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무게중심
세상엔 수많은 직업들이
있지만
‘로드 마스터’라는 직종은 처음
들어보았다.
‘로드 마스터’는
비행기 화물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다.
그들은
어떤 물건이든 무게중심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화물이 쏠리면
원유도 더 소비되겠지만 그것보다는
안전 운항도 위협하기
때문이다.
로드마스터는
무게중심 찾는 일은 기본이요 또한
최대로 탑재하도록 설계하고
화물 상태 등을 점검하느라
하루 10km나
걸어 다닐 정도로 한 시도 멈추지
않고
안전하고 신속한 운송을 위해
체크한다.
가끔 TV에
‘무게중심 달인들’이 나온다.
그들은 어떤 물건이든지
신통하게
무게중심을 찾아내어 생긴 모습과
관계없이
뚝딱 세워버린다.
보통
돌탑을 쌓는다면 일단
평평하고 납작한 돌을 밑에 깔고
그 다음에 역시 되도록
네모난 돌을
올려야만 쌓기가 쉬울 것이라
생각하는데,
달인들은
이러한 일반적 상식을 벗어나
크기나 모양보다는
무게중심
찾는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들은 오랜 시간
많은 실수들을 감내하며
반복했기에
어떤 것이든 세우는 일은 이제
놀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다소
특별한 직업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것은
얼굴과는 다르게
각자의 남다른 사연들이 있었음에도
내실을 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생의 무게중심이 뭔지를 알고
삶의 중심을 잡고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루가 다른 세류 속에서도
당황치 않고
자기만의 인생 중심잡기
매뉴얼대로
처리해 나갔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사람과
격이 다른 인격과 품격을
풍기며
살아갈 수 있었다.
록펠러는 너무
가난하여
중학교도 다 마치지 못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마흔네 살에 그는 벌써
석유 연맹 총수가 되었음에도,
안타깝게도 10년도 못가서
졸지에 5년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게 된다.
죽음 앞에서
그는 다시 정신 차린 후
구제와
선교에 전력을 다하며 마지막
죽음을 대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록펠러의 이러한 이타적인 삶 이후에
기적같이
건강이 회복되어 5년이 아닌
50년을 더 장수하다가
편히 하늘로 갔다.
그의 변신에는
‘어머니의 10가지 유언’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우선순위에 따라 살라’는 것이었다.
그는 유언대로 모든 일 속에
우선순위에 따라
운영했기에
수없는 풍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으며 살아갔던 것이
오늘 날까지 그의 이름을 오르내리게
했던 모양이다.
‘우선순위’는 이토록
삶의 중심을 잡는데 큰 기둥과 같다.
‘우선순위’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물건 정리하는 일에서 우리는 이미
그 일을
연습하고 있었다.
삶 속에서
물건 정리가 왜 필요할까.
그것은
정리해 놓지 않으면
있던 물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꾸만 새 것에
대한 욕망이 더 커져만 가는 것은
정리되지 않기에
있는 것조차
초라하게 느껴져 왠지 새 것을
가져야만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유혹을 이겨 낼 방도가 없다는데
있다.
이런 외적인 이유보다는
더 근본적인 요인은
인생문제 해결 능력과도 관계가
있었다.
물건 하나 제대로
정리 못하는 사람이 어찌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쓸데없는 물건이 쌓이듯
내 마음도 어느 덧
정리되지 않은 문제들이 쌓여만 간다.
그러므로
삶이 힘들어질 때
먹는 일로
아니면 쇼핑으로 풀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정리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정리하면서 가슴에 쌓인 복잡한
문제들의 해법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하면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 수 있고
더불어 인생의 짐도
쉽게 정리되고
목표의식이 분명해지면서
생의 중심잡기가
쉬워진다.
생각해보라.
살아가며 만나는
진퇴양난의 일들은 무엇이
부족해서 아니라
사실
우선순위를 잘못 두었기에
온 것이 아니었던가.
어차피
눈에 보여 지는 세상일이나
그것이 주는 만족
또한
잠깐이기에
이제라도
덜 후회하려면 인생의
우선순위는
좀 더 내일에 관한 영원한 것에
두어야만
생의 무게중심 잡기가
쉬워진다.
삶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을 적어보라.
결코
더 좋은 옷,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후에
내게 가장 소중한 이가 누군지
적어보자.
생각보다 많지 않음에 놀랄지
모르겠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그들은 나의 어떤 점을
기억해 줄까.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자신이 죽음을 직시한다면
생의 가치와
생의 중심이 보여 진다.
남은 생,
그 중심을 벗어나지 않아야만
어제라는
망령에 속지 않고
오늘이라는
현실에 담합하지 않고
내일이라는
소망에 불안해하지 않는다.
2017년 9월 11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하누리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원강(고해진님)^경포호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