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피러한님의 글모음

지금 이 순간

유앤미나 2015. 5. 19. 10:34


 




지금 이 순간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쉬는 날엔
산림청에 가서 아르바이트 식으로 또 일을 해
수입이 보통 월 400만원이지만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고 푸념 조로 말한다.

그는 한평생 버스 운전을 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인에게
신이 내리면서 가정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부인이 무당이 되겠다고
하는 바람에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어
이혼을 한 후
독신 남으로 살아가는 그가

단지 안에서 주민들에겐 좋은 평을 듣고 있는 것은
노인 임에도
돈도 쓸 줄 알고
어려운 사람 도울 줄도 알고
멋도 부릴 줄 아는
분명 매력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생을 나눌 사람이 없음을
만날 때마다
그는 안타까워했다.





그가 언제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내일은 없어!
내겐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어!’

오늘 잠을 자도
내일 눈 뜬다는 보장이 없기에
오늘 이 순간
무엇을 하든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부귀도 영화도 다 헛된
일이라는 지론이다.


이전에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별 감흥 없이
남의 이야기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냈는데,

이젠 나도 나이가 드는지
이상하게도 이런 유사한 말만 들어도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게
생각이 깊어지는 것은

나도 어느 덧
그 반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일까.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조승우 님의 ‘지금 이 순간’ 노래는
들을 때마다 감동이 있다.

하지만 그 노래에서
<지금 이 순간>이라는 의미는
묶였던
모든 사슬이 벗겨지고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소원이
마법처럼
성취되는 순간을 말한다.

우리에겐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도
소중하지만

‘오늘’이라는 시간은
성취되는 한 순간의 시간보다
비할 수 없는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은

‘오늘’이라는 시간은
내가 해야 할 사명을 감당해야할
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오늘 기뻐하며
오늘 감사하며
오늘 섬기므로

마지막 그 날이 어느 순간이 되든지
당황하지 않고
당당히 설 수 있도록

각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을 의미한다.





누군가는
가장 무서운 영어단어는
‘내일’(Tomorrow)이라고 했기에

지금 이 순간을
‘신의 선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내 심장이 뛰고 호흡을 하면서
눈앞의 모든 현실을
바라보며

내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에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일상의 기쁨을 누리며
인생을 나눌 줄 아는 지혜로운 삶이
요구되는
시점임을 아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침에 어느 지인과 통화 중,
‘어제 교동택지에서 어떤 남자가 우울증으로
15층에서 뛰어내렸데요‘
라고 말하면서,

자식도 내 맘대로 안 되고
세상일도 생각대로
안 되는데

뭘 더 믿고
내일을 위하여 오늘이라는 시간을 담보로
‘지금 이 순간’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상기된 채 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나는
당신 말이 백 번
옳다고 맞장구를 쳐주면서
마음속으로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본다.

그래
이 나이를 먹고도
젊은 애들처럼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오늘이라는
시간을 담보로 내일로
미룬단 말인가.


바보같이
아직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정작 신경 써야 할 본질은
외면한 채

땅강아지처럼 아무
의식 없이
어떤 여유도 없이
주어진 시간표에 따라
하루하루 분주하게
보내다가

어느 덧
이 나이가 된 것이 아니었던가.





뭘 더 기대하고
뭘 더 원망한단 말인가.

아니 아직도
가슴 아파할 일이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당면하고 있는 부정도 긍정
그리고 혼돈과 질서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세상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오늘’이라는 선물 안에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기에

부정을 통해서도 감사하며
혼돈을 통해서도
좋은 마음을 가길 때

유독 내게 원수 짓하는 사람이 있어도
용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미워하지만 않는다면

긍정과 질서는
내게
날개를 달아주며 분명
행복의 다리로
인도할 것을 나는 확신하기에
웃음과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어떤 것이든
최선을 다하여
긍정적으로 반응하려고 노력하고

이대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누리고
포용할 수 있다면

어리석은 내게도
천금같은
오늘은 영광과 평화로 화답할 것을
믿고 감사한다.


내일이라는 말도 하지
않으리.

오늘
지금 이 순간도
감당하기엔
네겐 너무 버겁고 힘겨운 일이기에

다만 오늘
커피보다 더 향긋한 향을
나누리라.

‘당신 때문에 난 너무 행복했어...’
라는 고백을 하고 싶고
나 또한 듣고 싶기에

내일보다
오늘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다.

2015년 5월 18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포남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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