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연구실에는 큰 책장이 하나 있었다. 100권 남짓한 책이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그 책장에 꽂힌 책을 보고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책이 많아서가 아니다. 양이라면 내 연구실에 있는 책이 훨씬 많다. 내가 감명을 받은 것은 그 책의 제목들이었다. 한 권
한 권이 모두 엄선된 책이어서, 그가 연구자로서 살아온 평생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한 권도 빠짐없이 속속들이 이해해
자기 것으로 만든 책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 책만으로 생활하고 있다"라고 그는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아른트 교수는 이 100권을 엄별하여 끊임없이
읽고 또 읽음으로써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 셈이다. (174쪽)
(예병일의
경제노트)
책을 좋아하다보니 늘어만 가는 양 때문에 고심할 때가 많습니다. 가급적 그때 그때 '보관용 도서'와 선물할 도서, 버릴
도서로 분류해 정리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좋은 책을 더 가까이 하기 위해 '보관용 도서'에는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나에게 중요하다 싶은 책에는 즉시 눈에 잘
보이는 빨간색 스티커를 책 모서리에 붙입니다. 그리고 그 책들만 따로 책장 한 부분에 모아 놓습니다. 그렇게 '보물'을 따로 정리해 놓으면
여러모로 장점이 많습니다.
이토 모토시게 도쿄대 교수가 예전에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하인츠 아른트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했다가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국제경제학자인 아른트 교수가 자신이 감명을 받은 책 100권 정도를 엄선해서 큰 책장 하나에 꽂아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평생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 책 목록들이었지요.
책 보관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나를 만든 100권의 책'을 엄선해 따로 책장에 꽂아두는 작업을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우선 '10권의 책'으로 출발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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