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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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향(蘭香)
― 작자미상
手裁蘭花兩三枝(수재란화량삼지) 손수 가꾸었소 난촉 두세 대
日暖風微次第開(일난풍미차제개) 따뜻한 바람결에 꽃이 피기에
坐久不知香在室(좌구불지향재실) 방 안에 있어봐도 향내 없더니
推窓時有蝶飛來(퇴창시유접비래) 문 열자 나비들이 떼지어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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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暖(일난) : 따뜻한 햇빛
風微(풍미) ; 살랑살랑 부는 가벼운 바람
坐久(좌구) : 오랫동안 앉아 있음
推窓(퇴창) : 창문을 밀어서 엶
손수 난을 길렀습니다. 난을 길러 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지간한 정성이
아니고서는 꽃망울을 달리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까다로운 난에 화촉
이 삐죽이 솟더니 다행이도 몇 송이가 차례로 벙글며 터집니다.
고서(古書)가 있고 수석(壽石)이 한두 점, 여기에 난(蘭)이 한두 분(盆) 곁
들여있다면, 선비가 기거하는 방으로서는 금상첨화입니다. 비록 누실
(陋室)이라도 친구와 차를 마시며 청담(淸談)을 나누거나 혼자 명상에 잠
기며, 손수 가꾼 난꽃을 감상하다니 더없는 청복(淸福)인지도 모릅니다.
오랫동안 난꽃을 감상하느라 난분(蘭盆) 곁에 앉아 있었지만 난의 향기
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무심코 방문을 열자 벌,나비들이 몰려옵니다.
물론 난향(蘭香) 때문이지요,
그래서 난향십리(蘭香十里)라고 했던가요. 방 안에 있을 때는 몰랐으나
그 은은한 향기는 문틈으로 새어나가 멀리 있는 벌, 나비를 부른 곳입
니다. 이를 일러 격기품고(格氣品高)라 했고 일지여향(一枝餘香)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어찌 난만을 두고 이른 말이겠어요. 사람도 같겠지요. 친구라도
좋고 연인이라면 더욱 좋겠지요. 처음 만났을 땐 아주 사람을 홀딱 반하
게 합니다. 첫눈에 반하도록 온갖 작위적인 행동일 수도 있고, 요란한 치
장에 넋을 잃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쩐 일인지 시간이 갈수록 덤덤해지고 싫어집니다. 교언영색(巧
言令色)은 길지를 못합니다. 반면에 당장 곁에 있을 때는 그리 좋은 줄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저 덤덤하게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립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잘 몰랐는데 어려울 때 극진히 아껴주는 사람, 곱씹을수록 입
안에 향이 그윽하고 여운이 있는것을 일러 난향기청(蘭香氣淸)이라고 했습
니다. 그러자면 심지(心地)가 고와야 합니다. 가을달 같은 품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향란유인조(香蘭幽人操)라고 했던가요? 난초의 향기를 은사(隱士)의
지조(志操)에 비했습니다.
난향과 같은 친구, 난향과 같은 연인이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요란한 거치레만 보고 사람을 사귀지 말고 보이지 않
는, 가려진 심향(心香)과 심덕(心德)을 찾아 사귀어 보셔요.
단풍진 가을의 들길을 걷다가, 깊은 밤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사람,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얼굴, 그런 사람이 돼 보고 싶지 않습니까? 유덕
(有德)한 군자나, 정숙한 여인네는 난향과 같이 비록 빈 골에 홀로 있어도
그 향기는 온 골짜기로 퍼지게 마련입니다.
현대를 일컬어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합니다. 아무때고 난향과 같은 연인
이나 친구를 불러내어 청담을 나누고 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
한 사람입니다. 여자 친구면 어떻고 남자 친구면 어떻겠어요. 스스럼없이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보고 싶은 친구말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잘 몰
랐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좋아지는 친구, 정이 더해가는 연인 말입니다. 일
러 난우(蘭友)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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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 ? )
난초를 예찬한 문구는 고래로 수없이 많았음.
幽谷佳人(유곡가인) ; 그윽한 산골짜기에 미인이 숨어 있어도 그 아름다운
자태는 절로 알려짐.
淸香自遠(청향자원) : 난의 향기는 스스로 멀리까지 풍김.
國香瑞色(국향서색) : 상서롭다. 난의 향기여.
風露淸香(풍로청향) : 풍로에 더욱 맑은 난의 향기.
芳馥乘風(방복승풍) : 꽃다운 향기가 바람을 타네.*
出 處 / 漢詩에세이(1997)沈永求 著
090506/燈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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