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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스승

유앤미나 2008. 3. 19. 16:35



가장 위대한 스승
이번 구정에 제일먼저 누님 집에 갔었다.
조카는 평택항 단지에 있는 약품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연봉이 2,300만원이나 되는 생산직을 구하려고
광고를 내면 전화로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힘들어요?’
‘힘들지 않는 회사가 어디 있겠어요.’
이렇게 대답하면 더 이상 묻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린다고 한다.
중소기업이라서 싫고 일이 힘들어서 싫어
그런 좋은 자리조차도 외면하는 젊은 세대들은
아직도 부모 둥지에 있어서 그런지
말로만 경제가 어려울 뿐
배고픈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그 때 그 사람’ 이라는 영화를 똑같이 보면서도,
고생을 모르고 자란 젊은이들은 그 때를 비난만 하지만
배고팠던 세대들은 눈물을 적시고 있었다.
물론 사람은 나이를 불문하고
고생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만,
고난처럼 인생의 위대한 스승이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장미(薔薇)는 이상하게도
정성을 다해서 키우면 꽃이 피지 않는데,
잎을 잘라버리고 흙도 자갈과 같이 거칠게 넣고
물도 주었다가 안 주었다 하면서 고통을 주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향기 가득한 장미꽃이 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이 이론이 맞는 것은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고통이라는 과정을 통해
위대한 사실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고통에는 뜻이 있다'는 말처럼
신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실 때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고난이라는 학교에서
심성의 쓴 뿌리들을 다듬고 계시지만,
인간은 그 의미를 모르기에 원망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져 가는 자신의
모습 앞에 무릎을 친다.
모든 고난에는 이렇게 변화(變化)라는
목적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속히 문제가 해결되어 이전처럼 평온한
삶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 분의 관심은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일에 있다.
아직도 자신이 생각하는 환경이 바뀌지 않는 것은
나를 변화시키려는 분명한 그의 의도가 있기에
어떤 기도와 정성으로도 소용이 없다.
내가 바뀌지 않고는
세상이 백번 개혁된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에
오늘도 혼돈하며 고뇌하는 것이다.
이번 해일에서도 깊은 바다 속이 더 안전했듯이,
성숙한 사람들은 인생의 깊은 연단들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고통은 있을지라도
성숙이 있고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신은 이렇게 언제나 시련을 통하여
다음 두 가지를 변화(變化)시키시고 계신다.

먼저 겸손한 사람으로 바꾸신다.
사람은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릴 때
고독하고 소외감을 느끼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일은 나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도 생각하는 일들이
90% 이상 되고 있지 않아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아플 때,
‘내가 뭘 잘못했기에...’라고 반성하듯이
사람은 큰일을 당하고 난 후에야
자신을 돌아보며 평소 생각들을 내려놓고
겸손한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어려울 때마다 기억나는 말씀이 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풍랑 때문에 배가 오히려 더 빨리 나아가듯이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절감하면서
진실하게 그 분 앞에 나아가며
사람 앞에 한 없이 겸손해지는 것이다.

또한 고난은 너그러운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다.
결혼 전에 사기꾼에게 전세 돈을
잃을 지경에 있을 때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렇게 절규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사람은 어리석게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비로써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요셉은 형들이 노예로 팔고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는 고난의 잔을 마시면서
가족과 이스라엘을 품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고난의 학교를
제대로 이수하지 못할 때에 생기는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전혀 훈련받지 않았던 철부지
므낫세가 이스라엘 왕이 되었을 때
백성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던가.
철부지든지 성숙한 사람이든지
자신이 환난 가운데 처하게 되면 모두가
있을 때에 남을 도와주지 못했음을 후회하면서,
다른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님을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은 이렇게
고난이 없을 때는 교만하기 쉬우나
황당한 고통들을 당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또 이웃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고난을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해 보자.
집 안에 우환(憂患)이 있다고
고사를 지내고
종교를 바꾸고 그리고 집을 이사한다고
역경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다 해도
인생은 달라질지 몰라도
고난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힌두교(Hinduism)에서는
삶은 고통과 즐거움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미래의 업보를 얻으려면 현세에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고행(苦行)을 감수하는 것이다.
고행은 이렇게
자진해서 육체를 괴롭히는 것이지만
고난은 자의와 상관없는 괴로운 삶 자체다.
만약 고난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의식을 갖는다면
그 종교는 분명 샤머니즘에 불과할 것이다.
고난에 대해서 바이블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한다.
곧 어떤 고난이든지 피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문제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 분도 고난당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고난(파토스)은 ‘함께 체험을 한다.’,
‘깊은 인상을 받는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고생을 같이 한
사람과 특별한 동질감을 갖기가 쉽기에
환우애나 전우애는 세상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고난은 궁극적으로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認定)하게 할 뿐 아니라,
사람을 사람 되게 하고
삶의 방향(方向)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주여,
나의 가는 길을
당신은 분명히 아십니다.
욥처럼
저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당신께 나아가도록
고난이라는 스승께
감사하며,
날마다
변화되게 하소서.
그리고
사순절 동안이라도
당신과 함께함을 순간순간
체험하게 하소서.
2005년 2월 13일 강릉에서 피러한이 드립니다.
[사용허락음악] 출처: free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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