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설야(山中雪夜) / 이제현(李齊賢)
- 눈 내리는 산속 -
이불도 썰렁하고
등불도 희미하고
사미(沙彌)는 밤새도록 종도 안 치고,
나그네가 일찍 깨서
심술이 났나.
소나무를 뒤덮는
저 눈 좀 보렴.
山 中 雪 夜 (산중설야) - 산중의 눈 내리는 밤. 어느 절을 생각할 일
紙 被 生 寒 佛 燈 暗 (지피생한불등암) : 종이 이불에선 한기가 일고 불등(佛燈)은 어두우니,
沙 彌 一 夜 不 鳴 鐘 (사미일야부명종) : 사미승(沙彌僧)은 밤새도록 종(鍾)을 울리지 않았구나.
應 嗔 宿 客 開 門 早 (응진숙객개문조) : 나그네가 문을 일찍 연다고 응당 화를 내겠지만,
要 看 庵 前 雪 壓 松 (요간암전설압송) : 암자(庵子)앞 눈 쌓인 소나무를 꼭 보리라.
<감 상>
한 나그네가 절에서 잔다. 종이 같은 얇은 이불, 한기가 끼친다.
뜰에 밝혀 둔 등불도 희미하다. 눈이 퍼붓는다. 아, 눈이다.
나그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연다. 펑펑 퍼붓는 흰 눈이 암자앞
푸른 소나무를 뒤덮고 있다.
사미는 새벽이 되어도 종도 안 친다. 내가 한밤중에 일어나는 바람에 잠을 설쳤을
사미, 그래서 심술이 난 것일까? 그래, 좀 미안하구나.
하지만 저 푸른 소나무를 짓누르는 흰 눈을 보지 않고 어떻게 잠이나 자니?
지금도 암자 앞 푸른 소나무에 흰 함박눈이 펑펑 퍼붓고 있다.
나그네는 그 장쾌한 광경에 넋을 잃는다. 하지만 그까짓 거야 늘 보는 건데 뭘,
사미는 짜증스럽기만 하다. 한밤중 눈 쌓이는 산속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제현(李濟賢, 1287~1367) : 고려 공민왕 때의 문인, 학자. 호는 익재(益齋).
이진(李瑱)의 아들. 문장이 뛰어났다. 저서로 『益齋亂藁(익제난고)』를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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