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크랩] [에세이]아름다운 여인상-윤모촌

유앤미나 2012. 7. 23. 14:08

아름다운 여인상-윤모촌-

나는 여성의 미를 밀랍으로 깎아만든 듯한 미모보다는 수더분하고 언틀민틀하게- 어찌 보면 촌사람답게 보이는 모습을 좋게 본다. 이런 때문에 꽤 잘 생긴 결혼상대가 나타났을 때, 첫 눈에서부터 그는 내게서 멀어져간 일이 있다. 이것은 내가 잘나지 못한 것을 변명하는 것으로 들어도 된다. 나의 이런 용모 감각은 아름다운 것은 자연적인 것이라야 하고 인공적일 때는 소박한 맛을 느낄 수가 없는 데서 오는 이유이다. 꽃의 경우만 해도 그러해서, 장미나 백합은 마음으로 와 잡히지 않는다. 세상이 삭막해져 가는 것은, 자연적인 것을 벗어나 인공을  가한데서 오지 않은것이 없는데, 장미나 백합이 바로 그렇게 보이는 까닭이다.

사람을 볼 때 아름다움이 용모에 있는 것만은 아닌데, 여인의 경우에서 내가 느끼게 되는 것은, 여인이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이다. 한국의 여성-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가슴을 드러내는 일을 목숨을 걸 만큼 소중히 했다. 치마허리를 추키고도 /끈으로 다시 단속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단속한 가슴도 아기에게 젖을 물릴 때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금단의 가슴을 풀어헤친다. 나는 이 모습을 아름다운 것 중에서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감히 말한다. 근래에 와서는 이런 모습이 눈에 띠지 않지만, 여인의 상징인 풍만한 가슴도 사라져가고 있다.

여성의 모성애는 아름다운 것 중에서도 가장 거룩하게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그런 아름다움으로 더 성스러운 자리를 누렸다. 그러나 지금의 여인들은 외형적 아름다움에만 빠져, 머리에 물을 들이고, 없는 유방을 인공으로 부풀린다. 말라붙은 가슴을 브래지어로 눈가림을 하는 것을 보면, 여성의 아름다운 조건이 가슴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 하다.

소년시절 나는 여선생님이 교실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시는 것을 보았다. 일인 교장 밑이던 그 시절에 우리들은, 선생님의 그런 모습을 우러러보았다. 나는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자랐지만, 너댓살이 넘도록 어머니 젖가슴에 매달리곤 하였다. 그래서인지 교실에서 젖을 빨리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오늘까지도 잊을 수 없는 회상으로 남는다. 나는 어머니의 젖을 만지다가 품에서 잠이 들곤 하였지만, 오늘까지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어머니 품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우유를 먹으며 커가지만, 우유로 커가는 것이어서 그런지ㅡ 요새 유아들은 소리를 잘 지른다는 말을 듣는다, 어느 날, 손주놈이 우유를 달라며 보채기에, 하는 양을 보려고 제 할미가 가슴을 열고 젖곡지를 내보였다. 제 아비나 고모들의 경우라면 허겁지겁 달려들었을 장면인데, 물끄러미 바라다만 보다가 외면을 하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허탈감 같은 기분이 들면서 혼자서 탄식을 하였다. 어미의 젖가슴을 모르면서 자라는 세태, 이것은 우주의 질서 한 모퉁이가 모성애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분신에게 모체의 체온을 느끼지 못하며 자라게 하는 세태도 세태지만, 젖가슴을 말려붙이면서까지 모성애가 퇘색해져가는 것은, 삭막한 것 중에서도 삭막한 것이다.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나려는 삶의 방식을 지표처럼 내세우고 이것을 과학하는 자세라고 말하지만, 젖을 말려 붙이는 모성 부재의 삶은 생각할수록 무서운 일이다. (19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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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본래 '선비의 글'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선비의 글'을 만나기 어렵다. 윤모촌의 수필은 귀하게 남은 '선비의 글'이다. 그는 난초를 가꾸고 새소리에 귀기울이는 한가로운 선비가 아니라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을 보다 못해 비분강개하는 지사풍 志士風의 선비이다. 따라서 그의 수필에는 뚜렷한 주제와 강한 주장이 있다 (김태길-서울대명예교수)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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