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크랩] 못다 그린 그림 한 장/김상립

유앤미나 2012. 7. 27. 00:25

못다 그린 그림 한 장
나에게는 못 다 그린 그림 한 장이 있다. 
벌써 50년이 넘도록 그리고는 있지만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그림이다. 
그것은 바로 고향 바다를 그리는 나만의 그림이다 
초등학교 때는 잘 칠해지지도 않는 크레용으로 힘들게 파란 바다를 그렸다. 
그러나 그림을 다 그리고 나니 바다는 어느새 초록빛을 띠었고, 허겁지겁 초록으로 다시 칠했을 때,
 이미 바다는 은백색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고향바다는 시작부터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었다. 자라면서 크레용이 크레파스가 되고, 
그것이 또 물감으로 바뀌기는 했어도 한번도 바다를 제대로 그려내지를 못했다. 
바다는 볼수록 어떤 것이 제 얼굴인 지 알 도리가 없게 만든다. 
조금 전까지도 뿌옇게 회백색으로 물들었던 것이 금새 은빛으로 바뀌기도 하고, 다시 보면 검푸른 빛이 돈다. 
눈을 가까이로 모으면 정감어린 초록빛이 나지만 해초 위로는 보라색이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하얀 거품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춤을 추고 햇빛에 반사된 파도 끝은 오색 무지개가 영롱하다. 
이런 것들을 다 끌어안고 '파랗다'는 표현 하나로도 충분한 모습을 보이기를 즐기는 바다다. 
3
0°쯤 빗겨진 오후의 햇살이 항구안을 비칠 때면 바다는 더욱 신비로워진다. 
해를 바로 머리 위에 인 부분은 동그랗게 진홍색으로 살아나 있지만 그 주위의 넓은 바다는 마치 알루미늄 조각들을 
수없이 뿌려놓은 것처럼 희게 반짝이고 있다. 드디어 해가 산마루에 턱을 괴이면 이 모든 광경은 사라지고
 바다는 그냥 한 개의 커다란 불꽃이 되어 하루의 여한을 아낌없이 태워버리고 어둠 속으로 간다. 
그렇게 바다는 바라보는 사람마다, 그때 그때의 환경에 따라 달라져 버린다. 계절이 바뀌면 계절에 맞는 얼굴을 하고, 
태양의 위치에 따라 알맞게 화장도 한다. 구름이 끼면 구름을 닮고 안개가 내리면 안개바다가 된다. 
누가 이런 바다의 참 모습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설령 뛰어난 화가가 있어 바다를 온전하게 그렸다 한들, 
그것도 그리는 순간 그의 눈에 비쳤던 찰나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리라. 
나는 나이가 들게 되면 고향 바다를 보다 완전하게 그릴 수 있으리라 막연히 기대하며 길을 떠났고, 
어느새 고향에서 산 날 보다 더 길어진 객지 생활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고, 
그림 그리는 일마저 더욱 어렵게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향바다는 쉽게 이해되기는커녕 
점점 더 어렵고 복잡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시 가본 고향 바다에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회한과 가난에 대한 저주, 
유학을 향한 열망 같은 게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사랑하기에는 모든 환경이 너무나 불편했고 관습에 억압당했던 시절이라 우리들의 사랑은
 안으로만 수줍게 삭아들어 진한 한숨이 되어 버렸었다. 당시에는 바다의 가난이 육지보다 훨씬 더했다. 
바다가 계속 노(怒)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건질 게 없었다. 
돈이라곤 구경할 수 없는 어른들은 부둣가 목로주점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깡소주만 운명인 양 마셔댔다. 
더러는 태풍이나 해일이 몰아닥쳐 지아비를 뺏아가고 아버지를 잃게 했다. 
하늘이 갈라지고 바다가 일어섰던 날이 지나고 얄밉도록 파란 하늘이 마을 가까이로 내려오면 
여기 저기서 피어오르는 통곡소리가 사람 마음을 찢고 동네를 적시고야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대처의 좋은 대학만 나오면 무엇인가 속 시원하게 한풀이를 할 것 같은 생각에 유학만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으로 삼고 살았으니 거친 바닷길이 나를 묶는 동아줄 같이 여겨져 
원망의 눈초리를 보낸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내 어머니는 죽어서도 바닷가에 살아 계신다. 내키지 않는 마음이었지만, 
간곡한 어머니의 유언따라 고향 항구가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햇볕 따사로운 언덕에 어머니의 유골을 뿌려드렸다. 
내 그곳에 서서 어머니를 느끼며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바다는 금새 흐려지고 만다. 한평생 바다를 끼고 
바다와 함께 살아오신 어머니가 죽어서까지 날마다 바다를 보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나는 가슴 저미는 불효를 떨칠 길 없다. 
이렇게 고향 바다는 내가 살아온 날의 빛과 그림자는 물론 영혼의 한숨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으니 
어찌 수월하게 그릴 수 있는 대상이 되었을까? 그림을 완성하는 날, 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리라고 
은근히 기대했던 것이 결국은 허망한 일이라는 것을 한참 나이 든 후에야 알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어차피 내 목숨 다 하는 날까지 고향 바다는 그리지도 못한 채 그리고 싶은 바다로만 남아 있을 텐데. 
그래도 계속해서 그려야 한다는 충동에 시달리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나 
완성에 대한 목마름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처럼 애쓰면서 살아왔어도 뜻대로 된 일 보다는 되지 않은 일이 훨씬 더 많은 채 이미 나는 
황혼의 문턱을 넘어서 있으니, 만일 내가 그려야 할 그림이 고향 바다가 아닌 
나의 '삶' 그 자체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래, 삶이란 보다 잘 살아보려고 노력해 가는 과정을 그려나가는 그런 그림일 것이라 생각하자. 
완성시키지 못할 그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완성시키려고 무던히 애쓰는 그런 그림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게는 못 다 그림 그림이 고향 바다만이 아닌 것 같다. 
내 인생이, 
내 꿈들이, 모두 다 못 다 그린 그림인 것을……. 
그러나 내게 힘이 남아 있는 날까지는 화필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구나.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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