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크랩] 들사람 얼 (野人精神) / 함석헌

유앤미나 2012. 7. 25. 13:49


들사람 얼 (野人精神) / 함석헌
요(堯)는 천하(天下)을 얻어 임금이 된 다음, 세상에서 자기의 다스림을 어찌 아나 알아보려고 한 번은 시골로 나갔다. 밭에서 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농사꾼을 보고 슬쩍

"당신은 우리 나라 임금을 아시오?"

했다. 농부가 이 말을 듣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흙덩이만 깨뜨리며 하는 말이

"아, 내가 해 뜨면 나오구 해 지면 들어가구, 내 손으로 우물 파 물 마시구, 밭갈아 밥 먹구 사는데 임금이구 뭐구 상관이 뭐야?"
했다. 요는 속으로 '내가 나 있는 줄 모를 만큼 했으니 어지간히 하기는 했구나.' 하면서도 아무래도 마음이 시원치가 못했다. 어디까지 백성(百姓)을 위하자는 마음이요, 가르치자는 생각이므로, 호강이나 세력을 부리자는 뜻은 없어 집을 지어도 백성보다 나은 것이 겨우 흙으로 싼 세 층계(層階)에서 더한 것이 없음을 자기도 스스로 알지만, 그래도 어쩐지 마음의 한구석에 불안이 있었다. 그래 사람을 영천 냇가에 보내어 거기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전에 도(道)를 같이 닦던 시절(時節)의 친구인 소부(巢父), 허유(許由)에게 가서, 나와서 벼슬을 하고 같이 일을 하자고 권했다. 그랬더니 허유가 그 말을 듣고는

"에이 , 더러운 소리를 들었군."
하고, 그 영천수 흐르는 물에 귀를 씻었다. 소부가 송아지를 먹이면서 마침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려다가 그 모양을 보고,

"야, 그 물 더러워졌다. 그것 먹이면 내 송아지 더러워진다."
하고 끌고 위로 올라갔다.

장자(莊子)가 초(楚)나라엘 갔다가 어느 냇가에서 낚시질을 했더니, 그 나라의 임금이 듣고 신하를 보내어 예물을 잔뜩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우리 나라 임금이 선생님의 어지신 소문을 듣고, 꼭 오시어 우리 나라를 위해 일을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했다. 장자 그 이야기를 듣고 하는 말이
"이애 여기 제사 돼지가 있다. 그놈 살았을 때 진창 속에 뒹굴고 있지만, 제삿날이 오면 비단으로 입히고 정한 자리를 깔고 도마 위에 눕히고 칼을 들어 잡는다. 그때 돼지가 되어 생각한다면 그렇게 죽는 것이 좋겠느냐? 진창 속에서나마 살고 싶겠느냐? 또, 너희 나라 사당 안에 점치는 거북 껍질 있지? 그놈은 살았을 때 바닷가 감탕 속에 꼬리를 끌고 놀던 것인데, 한 번 잡힌즉 죽어 그 껍질을 미래(未來)를 점치는 신령(神靈)이라 하여 비단보로 싸서 장 안에 간직해 두게 되니, 거북이 되어 생각한다면 죽어서 그 영광을 받고 싶겠느냐? 감탕 속에 꼬리를 끌면서라도 살고 싶겠느냐?"
했다.

왔던 사신(使臣)의 대답이

"그야 물론 진창ㆍ감탕 속에서 뒹굴고 꼬리를 끌면서라도 살고 싶겠지요."

"그렇다면 가서 너희 임금보고 나도 감탕 속에 꼬리를 치고 싶다고 해라. 천하(天下)니 임금질이니 그게 다 뭐라더냐?"

하고 장자는 물 위에 낚시를 휙 던졌다.



마케도니아의 한 절반 야만인(野蠻人)의 자식(子息)인 알렉산더는 천하를 정복(征服)할 적에 당시 문화의 동산인 그리이스를 말발굽 밑에 두루 짓밟았다. 오는 놈마다 말 앞에 무릎을 꿇었다. 들려 오는 소문에 디오게네스란 유명한 어진 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젊은 아이의 영웅심ㆍ자만심에 으레 제가 나를 보러 오겠거니 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니 왔다. 약도 올랐고 호기심도 일어나고 하여 그는 부하(部下)를 데리고 디오게네스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가 보니 늙은이 하나가 몸에는 누더기를 입고, 머리는 언제 빗질을 햇는지 메도우사의 머리의 뱀처럼 흐트러졌는데, 바야흐로 나무통 옆에 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이 나무통은 그의 소유의 전부인데, 낮에는 어디나 가고 싶은 데로 그것을 굴려 가지고 가고, 밤에는 그 안에 들어가 자는 것이었다. 디오게네스는 누가 왔거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젊은 영웅은 화가 났다.

"너 알렉산더를 모르나?"
제 이름만 들으면 나는 새도 떨어지고, 울던 아기도 그치는 줄만 아는 알렉산더는 마음 속에 '저놈의 영감장이가 몰라 그렇지, 제가 정말 나인 줄 알면야 질겁을 해 벌떡 일어설 테지."하는 기대를 가지고 한 소리였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놀라지도, 코를 찡긋도 않고, 기웃해 알렉산더를 물끄러미 보고 하는 말이

"너 디오게네스를 모르나?"
그리고는 목구멍에 침이 타 마르고 있는 젊은 정복자를 보고,

"비켜, 해 드는 데 그림자 져."
했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한 선비로서 일어나, 어지러워 가던 한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전쟁이 다 끝나고 천하가 완전히 제 손아귀에 들어온 줄을 알게 된 다음, 마음에 좀 불안(不安)을 느꼈다. 이제 천하에 나를 칭찬 아니할 놈이 없고, 내게 복종(服從) 아니 할 놈이 없건만, 단 하나 한 사내만이 마음에 걸린다. 그것은 엄자릉(嚴子陵)이다. 그는 광무제의 동창(同窓) 벗이었다. 한가지의 성현의 도를 닦는 시절에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벗[知己之友]으로 허락(許諾)을 했었고, 높은 이상(理想)과 두터운 덕(德)이 있어 그가 자기보다 한걸음을 내켜 디딘 줄을 아는 광무제는, 처음의 선비의 뜻을 버리고 권세(權勢)의 길을 탐해 천자(天子)가 되기는 했지만, 자릉이 자기를 속으로 인정(認定)해 주지 않을 줄을 알았다. 그 생각을 하면 앞에서 네 발로 기며 아첨하는 소위 만조 백관(滿朝百官)이란 것들이 보기도 싫다. 그래 사람을 부춘산(富春山)에 보내, 냇가에 낚시질하는 엄자릉을 데려오라 했다. 자릉이 따라왔다.

대신이요 무어요 하는 물건들이 뜰 아래 두 줄로 벌려 서서 감히 우러러도 못 보는 데를 자릉이 성큼성큼 걸어 광무 앉은 곳으로 쑥 올라갔다.



"아, 문숙(文叔)이 이게 얼마만인가?"

그 동안에 몇 해의 전쟁이요, 나라요, 정치요, 천자요, 그런 것들이 당초 코 끝에 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신하(臣下)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광무도 도량이 넓다고는 하나 짐승처럼 부려 먹는 신하들 앞에서 제 위에 또 권위(權位)가 있다는 것을 허락해 보여 주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릉을 신하 대접을 했다가는 당장에 무슨 벼락이 떨어질지 모르고, 물론 자릉이 그럴 리도 없겠지만 광무의 마음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스로 무엇인지 모르는 기(氣)에 눌림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신하들 보고는

"너희들은 물러가라. 내 친구를 오래간만에 만나 서로 정을 좀 풀련다."

했다. 밤새 이야기를 하다 잤다. 천문을 보는 신하가 허둥지둥 들어와,

"큰일났습니다. 객성(客星)이 태백(太白)을 범했으니, 무슨 일이 있사옵는지 모르겠습니다."

했다. 태백이란 지금 말로 금성(金星)인데, 옛 사람 생각에 그것은 임금을 표시한다 했다. 객성이란 다른 별이란 말이다. 임금은 절대로 신성하여 범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엄자릉이 자면서 광무의 배 위에다 다리를 턱 올려놓고 잤더라는 것이다. 그래 후세의 시인(詩人)이 자릉의 그 기상을 대신 말하여

萬事無心一釣竿(만사무심일조간) 일만 일에 생각 없고, 다만 하나 낚싯대다.
삼公不換此江山(삼공불환차강산) 삼공 벼슬 준다 한들, 이 강산을 놓을쏘냐.

平生誤識劉文叔(평생오식유문숙) 평생에 잘못 봤던 유문숙이 너 때문에,

起虛名滿世間(기허명만세간) 쓸데없는 이름을 날려, 온 세상에 퍼졌구나.
했다.

이것은 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대가 그리워서 하는 이야기들이다.

호랑이 담배 먹는 이야기를 왜 이 우주 시대(宇宙時代)라는 지금도 하며, 하면 왜 루니크 제2호가 달에 갔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상쾌함을 느낄까?

그것이 역사적(歷史的)으로 있었더냐 없었더냐가 문제 아니다. 없었다면 없을수록,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전해 오게 되는 데 그 사실(事實)을 뛰어넘은 진실성(眞實性)이 있다. 사실, 사실은 사실의 전부가 아니다. 소위 사실이란 것은 현실(現實)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데, 현실은 결코 참이 아니다. 현실이라지만 현(現)이야말로 실(實)은 아니다. 씨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속에 있다. Things are not what they seem! 씨가 피어 나온 것이 잎이요 꽃이지만, 잎과 꽃이 그 씨가 품었던 전부는 아니다. 씨가 품은 것은 '영원'이요 무한이다. 그러므로 꽃마다 잎마다 열매를 내기 위하여서는 떨어져야 하고(현실은 없어지고), 그 씨는 또 더 많은, 더 새로운 씨를 위해 땅 속에 들어가야 한다. 사실이 중요하지만 사실(事實)은 사실(史實)이 되어야 하고, 사실(死實)에 이르러야 한다. 참에서 있음이 나오지만 '있는' 것이 참도 아니요, '있던' 것이 참도 아니다. '있을' 것, '있어야 할' 것이 정말 참이다. 시(始)가 종(終)을 낳는 것이 아니라 종이 시를 낳는다. 신화(神話)는 있던 일이 아니요, 있어야 할 일이다. 신화를 잃어버린 20세기 문명은 참혹한 병이다. 신화는 이상(理想)이다. 이상이므로 처음부터 있었을 것이다. 알파 안에 오메가가 있고, 오메가 안에 알파가 있다. 이 문명이라는 것은 알파도 오메가도 잃고 중간(中間)이다. 중간은 죽는 것이요, 거짓이 되어 가는 것이다. 이 사실(事實)에 붙은 문명은 죽는 문명이요, 거짓이 되어 가는 문명이다.



호랑이는 담배를 먹었을 것이요, 사람과 서로 맞술을 마시고야 말 것이요, 지금도 어디서 마시고 있을 것이다. 호랑이가 담배를 먹었다면, 사람은 선악과(善惡果)를 먹었다. 먹고야 말 것이다. 선악과 먹던 에덴 동산 아야기를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이 선과 악을 참 아는 지혜를 얻고야 말 것을 뜻한다. 사람의 딸들이 하느님의 아들들과 결혼을 했을 것이요(창세기 6:4), 또 낳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모든 신화는 요컨대 하나이다. 사람과 하느님과 만물(萬物)이 서로 통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근본(根本)이요 또 구경(究竟) 이상(理想)이다. 그 신화가 타락(墮落)하여 전설(傳說)이 되고, 전설이 타락해 사화(史話)가 되고, 사화가 타락해 사건(事件)이 된다. 사건이 나면 죽는다. 문명은 사건의 공동 묘지가 아닌가?

그러므로 소부ㆍ허유가 사실로 있었거나 없었거나, 자릉이 정말 광무의 배때기를 눌렀거나 아니 눌렀거나, 이오게네스가 과연 알레산더 눈깔을 쏘아보았거나 말았거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과는 별 문제로 이 이야기들은 참이다. 따지고 들어가면 다른 것이 아니요, 두 편이 있단 말이다. 요ㆍ초왕ㆍ알렉산더ㆍ한 광무 등등으로 대표(代表)되는 소위 문명인과 소부ㆍ허유ㆍ장자ㆍ디오게네스ㆍ엄자릉 등으로 대표되는 '들 사람'과, 그리고 이 세상이 보기에는 문명인의 세상 같지만 사실은 들 사람이 있으므로 되어 간다는 말이다. 그것을 주장한 것이 이들 신화ㆍ전설이 끊이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이유이다.

중국 민족같이 실제적(實際的)인 민족은 없다. 거기서 난 성인(聖人) 공자(孔子)는 주로 한 것이 집과 나라와 사회를 어떻게 받들어 나갈 거냐, 거기 관한 실지 도덕(道德)의 가르침이었지 우주의 근본이나 생명의 신비 같은 것을 그리 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가르침이 표준(標準)이 되어 임금을 하늘 아들이라 높였는데, 그 중국 역사에 어찌하여 내리 내리 잊지 않고 세상을 초탈하는 인물(人物)을 그 위에 앉히는 사상이 있을까? 또 그리이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폴리스란 말이 정치를 뜻하듯이 그들은 정치적인 민족이요, 또 과학 발달이 그들에게서 나왔는데 어찌하여 디오게네스 같은 인물을 알렉산더보다 높이는 사상이 있을까? 그렇게 보면 하필 중국이나 그리이스만 아니라 어떤 민족, 어떤 나라의 역사에도 이 두 계급(階級)의 대립(對立)이 있고, 그리고 현실에 있어서는 하나 틀림없이 다 임금을 높이고 신이라고까지 하면서도, 그 뒷면의 정신의 세계에선 늘 그 위에 관 없는 왕을, 왕 위의 왕을 앉혀 놓는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양치는 소년 다윗은 골리앗을 조약돌로 때려 눕혔고, 그 다윗은 선지자 사무엘이 어린애처럼 가져다 왕 위에 놓았으며, 인도에서는 임금이 왕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出家)를 하여 거지 같은 고행자(苦行者) 앞에 겸손한 제자가 되는 일이 수두룩했다. 맹자(孟子)는 임금이 불러도

"저는 벼슬 한 가지 높지만, 나는 나이도 높고 덕도 높으니 제가 어찌 나를 불러?"

하고 아니 갔고, 천작(天爵)ㆍ인작(人爵)을 말했다. 뼈가 빠진 대로 다 빠지고 살이 썩을 대로 다 썩은 우리 나라 이씨(李氏)네 5백 년에 있어서도 그래도 무슨 기백이 남은 것이 있다면 상투 밑에서 고린내는 났을망정 한 줌 되는 산림학자(山林學者)에 있지 않았나? 정몽주(鄭夢周)를 때려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선죽교(善竹橋)에 피가 흐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성계ㆍ이방원을 만고의 죄인으로 규정짓는 민중의 판단(判斷)이지. 왕 위에 또 왕이 있단 말이지 무언가? 야차(夜叉) 같은 수양으로도 미친 녀석 같은 김시습(金時習)을 어떻게나 모셔 보려 애를 쓴 것은 무언가? 칼보다도 더 무서운 칼이 있고, 곤룡포(袞龍袍)보다도 더 아름다운 옷이 있단 말이지.

*여기서 작자가 말하는 신화의 의미는?
신화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이상세계이다. 이상은 비현실적인 세계이지만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면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는 세계이다. 따라서 어떠한 이상을 추구하여 그것을 실현하면 벌써 현실이지 이상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으로서의 신화는 이미 '있는 것', '있던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있을 것', 항상 '있어야 할',영원한 추구의 대상이요,가치라는 것이다.



音:Piano Cafe / Yuichi Watanabe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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