이기에 그렇다.
제자들이 하늘에서 누가 가장 크냐고 질문할 때,
어린이라고 대답하신 것은 그들 속에는
모든 어른이 본 받아야할 이상적인
모습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먼저 어린이는 겸손(謙遜)하다.
어린이는 어른에 비해 모든 것이 약하지만
겸손이라는 미덕(美德)이 있기에
천상(天上)에서 가장 큰 자라고 말했던 것이다.
어거스틴은 신앙 덕목 중에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다.
겸손한 자는 이웃을 신(神)처럼 섬기고
그들을 통해 우리는 신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다음으로 어린이는 순수(純粹)하다.
어린이는 백지와 같은 깨끗함이 있다.
누가 말을 하면 그대로 믿는 순수함이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구는
어린이는 꿈과 호기심 많아서
자연(自然)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데,
어른들은 생각이 굳어져 그것을 볼 수
없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는 친화력(親和力)이 있다.
어린이는 싸우고 토라지기도 잘하지만
다음 날에는 또 사이좋게 지낸다.
곧 지나간 날의 상한 마음을 잘 잊고 살지만
어른은 서운한 감정들을 풀기가 어려워
서로에게 가시가 되어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이렇듯 어린이는 겸손하고 순수하고 친화력이 있어
어른의 선생이 되고 있는데 부모는 가정에서
이들을 어떻게 양육(養育)해야 할까.
미 작가 어빙은 가장 훌륭한 부모는
자녀들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는
우리 집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가정은 인간교육의 으뜸이요
첫 출발점이 되는 것은
그들의 언어와 인생관은 다른 사람이 아닌
가정 안에서 부모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두 쌍 결혼하면 한 쌍은 이혼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사회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정이 해체되는
아픔이 공존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건강한 가정을 위해
우리는 다음 세 가지 기본적인 교육이
반드시 가정(家庭)을 통해서 이루어져만 한다.
첫째로 가정은 인격(人格)교육의 장이다.
부모의 말 한마디가 자녀의 미래를 바꿀 수가 있다.
오늘날 가정이 쉽게 깨지는 이유는 어렸을 때,
축복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부모의 축복(祝福)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다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고,
반면에 부모의 축복을 받고 자란 경험처럼
인생에서 소중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인격(人格)이란 그 축복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축복은 ‘개성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의 꿈과 능력은 부모의 생각과 너무 다르기에
부모가 자녀들의 개성과 능력을 안다는 것은
수양하듯 인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어설프게 보일지 몰라도
누구나 감추어진 잠재능력(潛在能力)이 있다.
그 안에는 놀라운 가능성이 있기에,
타인은 볼 수 없는 그들의 가능성을 알고
격려해주고 잠재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일이
가정에서 첫 번째 할 일이요 그것은 또한
인격교육의 첫 걸음이 되고 있다.
또 축복이란 ‘너그러움’을 통해 나타난다.
가끔 부모들은 자녀 앞에서 부정적인
말을 하며 타인에 대해 흉을 볼 때가 있는데,
그런 모습들이 자녀들에겐 심령에 상처를 주게 되고
또 어른들을 우습게 알게 하여 나중에 똑같이
뒤에서 남을 비방하는 자녀가 되게 한다.
남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누가 범죄 하면 마을 광장에 세우고,
큰 원을 만들어 모든 부족민들이 돌아가며
죄인의 장점이나 과거 선행을 큰소리로 외치게 한다.
칭찬이 끝나면 새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로
축제가 시작되는데 그 후에 그 사람은
정말로 새 사람이 된다고 한다.
이렇듯 가정에서 인정과 너그러운 말 한마디가
자녀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될 뿐 아니라
인격(人格)형성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가정은 사회(社會)교육의 장이 된다.
가정(家庭)은 성격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전인적 성장을 위한 기초가 형성되므로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장(場)이 된다.
그러나 오늘 날 핵가족시대에 살면서
자녀수가 적어지면서 모든 일은 아이들에게
맞추다보니 공부(工夫) 외에는 부모가 다 해주면서,
자기 역할과 이웃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사회성
결여라는 큰 문제가 생겨났던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고민은
원칙(原則)을 지키면 손해 보고,
그런 식으로 양육하다가는 자녀를 험한
세상에서 바보로 만든다는 신화를 믿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일본인에게 꼭 배워야 할 일이 있다.
아이가 신발을 신은 채 지하철 의자 위로 올라가거나,
길거리에서 부당(不當)한 요구를 할 때 그들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다른 사람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어릴 때부터 가르침으로 언제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이도록 가정에서 교육시킨다.
'남을 배려(配慮)하는 마음'은 사실
그들뿐 아니라 인간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요,
자녀교육의 핵심(核心)이 아니었던가.
21c는 무엇보다 개성(個性)의 시대다.
그러나 그 개성은 타인을 존중하고
인간관계(人間關係)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성에 바탕을 둔 개개인의 성품을 말한다.
능력보다 정직(正直)을,
사회적 성공보다 사회 정의(正義)를,
홀로 서기보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共同體)를
알고 믿고 사는 사람이 진정 개성(個性) 있는 사람이
되도록 부모는 먼저 본(本)을 되어야 한다.
셋째로 가정은 종교(宗敎)교육의 장이다.
교육(敎育)에는 사회에 잘 적응케 하는 생물학적 단계,
존재 이유에 대한 철학적 단계, 그리고 잠재력을
이끌어 주는 전인교육이라는 단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은 문화(文化)라는 거대한 곰과
입시(入試)와 취직이라는 골리앗과 싸우느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그들에게
그 어떠한 교육단계를 통해서도
참된 안식과 인생의 사명을 줄 수가 없기에
마지막 단계인 신학적 교육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교도소에서 오랫동안 교육을 해오고 있는데,
재소자들의 교화(敎化)에 종교교육 이상
더 좋은 대안이 없음을 늘 경험한다.
여주교도소에서는 ‘아버지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써 아버지가 되었다는 재소자들이 많아
강릉에서도 지금 준비 중에 있다.
미국은 청교도 사상에 기초한
세 가지 교육철학 사상이 있었는데,
자녀(子女)는 신의 소유라는 것,
교사(敎師)는 부모가 최우선이라는 것,
교육(敎育)은 설득이 아니라 훈련이라는 것인데
곧 부모가 가정에서 말씀을 갖고 훈련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바탕으로 세워진 학교가 바로
하버드 대학, 예일 대학, 프린스턴 대학 등이다.
사회가 발달 할수록 올바른 교육의 표본(標本)을
찾아보기 힘들기에 가정은 자녀에게
가장 교육의 장으로 역할이 커져만 가고 있다.
특별히 기본적인 도덕과 신앙은
절대적으로 부모를 통해 배우게 되므로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스승이 되는 것이다.
주여,
고운 것도 헛되고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일도
헛되기에,
제 아이가
다윗 같이 용기 있고
아비가일처럼
지혜로운 딸이 되도록,
어릴 때부터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에 본을 보이므로,
스스로
인생의 고기 잡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 자녀들이
이웃을 배려(配慮)하고
세상을 지혜로 다스리게 하소서.
2006년 5월 첫 주 7일에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