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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걱정스러운 일

유앤미나 2008. 3. 20. 18:34


더 걱정스러운 일 
현충일 날 한 여성이 전철에서 
안고 탄 애완견이 설사를 하자 항문만 닦아주고 
분비물은 치우지 않자, 어느 승객이 
항의를 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욕을 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어느 여행사 가이드가 
그 모습을 디카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는데 
그 때부터 네티즌들은 그녀를 '개똥녀'라고 부른다.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은 한 시민에 대한 분노가 
인터넷 첫 화면을 장식 하게 만들었고, 
온갖 패러디와 신상명세까지 
공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그녀의 부도덕한 일보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겨우 경범죄 정도밖에 안 되는 일을 갖고 
국가 공익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 사람을 대하듯 
스토커처럼 그 여자에 집착하며 필요이상의 
과잉반응을 나타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뻔뻔한 이기심 때문이다. 
공공시설을 이용하면서 
애완견을 데리고 탄 것도 문제지만, 
그 개에 대한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이를 나무라는 사람에게 욕까지 했다는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공중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일인데 왜 새삼스럽게 
요즘 들어 그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중세에서 근대로의 가장 큰 전환점은 
신(神) 중심에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변화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신의 이름으로 눌려있었던 
자유를 되찾아 기뻐했었는데 얼마 안 가 
생각지 않은 방종이라는 복병을 만나 
오히려 이전보다 더 혼란에 빠졌던 것이다. 
자유와 방종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자유라는 명분으로 최소한의 질서도 
지키지 않는다면 곧바로 방종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유(自由)와 제도(制度) 사이의 딜레마인 것이다. 
바로 이 때 윤리를 바탕에 둔 공중도덕이라는 
절묘한 보완(補完)책이 생겨난 것이다. 
결국 공중도덕이란 근대 사회의 
가장 훌륭한 걸작품 중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근대에서 현대(現代)로 가면서 
자유는 개인의 편리(便利)라는 이기심이 더해지면서 
공중도덕은 졸지에 구닥다리가 되어 버리고 
장식구정도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자유를 갈망할 때는 그래도 더불어 산다는 
명분이라도 있었는데, 
개인의 편리함이 보편적인 자유보다 
우위에 서면서부터는 오직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이기심 때문에 이웃도 없고 가족도 없고 
오직 자신밖에 모르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을 반영 하듯,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氣)를 살려 준다고 
마땅히 가르쳐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도리들을 
등한시 하는 사이에 
어느 덧 신(神)이 되어버린 그들을 오히려 
어른들이 눈치 보며 두려워해야하는 
기막힌 세상이 된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이러한 공공의 적들은 
작은 기침처럼 당장에는 별일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를 무너지게 하는 
암(癌)과 같은 존재들이 되고 있다. 
하나의 병을 고치려다 더 많은 병을 안고 살아가듯이, 
현대인들은 하나의 블록을 더 올리려다가 
그동안 쌓았던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사실 이러한 공공의 적보다 
더 심각한 일은 이렇게 작은 일을 갖고도 
불일 듯 일어나고 있는 집단이지메라는 현상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점이다. 
백번 천 번 그 여자가 잘못했다 해도 
지금 그녀를 향한 심판들은 가혹을 넘어서 
매장하는 수준까지 다다르고 있다. 
그녀에 대한 개인정보는 모두 노출되어 
더 이상 한국에서 살기도 힘들게 되어 버렸다. 
인권도 진실도 필요 없다. 
판단은 네티즌들이 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인터넷에 뜨면 죽는다는 식이다. 
무슨 권리로 한 여자를 그렇게 매장시킬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그들에게 이러한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이게 어느 나라 법이란 말인가. 
익명성이라는 인터넷의 특성을 악용하여 
인민재판식 여론몰이로 
무조건 돌팔매질하는 행위들은 
아군을 해롭게 했던 빨치산과 공통점들이 많다. 
처음 사진을 올렸던 사람의 말도 같이 전철을 탔던 
어떤 분의 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것이 사이버의 맹점이다. 
확인할 길도 없고 
또 확인한들 아무 책임도 안 진다. 
그 상황에서 욕을 했다는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무섭다는 괘씸죄에 걸려들어 
그 여자는 불쌍하게도 마녀사냥의 
빌미를 제공한 꼴이 되었다. 
일본에서 시작된 집단따돌림이 
우리나라에 건너와 먼저 학교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더니 이젠 인터넷에서 이런 식으로 
자기고향이라도 온 듯 신바람 나있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지금 사람들이 흥분하는 있는 것은 
그녀의 부도덕한 행위에 기인된 것이 아니라, 
그 그림자를 통한 이 시대의 부조리 
때문에 더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종로에서 빰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경향이 있는 
이 나라 법적인 잣대가 비겁한 군상(群像)들을 통해 
그녀에게 한(恨) 풀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분노케 하고 있다. 
눈 깜짝한 사이에 폭등하는 아파트들, 
수억 수십억의 뇌물을 받고도 잘 살고 있는 행태들, 
교육부 수장의 말을 믿고 싶어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상들 앞에서, 
민초들은 살맛이 안 난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너무나 명확한 한계 상황 속에서 
어디에도 풀지 못하는 스트레스들을 지금 
어리석게도 그녀를 통해 응징하고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와 비한다면 
수천만 배 잘못한 일을 한 사람도 
버젓이 잘 살아가고 있는데 왜 네티즌들은 그 여자에게 
유독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렇게까지 모질게 
여론몰이를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러는 사이에 한 개인은 죽어가고 있다. 
아니 제 이 제 삼의 괘씸죄에 걸린 자를 죽인다 해도 
국가가 바로 서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본질은 그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어리석게도 오늘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수많은 네티즌들은 또 다른 가해자인 동시에 
이 나라의 더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에 
그저 가슴 시리 울 뿐이다. 

주여,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하셨는데, 
새롭게 변화된 자의 
할 일은 
‘화목케 하라’는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리석은 종, 
이제야 
조금은 알듯 합니다.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소서.
저들의 한(恨)을 속히 
풀어주소서. 
2005년 6월 12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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