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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요구하는 것

유앤미나 2008. 3. 19. 16:09


시대가 요구하는 것
사설 도서관을 만들려고 책을 모으고 있던 중
도서 대여점을 폐업하려는 어떤 분이
책을 주겠다고 해서 갔었는데
만화나 무협지 그리고 환타지아 소설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서 많이 고르지는 못했다.
현대인들은 독서하기를 싫어하지만
가끔 읽을 때도 이런 종류처럼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 가벼운 주제들의
책들만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느 날 시립도서관에 가서
부모님을 위해 빌려왔다면서
‘아버지를 위한 101가지 이야기’와
‘바보 같은 엄마’ 두 권의 책을 건 내 주었다.
101가지 시리즈는 이제 사라질 때도 되었을 텐데
아직도 출판되고 있음에 반갑기도 했지만
씁쓸한 느낌이 더 들었던 것은
그런 시리즈물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사람들은 독서를 하므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꿈 꾸어보는 기회를 삼기보다는
이런 식으로 쉽게 감동받고 다만
값싼 동정에 만족하려고만 하고 있다.
서울교육청은 학력신장 방안의 하나로
일제고사를 다시 실시하겠다고 하면서 더불어
이번 신입생부터 서술과 논술형 문제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우리 큰 딸 때부터 적용될
2008학년도 8차 교육과정의 발표로 인해
논술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급속도로 증가되고 있어
논술교사가 졸지에 유망직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실시될 때 사교육비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나는 이제라도 국가대계를 위해서라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객관식 문제가 대부분인 현 교육체계로는
논리적인 사고를 다루는 논술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일반적으로 논술은
논리적인 글이므로 어렵게 생각하고
또 국어나 특별한 시험에만 해당 된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편견일 뿐 실제론 그렇지가 않다.
인간은 언어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존재다.
권세와 부는 옷처럼 겉모습만 보여주지만
말은 내면을 디자인하여
보여 줄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다.
언어라는 왕국에는
사상과 철학으로 채워진 성들이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서술할 수 있으므로
어떤 문제의 적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장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갖게 한다.
이 시대에 우리가 가장 걱정해야 할 일은
멀티미디어나 모든 방송매체들이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TV에 자막까지 집어넣어
재미는 더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바보같이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사이에
치매 환자처럼 사고력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음을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무리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도
단순히 재미라는 관점에서만 시청하지 말고
상상의 날개를 펴면서 ‘왜’라는 히브리식의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해야만 머리도 굳지 않고
사고(思考)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하는 일이나
창의적인 일에는 무지할 정도로 엄청 싫어한다.
그저 작가나 PD의 의도대로 이미 맞추어진 틀에 따라
로버트처럼 놀아나면서도 감동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을 평가할 때
I.Q(지능지수)를 갖고 판단하는 사람은 드물다.
벌써 E.Q(감성지수)를 넘어
B.Q(명석지수) 시대까지 온 것이다.
이것은 Brain(지능), Beauty(아름다움),
Behavior(행동력)로서 내적이나 외적으로 얼마나
뛰어난가를 보여주는 ‘명석지수’이다.
이전에는 머리 좋고 성실한 사람이면 오케이였지만
디지털시대에서는 창의적이면서 현장에 능한
명석한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얼마만큼을 아느냐
얼마만큼을 소유했느냐보다는
어떻게 사고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논술(論述)이다.
논술은 일정한 형식이 필요하기에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알고 보면 개성과 창의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
오히려 사이버시대에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된장국 같은 친구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우는 일에 힘을 쏟았지만
정보사회에서는 그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다.
스스로 사고할 줄 알아 어떤 문제든지 빠르게 분석하고
연관성을 찾아내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사고했던 것을
이제 직접 글로 쓰는 것이 바로 ‘논술’인 셈이다.
물론 소수를 제외하고는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백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쓰기 것이 낫다.’는
말처럼 사고했던 것을 반드시 글로 써 보아야
생각이 정리되고 현실성 있는 내일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형식에 너무 의식하지 말고
다만 자신의 생각을 오해가 없도록 정확하게
표현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이미
논술의 반은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 전에 독서라는 재료가
충분해야하는 과제가 있다.
우유처럼 독서는 완전한 정서적인 양식이다.
매사에 사리가 분명한 사람들과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지식과 영감을 얻었고
인격을 수양하며 또 미래를 예측했었다.
독서는 무엇보다도 어휘력을 향상시키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프랑스 아이들은 한국 애들과 비교해서 네 배
이상의 단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어휘력이 짧기에 대화의
폭이 좁아 30분만 지나면 인격은 사라지고
본능적인 주제만을 갖고 대화를 이끌어 간다.
세상만사 힘들다고 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원론적인 문제에서 막힌 것들이 대부분인데,
책 속에는 그러한 원칙들이 수 없이 반복되므로
독서를 권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다.

이렇게 작문에는 독서가 중요한 재료가 되지만
현실성이라는 재료는 더욱 중요한 요건이다.
논리와 현실은 부부 같은 궁합이다.
논리가 합리적인 설계도라면
현실은 그것을 실제로 건축하는 현장이 된다.
곧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아무리 잘 정리해도
그 해법이 현실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면
골동품 같은 이론에 불과한 것이다.
죽은 사자보다는 살아있는 개가 낫듯이
현실성 없는 논리는
유익은커녕 오히려 공해가 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무슨무슨매니아라는 소리가 싫다.
자신은 논리라는 환상에 빠져있는 동안에
부인은 살림을 책임지고 있음에도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이든 글로 자꾸 써보아야
현실에 부적합한 생각과 말들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주여,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늘 자신을 돌아보며 고민하고
내 이웃을 넉넉한 눈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바르게 생각한 것들을
글로 써 봄으로
무엇이 바른 것인가를
알고 그렇게 살게 하소서.
비록 말씀이 육신이 되셨을 때
고통이 있으셨던 당신처럼
그래도
그럴지라도
...
말쟁이나
글쟁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게 하소서.
2005년 2월 6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저작권 문제로 사진과 음악은 정리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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