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에 기댄 그리움
새벽달에 허전히 그림자 끌고 가니
누런 꽃 붉은 잎은 정을 담뿍 머금었네.
구름 모래 아마득히 물어볼 사람 없어
나루 누각 기둥 돌며 여다홉번 기대었소.
曉月空將一影行 黃花赤葉政含情
雲沙目斷無人問 依遍津樓八九楹
-노수신(盧守愼, 1515-1590), 〈벽정대인(碧亭待人)〉
노수신은 명종조 을사사화 때에 19년간 진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벽정(碧亭)은 진도 벽파나루에 있었던 벽파정(碧波亭)이다. 그 참혹하게 길었던 귀양살이 도중에 그를 찾았을 그 한 사람을 기다려 이 시를 지었다. 시를 읽노라면, 그날 새벽 울돌목을 섯돌아 나가는 물결을 바라보며 애간장을 졸이던 시인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새벽 먼동이 트기를 기다려 긴 그림자를 끌며 길을 나선다. 두근대는 설렘에 그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모양이다.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잎 위에 가을 서리는 어느새 이슬로 맺혀 있다. 국화꽃과 단풍잎이야 무슨 정이 있을까? 툭 건드리면 그렁그렁 눈물로 떨어질 정을 내 마음에 그득 지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구름 아득한 저편 하늘, 물건너 백사장을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아도 건너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4구의 ‘팔구영(八九楹)’에 표현의 묘미가 있다. 새벽부터 시작된 기다림이 오후로 넘어가도록 사람은 오질 않고, 나루가에 있는 누각에서 이리로 오려나 싶어 이편 기둥에 기대섰다가, 혹시 저편일까 싶어 그 다음 기둥으로 옮겨서고, 다시 그렇게 기둥을 돌며 돌며 옮아가던 안타까움이 어느새 두 바퀴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청마 유치환은 〈대인(待人)〉이란 작품에서 “나날은 훠언히 하늘만 뜨는 것 / 재 넘어도 뱃길로도 아무도 안오는 것 / 한 잎 두 잎 젊음만 꽃잎 지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기다리는 그 사람이 오지 않고는 나의 나날은 그저 아무런 의미 없이 하늘만 뜨고 지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기다림은 끝끝내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한 잎 두 잎 그렇게 청춘의 꽃잎만 뚜욱 뚝 떨어지고 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 것인가.
어느 핸가 정초에 먹을 갈아 흰 종이를 펴서 이 시를 쓰고는 그 옆에 “새해엔 이런 기다림 하나 가슴에 품고 지냈으면 싶다”고 쓴 일이 있다. 그후로 이 시는 내게 안타까운 기다림이 아니라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읽힌다. 밤새 잠 못 이루고 그 추운 가을 새벽 누군가를 마중 나가는 길에서 만난 서리이슬에 젖은 붉은 단풍잎처럼, 태우다 태우다 시퍼렇게 뻥 뚫린 가을 하늘처럼 그런 기다림 하나쯤 몰래 감추고 살아가는 삶이었으면 싶었던 것이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옛 시인의 마음과 지금 시인의 마음이 어쩌면 이리도 꼭 같게 한 자리에서 만났을까. 나는 감탄한다.
몇 해 전 노수신의 시에 나오는 벽파정이 보고 싶어 진도로 벽파진을 찾아갔던 일이 있다. 충무공의 대첩비만 덩그렇게 서 있는 바위 언덕에선 잔뜩 찌푸린 날씨에 바람만 맵게 불었다. 그런데도 내게는 이날의 풍경이 새벽녘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던 신산스런 기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