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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없어서 행복해요

유앤미나 2015. 1. 10. 18:04

희망이 없어서 행복해요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는 디플레의 늪에 빠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이 시작 되면서 취업 자체가 어려워지고 비정규직만 늘어나고 일을 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워킹 푸어가 늘어나자, 일본의 젊은이들은 일할 의욕조차 없는 니트족,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프리터족, 도전의식도 없고 내향적인 초식 남들만 양산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미래를 포기하는 이런 시대에 희한한 통계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인지 이런 상황 속에서도 20년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두 배나 높게 나온 것이 아닌가. 원인은 더 기가 막히다. 미래에 희망이 없기에 행복하다는 것이다. 끼리끼리 형편이 다 같아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없어져 행복하다는 논리는 생각할수록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왕 그럴 바에야 오늘 이 순간을 즐기겠다는 ‘사토리(득도得道) 세대’가 등장하면서 지금 일본에선 행복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이런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들의 마음은 어떨까. 희망이 없어서 행복하다는 그들에 비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국민소득이 1인당 2만 달러 중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저성장, 저금리, 저변동성의 시대에 빠져 그 누구도 미래를 낙관할 수 없기에 다음세대들이 갖는 박탈감은 일본의 젊은이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우린 일본보다 사회안전망이 더 튼튼하지 못한 상황에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현실적인 노후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는데 우리 젊은이들은 어떠하겠는가. 어쩜 일본보다 더 심각한 곳이 지금 우리네 현실일지 모른다. 작년 통계를 보면 장년층과 노년층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인데 비해 10대에서 30대 젊은이들의 사망요인 1위는 '자살'인데 그 중에서 특히 20대는 절반가량이 자살로 생을 마쳤다는 사실 앞에 막막할 뿐이다.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경쟁교육에 시달렸던 10대가 20대가 되어 취직해도 비정규직이 많고 학자금 대출 갚기도 빠듯해 결혼도 늦어지고 집 장만하기란 도와주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한 그들에게 미래는 불안하기 짝이 없기에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가 되었는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이젠 인간관계까지 포기한다는 ‘4포 세대’가 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은 일본 젊은이보다 더 희망이 없건만 우린 결코 그들처럼 희망이 없어서 행복하다고 감히 누가 자신있게 말하겠는가. 인간과 행복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인간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행복을 추구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추구하는 욕심이 다르기에 행복의 편차도 서로 다르다. 다만 객관적으로 추론해 볼만한 행복의 조건들 중에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은 일본 젊은이처럼 희망이 없어서 행복하다는 무(無)의 행복론이다. 그들은 삶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이 그냥 산다. 하루하루 싫든 좋든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아가므로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한다. 10년 후는커녕 1년 뒤도 아니 내일 일도 생각지 않고 살아가기에 미래 자체가 고문인 셈이다. 이처럼 아무 기대 없이 살아가기에 좌절할 일도 없고 타인에게 실망할 일은 더더욱 없다. 화날 일도 없고 억울한 일도 없고 잠 못 잘 일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 나름대로 도인처럼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아 스트레스 받지 않고 본의 아니게 비움과 배려도 어렵지 않게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본인들은 이런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는 생각은 꿈조차 꿔본 적이 없이 그냥 살아갈 뿐이다. 혹시나 하는 어떤 기대도 없이 ‘주기 싫으니 받지도 않겠다’라는 선비적 발상 속에 겉보기엔 우아하게 살아가지만 자신도 인생은 어차피 give and take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지금 당장 엄청난 것을 잃거나 횡재를 했다 해도 어떤 식으로든 그 값을 치루거나 얻어지는 것이 인생이 아니었던가. 우린 살아가면서 수많은 은혜를 얻기도 원한을 사기도 한다. 한 순간에 마음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모든 우화나 종교에서 말하는 교훈들은 모든 행위에는 반드시 보상과 대가를 치룬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주면서도 상처까지 덤으로 받기도 하고 받으면서도 선심까지 얻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이 인생임을 깨닫기에 행복의 조건은 더 단순해 질 수밖에 없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볼 때 감사한 일만큼 상처 되는 일은 더 많았다. 누구 잘못을 떠나 ‘두고 보자 이젠 너완 상종도 안 할거야!’ 다짐해 보지만 그래봤자 몇 일 못 간다. 사람만큼 무서운 존재도 없지만 사람만큼 따스한 존재도 없다는 어느 대사처럼 내 형편이 어찌되었든 원인을 꼭 찾으려 하지 말고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먼 미래의 파랑새 같은 행복이 아닌 오늘 이 순간에 감사하며 함께 나눌 행복의 삶이 이어지게 된다. 인생은 지금 행복해야 비로써 모든 관계와 일이 행복하다는 논리다. 힘들다고 바쁘다고 내일로 행복을 미룬다면 그 사람은 내일이 되어도 행복할 수 없다. 어제 일로 오늘을 괴롭히지 말고 내일 일로 오늘을 피곤하게 하지 말라고 누가 말했던가. 어느 날 돼지가 소에게 자신은 사람들에게 많은 유익을 줌에도 늘 더럽다고 욕을 먹는 것이 너무 부당하다고 하소연했다. 소는 이렇게 대꾸했다. ‘너와 나와의 차이는 간단하다. 너는 죽은 후에 그 모든 유익을 끼칠 수 있지만 나는 살아있을 때부터 유익을 주고 있기에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거야...’ 인생의 행복도 마찬가지다. 죽은 뒤에 유익과 행복은 속고 있는 인생이다. 소처럼 지금 유익을 주고 지금 사랑받음으로 지금 행복한 삶을 살아야만 어떤 상황 속에서든 감사하며 사랑하며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주여, 제게 큰 축복은 부모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가족을 만나고 그리고 당신을 만난 것입니다. 더 이상 바라지 않게 하소서. 나중에 바보같이 참을 껄 즐길 껄 베풀 껄...후회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으로 필요한 이에게 슬퍼한 이에게 가치 있는 이에게 지금 좀 더 참고 좀 더 즐기고 점 더 베품으로 바나바와 같이 모두에게 신뢰받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2015년 1월 9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포남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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