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새로운 글쓰기, 나라를 흔들다 [중앙일보]‘문체반정’부른 조선 후기 선비들의 ‘문체파괴’고전 산문 산책
안대회 지음 휴머니스트 772쪽, 3만원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에 몸단장하던 모습이 흡사 어제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겨우 여덟 살이라, 벌렁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면서 말을 더듬으며 점잔 빼는 새신랑의 말투를 흉내 냈다. 누님은 부끄러워하다가 그만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때렸다. 나는 화가 나서 울음을 터뜨리고 분가루에 먹을 뒤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 문질러댔다. 그러자 누님은 옥으로 만든 오리와 금으로 만든 벌 노리개를 꺼내주면서 울음을 그치라고 나를 달랬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일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큰누나를 잃고 쓴 제문 중 일부분이다. 일반적인 제문의 격식을 무시하고 개인적인 체험을 녹여내면서 피붙이의 죽음을 슬퍼했다. 형이상학적 성리학의 글쓰기인 고문(古文)과는 다른 문학 세계였다. 현실적이고 정서적이면서 독창적인 글쓰기를 보여준 것이다. 연암이 활동했던 18세기 조선. 새로운 글쓰기의 바람이 불던 때였다. 규범적이고 정통적인 고문의 문체에서 탈피하려는 시도였다. 개혁 군주로 꼽히는 정조도 용납하기 어려웠을 정도의 파격이었던 모양이다. 정조는 이를 ‘잡문체’라 규정하며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시행한다. 문체의 변화가 체제 안정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고전 산문 산책』은 조선 후기 선비들의 소품문(小品文·짧은 산문)을 모은 책이다. 저자는 『조선의 프로페셔널』『선비답게 산다는 것』등을 통해 고전의 현대화에 앞장서온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다. 17세기 허균에서 시작해 18∼19세기 박지원·이덕무·유득공·정약용·홍길주·조희룡 등 작가 23명의 소품문 160여편을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을 붙였다. 작품 하나하나를 두고 안 교수는 “조선 후기에 창작된 산문 예술의 정화”라면서 “현대인으로 하여금 그 향기와 취향에 감동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고 평했다.
당시 소품문의 특징은 서정적 내용, 아름다운 문체, 시적 감수성 등이다. 탈이데올로기적 성향도 강했다. 정치나 윤리의 문제보다 개인의 기호와 현실세계의 작은 가치들을 강조했다. 자신의 내면을 스스럼없이 드러냈고, 저잣거리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기지와 유머도 두드러진다. ‘책벌레’로 꼽히는 이덕무(1741 ∼1793)가 제자 격인 선비 이서구(1754∼1825)에게 보낸 편지가 이렇다. “초정은 인정머리 없이 세 번이나 단것을 얻고도 나를 생각지도 않았고 주지도 않았소.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게 준 단것을 훔쳐 먹기까지 했소. 친구의 의리란 잘못이 있으면 깨우쳐주는 법이니, 그대가 초정을 단단히 질책하여주기 바라오.” 자신에게 군것질거리를 주지 않은 초정 박제가(1750∼1805)를 질책해 달라는 내용이다. 대여섯 살 아이들의 공연한 까탈 수준인 이 편지를 두고 저자는 “가벼운 이야기를 무겁게 너스레를 떨며 말함으로써 굉장한 우정을 과시했다”고 해석했다. 또 “사대부의 엄숙한 감정주의에서 벗어나 생동하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유쾌함과 위트의 문장이라면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조희룡(1789∼1866)을 빼놓을 수 없다. 옴에 걸린 조희룡, “옴으로 터득한 삼매경” 운운하며 가려움의 고통을 경쾌하게 풀어낸다. “가려움 너머의 가려움이 있고 가려움 내부의 가려움이 있으며, 가려움이 끝났는데 가려움이 끝나지 않은 것이 있고, 가려움이 끝나지 않았는데 가려움이 끝난 것이 있네”란 식이다.
‘비주류’의 삶을 생동감 있는 문체로 묘사한 것도 소품문의 특징으로 꼽힌다. 소품문이 비주류에 주목한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소품문 자체도 당시 문단에서 비주류였다. 비평가들의 비평 대상에도 오르지 못하는 ‘이류 문장’ 취급을 받았다. 소품문의 저자들 역시 비주류의 고단한 삶을 산 당사자였다.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맹자』 일곱 권을 200전에 팔아 그 돈으로 밥을 지어먹었다는 이덕무.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희희낙락 영재(유득공)에게 가서 한껏 자랑을 늘어놓았더니 영재도 굶주린 지 오래라. 내 말을 듣자마자 즉각 『좌씨전』을 팔아 쌀을 사고,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 내가 마시게 하였고. 이야말로 맹자씨가 직접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이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이나 다를 바 없지요. 그래서 나는 맹자와 좌구명, 두 분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찬송하였다오.” 고문의 근엄한 세계에서라면 드러내기 힘든 자기 고백이다. 눈높이를 ‘일상’으로 내린 소품문이 보여주는 조선 후기 생활상도 흥미있다. 이옥(1760∼1815)은 주막의 종이창 구멍을 통해 시장 풍경을 엿본 뒤 “청어를 주렁주렁 엮어서 오는 자가 있고…섶과 땔나무를 등에 메고 오는 자가 있고…무명베를 묶어서 휘두르며 오는 자가 있고…나뭇가지에 돼지고기를 꿰어 오는 자가 있고…주발에 술과 국을 담아서 조심조심 오는 자가 있고…치마에 물건을 담아 옷섶을 든 여자가 있고…”라고 적었다. 시골 5일장의 모습이 그린 듯 펼쳐진다. 또 남종현(1783∼1840)은 자신이 도둑맞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을묘년(1795), 도둑이 사랑채에 들어와 요강과 책 몇 권을 훔쳐 달아났다. 병진년(1796), 도둑이 부엌에 들어와 솥 두 개를 파서 훔쳐갔다. 정사년(1797), 도둑이 안채 동쪽 방에 들어와 옷과 이불, 유기로 만든 그릇과 접시, 숟가락, 젓가락 따위를 각각 수십여 개 훔쳐갔다. 임술년(1802), 도둑이 안채 서쪽 방에 들어와 부인네 옷가지와 그릇 십여 개를 훔쳐갔다. 같은 해 도둑이 안뜰에 들어와 그릇 네댓 개와 솥, 톱, 가래 따위를 훔쳐갔다. 그 물건들은 모두 남에게 빌린 것이라서 모조리 돈과 물건으로 대신 갚는 바람에 몹시 힘이 들었다.” 가난한 서생의 곤궁한 생활상과 당시 서울의 허술한 치안상태가 생생하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2008.09.06 |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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