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우연히 내[川]와 숲이 잘 조화된 정원을만난 모양입니다.우리나라로 치면담양
양씨(梁氏)네의 소쇄원 같은 아담한 정원이거나 아니면 크게는 비원 같은 정감있는 정원
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연히 지나는 길에 들러 주인을 만나 마주보고 앉을수 있었던
걸 보면 그리 큰 정원은 아닌 둣싶습니다.
술마실 기분이 담겼으니 서양식 정원처럼 기하학적이거나 헤버러졌거나 광활한 잔디밭
으로 꾸며진 것이아닌,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아담한 산수와 기암괴석의 자연을 조화시킨
경관 좋은 별장 같습니다. 호수가 있고 궁궐같은 큰 누각으로 인간을 위압하는 그런 정원
이 아닌가 봅니다. 그윽한 정경에 끌려 나그네는 호기심에 들어갔습니다. 잘 가꾸어진 꽃
과 바람소리 맑은 정원에서 술생각이 났던 모양입니다.
들어가기는 했습니다마는 알지도 못하는 주인으로 부터 술대접 받기가 미안했던지 자기가
술을 사겠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주머니에 주자(酒資)가 넉넉히 있다고 아주 호기를 부립
니다. 이런 곳이라면 응당 그럴 법도 합니다.주인과는 생면부지(生面不知)인데도 무턱대고
들어오긴 했어도 나그네는 주인 보기가 꽤나 서먹서먹했겠지요.그러니 술이 없고서야 대화
가 되겠어요. 나그네가 술이나 마시자고 먼저 청했는가 봅니다.
어쨌거나 모르는 집에 뛰어든 것도 정경(庭景)을 사랑하는 멋쟁이요, 풍류입니다마는 경치
좋은 정원에서 같은 유(類)끼리 정담(情談)을 나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 이런 때 술이
없고서야 되겠어요?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청담(淸談), 희언(戱言)이 오고가며 비록 첫
대면이지만 분위기는 무르익어 십년지기(十年知己)처럼 가까워지게 마련입니다.
‘ 그대와 하루 저녁 나눈 이야기 십년 글 읽은 것보다 더욱 즐겁다(共君一夜話 勝讀十年書)’
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술을 들다보니 금세 친해져서 하씨네(자네집) 술익거든 부디 날 부르소 원씨네(내 집에)
꽃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옴세 백년덧 시름 없는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재너머 원씨네(성
권농)집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깔개 놓아 눌러타고 아해야 원씨(성권농)
계시냐 하생원(정좌수)왔다 하여라.거문고 술대 꽂아놓고 호젓이 낮잠든데 사립문 개짓는
소리에 별장원씨(반가운 손님) 오는구나 아희야 점심도 하려니와 외상탁주 내어라.
하며 원씨와 하씨 두 사람은 아마도 끊임없이 위와 같이 흥겨운 술판을 벌였겠지요. 술이란
이렇게 좋은 매개체이고 의기 투합하는 친구란 이토록 정겨운 것입니다. 술자리란 부귀
빈천을 불문하고 격식을 가리지않고 인생행로의 번뇌를 해소하고 위안을 주는 귀중한 수단
입니다. 詩라도 읊는 저 난정(蘭亭)의 군현우집(群賢雲集) 같은 술자리가 아니라도 좋고 심
우호붕(心友好朋)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마음씨 고운 연인이거나 이야기를 이어주는 재치있는 미인이라면 더욱 좋을 겁니다. 여기에
원씨네 별장 같은 경관이 수려한 곳이라면 금상첨화 입니다.
☆ 하지장(賀知章 ; 659~744) - 당(唐) 나라의 시인.
695년에 진사에 등과. 태상박사를 거쳐 725년 예부시랑, 이듬에 공부시랑, 비서감을 역임
하였으며 744년 귀향 후 병사. 현종을 섬겼고 시인 이백의 발견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 자신
도 풍류인으로 이름이 높아 두보의 「음중팔선가」에도 읊어져 있음. 포융, 장약허, 장욱과
더불어 오중 4사(吳中四士)라 불림.
만년에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 자호(自號)함. 힘찬 필력과 고아한 취향의 행, 초서에 뛰
어났으며 저서에 「하비감집」1권이 전함.
出 處 / 漢詩에세이(1997) 沈永求
081226 / 燈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