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크랩] [에세이]내 삶의 마지막 모습 ㅡ 김지향

유앤미나 2012. 7. 25. 00:15




내 삶의 마지막 모습 ㅡ 김지향
죽은 뒤의 모습이야 어떻든 죽은 사람에겐 상관이 없지만 죽은 모습에 대해서 후세에 일화를 남기는 건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악하게 살던 사람에게 "벼락을 맞았느니 "급살을 맞았다"느니 악담이 있는 것을 보면 죽는 모습이 사람의 태도와 관련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나는 30대까지는 마지막 날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간혹 어른들의 덕담 속에 오가는 말이 기억나기는 한다. '누구는 임종 때 자녀가 없이 쓸쓸하게 떠났다' 라든지 '누구는 아들이 모두 와서 임종을 지켜봐서 참 행복하게 보였다'는 등의 후일담을 들을 때 나는 지켜볼 자식이 있어 걱정 없다고 생각 적은 있다. 그러나 젊은 시절엔 요원한 문제여서 깊이 생각해 보진 않았다. 마감 날이 아득히 멀리 남은 것 같아서 임박할 무렵에 생각하기로 하고 잊어버리고 살았다. 하지만 중년에 자녀들이 모두 성장하고 또 성혼을 시켜 내보내고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될 때가 있다. 때 아닌 마지막 날이 급습해오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진 적도 있었다. 회갑을 넘기면서부터였다. 나날이 바쁘게 살다가도 일이 끝난 밤중엔 부지중에 내일아침 잠에서 깨나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 밤새 뜬눈으로 지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신앙인이다. 취침 전에 반드시 기도를 하고 자리에 눕는다. 하나님께 내 생명 모두를 부탁하고 나면 평안히 잠들 수가 있다. 신앙이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만일 내가 신앙이 없었다면 지금도 불안에 떨 것이다. 젊은 시절엔 신앙이 있긴 해도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는 온전한 신앙이 아니라 형식적이었다. 내 목숨 절반은 내가 책임진다는 세상적인 사고방식이었기에 내 목숨을 훔쳐갈 어떤 힘을 두려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무렵엔 삶이 즐거웠고 세상이 즐거워서 아주 어려운 일이 닥치기 전엔 기도도 하지않는 그저 습관적인 신앙인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면서 신앙심이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대충 대충이 아니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나의 모든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고 살게 되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기도생활에 함몰해가고부터는 마지막 날을 내가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뜻대로 하는 생활방식으로 고치고 나니 얼마나 평안한지 모른다. (밥도 안되는 시를 붙잡고 살던 젊은 시절에) 이 명제가 내게 왔다면 "시를 쓰다가 최후를 맞는다"는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시보다는 하나님이 더 소중하게 된 지금은 죽음이 언제 찾아와도 상관없이 성경 읽고 기도하다가 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손을 모으고 손 사이에는 시집 아닌 성경을 끼우고 눕지 않고 앉은 자세로 머리 숙여 기도하는 자세야말로 나에겐 가장 이상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다. 만일 죽음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면 (대체로 하나님께서 예고를 해주시리라 믿지만) 그런 땐 핸드폰이 있으니 자녀들에게 연락은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나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그 아이들이 나의 최고 최선의 작품이라고 보기 때문에 죽은 뒤 작품이 남는다면 시가 아니라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이상의 성취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세상에 나와서 많은 자손을 남기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승에선 아이들이 내 최후의 모습을 거둬줄 것이고 저승에선 하나님이 나를 맞아줄 것을 믿기 때문에 나는 최후의 날에 대해선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 2006년도 한국수필 11.12월호에서-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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