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겸손
김창호(48)는
생사를 오가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히말라야 14좌를
산소 없이 7년 10개월 만에 등정했다.
이 기록은 한국인 최초와
세계 최단 기록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더불어 새로운 등정 루트를
개척한 공로로
산악계의 오스카상이라는
'2017 황금피켈상'까지 특별상으로 받았다.
그는 강가푸르나 서봉 정상이
완만한 능선 100m 정도 남겨놓고 얼마든지
오를 수 있었지만
일부러 안 올랐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막내가 컨디션이 나빠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물론 2명만 다녀와도 가능했다.
하지만 막내 없는 정상에 서는 순간은
짧지만 내려와서 같이
살아가야 할 시간은 훨씬 더 길기에
함께 있는 편을 택했다고 했다.
심사위원들도 정상 등반을
포기하고
끝까지 함께하길 원했던 그들의 협동심에
더 높은 점수를 준 모양이다.
높은 산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의지나 체력이 강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체력이 좋아도
산을 타다보면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많겠는가.
산을 오래 탄 사람들은
살아남으려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아무리 산을 알고
등반 기술이나 장비가 좋아도
위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한낱 잠자리보다
더 연약하기에
겸손이 최고의 스승이라는 점이다.
겸손하지 않고는 설령
올라갔다 해도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산을 타듯이 삶도 끊임없이
도전해야 올라갈 수 있다.
물론
높은 산을 간다는 것은
많은 훈련과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생은 산보다 더 높다.
눈에 보이는 산과는 비교도 안 되는
끔찍한 인생 코스가 겹겹이
놓여 있다.
여기엔 마음을 넘어
신의 도움이 아니고는 헤쳐 갈 수 없는
상황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산을 조금이라도 타 본 사람은
오르면 오를수록
더 솔직해 진다는 것을 안다.
힘든 과정들이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알게 했고,
또 정상에 서보니
세상사가 얼마나 사소하게 느껴지는지,
미움도 수많은 집착도 별거 아님을
저절로 알게 된다.
다만 그 곳에선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이유 없이 고맙고,
숨 쉴 수 있는 공기,
앉고 누울 수 있는 공간,
먹을 수 있는 음식 등 평소 생각지 못했던
느낌들이
그 곳에선 새로워지면서
자아를 알아 가기에 겸손해 지며
삶이 아름답게 채색되어간다.
김 대장은 혼자나 둘이 갔다면
얼마든지 정상에 등정 할 수 있었지만
막내가 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포기했기에,
무사히 세 명이 함께 내려 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것은 협동심을 넘어
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지혜였다.
산은 분명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려오는 일은 더 중요하다.
어렵게 올라간 정상이라도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는 현실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
그곳은
바람도 세고 너무 좁다.
그리고 이미 다른 사람이 그 곳에 서길
기다리고 있기에 되도록 빨리
피해주어야 한다.
인생도 그렇다.
내가 정상에 오른 순간에 벌써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한다.
오래 있을수록 문제가 생긴다.
나도 나이가 드는지
‘박수 받을 때 떠나라’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난 적이 없었다.
또 하나
산에 오르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확연히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배낭의 무게다.
처음 산을 탈 때는 짐이 무거웠는데
횟수가 반복되면서
최대한 적게 갖고 다닌다.
여분의 옷도 빼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물건까지도 내려놓는다.
그냥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것만
넣고 다닌다.
인생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린 너무 많은 것을 관리하느라 도무지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다.
모으는 일이 초짜라면
비우는 일은 중급 수준이다.
꼭 필요한 것으로 채우는 것이
고수의 몫이다.
나이 50이 넘었다면
인생 중급도 이미 지나고 이제
고수의 자리다.
이제 웰빙에서
웰다잉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웰다잉에서 초점은
비운 자리에 뭘 채우느냐가 관건이다.
그것이 마지막
내 인생의 성적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정 산을 안다면
진정 인생의 도를 안다면
겸손하게 살아간다.
겸손해야
고집부리지 않고 이웃의 말을 들을 수 있다.
겸손해야
인생의 짐이 가벼워진다.
겸손해야
편히 내려갈 수 있다.
겸손해야
이웃과 나눌 수 있다.
겸손해야
진상이 아닌 꼭 있어야 할 존재가 된다.
겸손해야
눈을 편히 감을 수 있다.
겸손해야
죽음이 두렵지 않고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인다.
겸손,
산과 인생의 최고 지혜다.
2017년 12월 26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하누리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아굴라님^경포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