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바람이 불어도
토요일 오후에
가족과 함께 시내를 다녀오는데
하늘이 갑자기 회색으로
변하기에
처음엔
미세먼지인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뻘겋게 달궈지는 하늘을 보는 순간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선
송전탑도 불이 붙어
단전과 단수가 예고된다고 하기에
부랴부랴
비상등과 물을 준비하고
대피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행히
큰 불이 잡혔는지
더 이상 지시사항이 없기에
안심하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아침에 보니
진화되었던 강릉 산불이
강풍으로 인해 다시 발화되어
또 다시 인근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이 내려졌다.
사흘째
헬기 35대와
인력 3,500여명이 동원되었음에도
강풍 때문에
불길을 잡는 데 실패하여
벌써 여의도 면적 절반가량이 불타버렸다.
물론
이번 산불이 일어나기 전에
작년보다
강우량이 50%밖에 되질 않아
그렇지 않아도
땅은 극도로 건조한 상태였는데,
엎친데 덮친데 격으로
야속한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낸 덕택에 산불은
순식간에
몇 마을을 초토화
시켜놓고도
아직까지도
멈추지 않고 용트림하고 있다.
이번 산불의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지만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수시로 방향을
바꾸어 불어대는 ‘바람’에 있었다.
중국에서 출발한 황사도
바람을 통해
날라와 사람들을 고생시키고 있다.
장마 때 동반하는 태풍은
산을 가르고
바다를 요동케 해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바람은 이렇게
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넘어서
큰 손실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풍지대라는 말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바람은 분명히 양면성이 있다.
아픔만큼 인생에
많은 유익을 주고 있는 친구이다.
더운 지방에서는
열기와 습기를 거두어 주고
추운 곳에서는 대신 온기를 넣어 준다.
하늘을 날개 하는 것은 전부
바람이 하고 있다.
새와 비행기 심지어 꽃가루조차 바람을
이용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바람은 자연 속에서
이렇듯 많은 유익을 주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만물을 잘 자라도록 도와주고
썩지 않게 하는 청정 역할까지 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바람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듯이,
인생에서도
바람은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늘 부는 바람처럼
바람은 우리 곁에 머물러 있으면서
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오누이나 연인처럼 내 손을
포근히 잡아주며 환한 미소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널 지켜 줄께...’
마음속에
오래토록 지워지지 않았던
상처들,
바람이 불 때마다
향수를 자극시키며 견딜 수 없는
잔상들을 극복케 하며
내일을
또 바라보게 한다.
홀연히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처럼
나도 어느 날 소리 없이 사라지는 날,
‘미련 없이 그 분 앞에 서야하겠구나’하는
새 마음을 갖게 한다.
호수에 부는
잔잔한 바람을 통해서는
이러한 정서적인 쉼을 주지만,
뜻하지 않는
무서운 돌풍들을 통해서는
오히려 현실적인 영안을 열어주고 있다.
인생에는
수많은 순풍과 돌풍이 공존하고 있다.
만사 자기 생각대로 될 때는
순풍이 부는 것 같지만,
생각대로
되질 않고 일마다 뒤 엉킬 때는
돌풍과 거센 파도를 만난 쪽배처럼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바로 그 때
사람들은 정신 차려
삶의 보폭을 조절하고 꼬인 밧줄을 풀면서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인생의 지혜를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확실한 방법을 통해
체득하게 된다.
사람은 순풍이
불 때는 잘 모르지만
역경을 통해 진정한 친구를
또 의인과 악인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무조건 매사에
형통하다고 의인은 아니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태풍이 불 때는 흔들리는 법이다.
가지도 부러지고 둥지가 잘려 나가면서
애서 키운 열매들도 떨어진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땅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는
이 모든 우환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것은 뿌리 채
뽑히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 바람났어...’
뿌리 없는 인생은
조금만 바람 불어도 벼의 겨처럼
하늘을 날며
세상 유행 따라 자기 생각대로
멋들어지고 변덕스럽게 살아보지만,
그 바람이 멈추면
다시 땅에
떨어져 초라하게 사는 것 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기에
추수 땐 아궁이에 던져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뿌리가 깊은 인생은
기본기가 튼튼하기에
어떤 바람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험의 난이도가 어찌 되었든
기본이 든든한
수험생은 흔들리지 않는다.
건물에도 기초가 가장 중요하듯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튼튼한 기초만큼 중요한
일이 없는 것은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칙과 속임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기초가 든든한 사람은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세상을 보는 눈이 정확하여
항상 미리 준비하기에
카리스마가 생기고
자신감을 갖고 일하기에 성장할
수밖에 없다.
뿌리 깊은 사람은
이렇듯
어떤 바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살아있을 때 뿐 아니라 마지막 생을
마무리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만사 뿌린 대로 거두는 것처럼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상과 벌이 있다.
지금 큰 소리치고
자랑하고
갑(甲)질하며 살아봐도
마지막 눈을 감는 그 날
부끄럽지 않도록
오늘도
깊이 뿌리를 내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말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뿌리 없는 나무 없고,
부모 없는 자식이 있을 수 없다.
돈은
결코 내 뿌리가 아니다.
쾌락은
더더욱 인생의 뿌리가 될 수 없다.
나는 안다.
무엇이
내 인생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2017년 5월 9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하누리님, 우기자님, 이요셉님^경포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