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크랩] 어느 설날의 하얀 고무신 -박대규-

유앤미나 2012. 7. 23. 13:52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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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opo2005.fc2web.com/etc/17.gif 어느 설날의 하얀 고무신 -박대규-

                                                           


   가슴에 하얀 고무신 한 켤레를 껴안고 기쁨에 겨워 얼마나 밤새 잠을 설쳤는지 그 날만큼은 겨울밤이 왜 그렇게 길었는지 모른다.

  언제 이었던가? 내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입학 하기전인가 입학을 하던 무렵이었을까, 아마 40여년전 그 때 쯤의 설날이었다. 어제 어머니께서는 설빔을 마련하시느라 시장을 다녀오셨다. 그 당시의 우리 집안은 김천에서 두 분의 부모님과 여섯 남매의 우리 형제 모두 여덟 식구가 시내에 있는 평화정미소라는 남의 집 방앗간에서 일 하시는 아버님의 봉급으로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래도 어머님은 해 마다 설날이 되면 곧 군에 입대할 큰 아들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고등학교, 중학교, 국민학교를 다니는 두 형님들과 두 누님들과 어린 나와 막내 동생까지 설날 선물을 마련 하셨다.

  어머님은 해마다 설날이 되면 형님들께는 두터운 점퍼와 농구화 등 푸짐히 선물을 마련하시고 누님들에게는 스웨터와 장갑, 그 당시 여학생이 신는 운동화만은 늘 마련하셨고 나와 동생은 아직 나이가 어려 고작 하얀 고무신과 양말 한 켤레씩이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그 것도 항상 감사했다. 왜냐면 평소 나와 동생은 언제나 재활용이었으니까. 줄줄이 위로부터 형님들과 누님들이 많은 관계로 나와 동생은 형님들과 누님들이 입거나 신고 남은 헌 옷가지에다 신발이 우리 몫이었으니 형님들이 군대 제대를 하고 하나 둘씩 어른이 되고 출가를 한 뒤에서야 물려 받을 옷이 없어 겨우 새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속옷만은 누님들이 시집갈 때 두고 간 내의를 기워 입고 사춘기가 다 되도록 까지 그렇게 지냈으니 어린 그 당시의 설날 명절선물이라고 하얀 고무신 한 켤레만이라도 우리는 대 환영이고 기뻤다. 그나마도 평소에 멋없고 질기기만 한 검은 고무신을 지겹게 신다가 명절 때 하얀 고무신 한 켤레만이라도 한번 신어 보는 게 우린 너무 감사했다.

  그런 시절의 내가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얼마나 좋았던지 그 날밤 그 고무신 한 켤레를 가슴에 않고 밤새도록 얼마나 밤을 지새웠는지 모른다.   자다가 또 일어나고 뜬눈으로 누워 있다 또 밖을 내다보고 하다가 어느 듯 깊은 잠에 들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몰라도 곤히 자다 문득 눈을 떴을 땐 하얀 문종이 방문이 훤히 비치고 있어 날이 밝았구나 하고 일어나니 단칸방에 아직 부모님과 누님들이 곤히 잠이 들어 있어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 보니 이게 웬일인가? 마루 끝에서부터 눈에 뵈는 온 세상이 하얀 색으로 덮여 있었다. 눈이 온 것이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참으로 경이로웠다. 아직 이른 새벽이었는데도 문풍지 방문이 환히 밝았던 것은 눈빛이 방문에 비쳤던 것이었다.

  그 설날 새벽, 바람도 없었다 너무 고요했다. 아직도 눈송이는 하늘로부터 아무 요동도 없이 조용히 아주 부드럽게 내리고 있었다. 온 천지가 하얗고 온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울타리도 없이 우리 집은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 김천시내를 관통하는 경부국도 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날은 설날이어서인지 눈이 많이 내려서인지 마루에서 내려보는 도로는 아직 자동차 한 대 지나간 흔적이 없는 너무 깨끗한 거리였다.

  그리고 길 건너 저 멀리 보이는 언덕 위의 김천 소년 교도소의 하얀 담장과 망루의 전등불은 정말 대자연의 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진 한 폭의 하얀 그림이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설경에 심취되어 있던 차에 나의 가슴과 손끝에 차가운 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날이 추워서가 아니고 가슴에 안긴 고무신이 그 동안 나의 가슴과 고사리 같은 손 보다 먼저 기온에 식어 체감 온도가 달랐던 것이다. 어제 밤에 잠 들 때부터 가슴에 안고 있던 신발이 얼마나 좋아 나도 모르게 아직까지 가슴에 안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마당 밖에서부터 우리 마당까지 들어온 눈에 덮여 어렴풋이 남아 있는 발자국이 보였다. 희미하게나마 분명 사람의 발자국이었다. 언제나 친구들이 좋아 밤늦도록 놀다 늦게 집에 들어오시는 큰 형님의 발자국인가 생각하며 새삼스레 발자국을 보니 우리 형님처럼 어른의 발자국이 아닌 내 또래의 어린아이 발자국인데 지나간 진로가 방이 있는 방향이 아닌 부엌이 있는 쪽이었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호기심에 마루 끝까지 다가가 부엌 쪽을 보니 그 발자국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내 정도의 나이쯤 되는 어린 거지 소년이 다 떨어진 신발에다 거의 다 맨발이다 시피 한 떨어지고 물에 젖은 양말을 신고 내리는 눈을 피해 우리 집 부엌문 앞에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나는 순간 “누구냐?” 하고  물어도 소년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추위에 입이 얼어 말을 못 하는지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서서 미안해서인지 아무 말이 없이 두 손을 입에 대고 마냥 몸을 사시나무 떨 듯 계속 떨고 있었다. 나처럼 어린 나이에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그리고 눈에 덮인 평온한 세상에 비해 어린 거지 소년이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은 너무 대조적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손에 든 하얀 고무신을 그 거지 소년에게 주었다. 어제 밤부터 지금까지 가슴에 품고 있던 그 하얀 고무신을 말없이 불쌍한 그 소년에게 내 밀었다.

  처음엔 말없이 나만 쳐다보더니 내가 자꾸 받으라고 재촉하자 그는 내게 다가와 손등이 불어 트고 때가 묻은 검은 손으로 잽싸게 고무신을 낚아채더니 내가 다시 돌려 달라고 할지, 아니면 부끄러웠는지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고무신을 바꿔 신지도 않은 체 그냥 마당 바깥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가 달려 나간 자리 뒤를 따라 눈 위로 그의 발자국도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그를 따라 달려 나갔다. 대자연의 하얀 화폭 위로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새 고무신을 신고 싶은 나의 설렘도 욕구도 함께 그 발자국을 따라 나갔다. 그러나 내 마음 한 구석엔 무서움이 도사리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들켜 버릴 고무신 때문에 걱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잠든 막내 동생을 깨워 눈이 왔다고 함께 호들갑을 떨며 온 식구들이 새벽잠을 못 자게 뛰어 다녔을 텐데 정말 기구한 설날 새벽이었다. 거지 소년의 발자국을 뒤로 한 채 조용히 방에 들어와 이불 속을 찾았건만 고민 속에 다시 잠을 들 수가 없었다. 고무신을 안고 잠을 자던 가슴이 왠지 허전하기도 하고 또 분노할 어머니가 무서웠다.

 

  그 시절의 우리 어머님은 없는 살림에 여러 자식을 키우면서 우리 형제에 대한 어머니의 통제력은 정말 대단하셨다. 특히 가난한 살림에 경제적인 손실이 있는 실수는 절대 용서 하지 않으셨다. 예를 들면 누구와 싸워 약값이나 치료비를 물어 준다던가 개구쟁이지만 뛰어 놀다 아무리 헌 옷이라도 찢겨 못 입게 되면 그 날은 바로 반죽음이다. 특히 여러 형제가 식사를 함께 하다 누가 밥알을 하나라도 흘리거나 반찬이나 국물을 쏟을 때엔 그 땐 회초리가 따로 필요 없었다. 같이 식사하시던 어머니께서 손에 잡힌 숟가락이나 빈 그릇이 피할 틈도 없이 곧 바로 사정없이 날아온다. 지금 말하면 엄청난 가정 폭력이고 아동 폭력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버님은 점잖게 아무 말씀이 없으시며 만류하지도 않으신다. 가정 교육상 그러시는지 많은 자식을 통제하는 어머님을 이해하시는지 아버님은 어머님의 편을 들지는 않으시지만 만류하지도 않으신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 날의 나의 걱정은 아무리 설날이라도 무서워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이불깃을 입에 물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먼동이 틀 무렵 나 보다 세 살 위인 누나가 먼저 일어났다.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는지 밖을 나가는 것이다. “야! 눈이다. 눈이 왔다.” 그 호들갑 떠는 소리에 곧 바로 어린 동생이 일어나고 두 부모님까지 잠에서 깨어나시게 되었다. 이미 밖에는 어느새 먼저 일어난 동네 아이들의 뛰어 노는 소리가 들리고, 도로에는 길이 미끄러워 속력을 내지 못하고 눈 장난하는 개구쟁이들이 위험하게 뛰어 들까봐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저속으로 지나가는 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동생은 함께 밖을 나가자고 나를 깨운다. 나는 잠시 후 어머니에게 혼이 날 무서움에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은 조금 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내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고 자꾸 밖을 나가자고 조른다. 일어날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동생은 “형, 새 신을 신어 어제 엄마가 사온 새신 있잖아. 어, 새신이 안 보이네, 형 새신 어디에 있어” 하고 내 대신 나의 고무신을 찾는 막내 동생의 소리에 엄청나게 눈치가 빠른 어머니의 두 눈이 번쩍, 이윽고 어머니의 질문 공세가 시작 되고 곧 바로 나는 집안의 경제적 손실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았다. 설날 새벽부터 가혹한 매 타작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 운명의 설날이여! 나의 고무신이여......

  결국, 그 해는 설날부터 매 타작으로 시작되어 벌칙으로 일년간은 새 신을 한번 신어 보지 못하고 누나들이 신다 떨어진 헌 운동화를 받아 신게 되었다. 언제나 설날 아침이 되면 그 날의 고무신 생각이 난다.

 

  지금도 나의 집 배란다에는 언제나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 있다. 때론 나의 아내가 내가 왜 고무신을 집에 놓아두는지 영문도 모르고 세탁을 할 때나 물청소를 할 때면 곧 잘 하얀 고무신을 즐겨 신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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