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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없는 세상

유앤미나 2012. 1. 16. 13:16


왕따 없는 세상


대전 여고생의 자살사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구에서 중학생이 같은 반 친구들의 폭행과
협박에 시달리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자살하기 전
A4 4장에 유서를 남겼는데
평소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은 영화 속에 나오는
조폭들보다 더했다.

돈을 갖다 바치고,
물로 고문하고 흡연을 강요하고
심지어 전깃줄을 목에 매달고
끌고 다니기까지 했다.

도대체 왜 어린 학생들이 친구에게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상습적인 폭행을 일삼았을까.


김 군이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글로
유서를 마무리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 이 나라에서
학교가 폭력에 가장 노출된
장소가 되고 있다.

성추행을 당하거나,
눈까지 실명되었음에도
오히려 가해자들에게 바보취급 받고,
정신병까지 앓은 사례는
너무 많아
나열 할 수가 없을 정도다.


어느 중학생은
가해학생들을 먼발치에서만 봐도
선 채로 오줌을 쌀 정도로
충격을 받아 엄마는 직장까지 관 두고
고3 언니는 대입까지 망쳐
피해 보상을 요구하자,

가해자 부모는
"딸 팔아먹으니 좋으냐. 5천만원 줄 테니
운동장에서 분신자살하라“며
막말을 해왔다.


아니 어떻게 된 세상이
피해자 학생들이
죄인처럼 고개도 못 들고 있고,
가해자들은 큰소리치는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날만 새면
인권을 부르짖으면서도
이런 일들을 보면
과연 대한민국에 인권이 존재하는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 사건 이후
감추어졌던 사례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연일 계속
연재되고 있다.

도대체 왜
왕따 사건이 요즘 들어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을까.


이것은 단지
학교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평소
얼마나 폭력무감각증에 깊이
베여있는지를 알 수 있는
도화선에 불과하다.

어느 교수가 지적했듯이
폭력 무감각증이란
힘의 논리 앞에 약자에 대한
공감부족 현상이
학교에서 왕따현상을 통해 표면화
되고 있을 뿐,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그런 논리 앞에 폭력이 자행되고 있음에
입을 다물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예로 학생들이 돈 삣긴 경험을
주변 국가와 함께 조사해보면
한국은 49%, 중국은 38% 그리고
일본은 28%로 나와
우리나라는 평소
일상 속에서 얼마나 폭력무감각증이
심각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가 없다.


도대체 이렇게 왕따현상이
유독 한국에서
그것도 중학교에서 가장
심한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으로
우리는 입시경쟁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왕따현상이 가장 빈번한 곳이
중학교라는 것은
입시 교육이 그때부터
시작되면서
공부에 대한 반감정이 그러한
공격성을 띤 반항아로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개성이나 다양성보다는
성적이나 힘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친구까지 적이 되면서
동료애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학교 다니면서
세상에서 배운 첫 번째 진리는
진정한 친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에 적응하기 어렵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학생들은
세상에 대한
내면의 분노를 어떤 식이든
표출하려고 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하겠는가.

자신이 이미
가정이나 세상 제도권에서
버림받고
왕따 당했다고 생각하기에
복수도 역시나 약한 자를 택하여
왕따 시키는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들이 왕따라는
악의적인 방법을 즐겨 사용하는 데는
‘학생인권조례’가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부인할 수 없다.

이미 그 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전문가들은 수없이
학생을 보호하기보다는 학교폭력에
악용될 소지가 있었다고
경고했었는데,

결국 도처에서
그 기우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 않는가.


많은 교사들은
지금과 같은 체제 아래에선
가해학생들을 제재할 방법도 없고,

교권침해를 막는데 교사는
역부족일 뿐 아니라
억울하게 피해보는
학생들을 도울 방법도 묘연해 지고
있기에 교직에 회의를
느낀다고 말을 모으고 있다.

이 법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동성애까지 인정하는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할 때
앞장 서왔던 ‘전조교’ 내부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이미 난장판이 된 학교는
지나친 학생인권으로
말세적인 모습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아니 어떻게
학생이 교사를 고소, 고발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무슨 법이
가해자 인권만 생각하고
피해자 인권은 무시한단 말인가.

지금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왕따는 단순한 일부
학생들의 일탈된 행위가 아니라
조폭처럼 집단폭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잘못 길들여진
학생들은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무얼 배운단 말인가.

자신이 살기 위해선
약자의 인권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 학생에겐
이웃이란 어떤 존재가
되겠는가.

이것은
공교육의 문제를 넘어
더불어 사는
사회의 기강 문제로
내일에 대한 꿈도 희망까지
말살시키는 해악의 씨가 되고 있음을
명심해야만 한다.





사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학생인권조례’가 학교폭력을
조장하는 데는
각 가정이 일등공신이다.

핵가족시대에
하나 둘씩만 낳다 보니
상대성 원리로
무조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면서 키우다 보니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덕택에

자기밖에 모르면서
어딜 가나 설치고 버릇없다보니
지하철에서 패륜남 패륜녀는
당연한 일상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해 행동을 즐기는
학생들의 뇌를 MRI로 찍어보면
전도엽이 관할하는
공감능력이 월등히 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사람의 표정을 봐도
아무 반응이 없었고
심지어 슬픔과 기쁨의 감정까지
구별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중1.2학년 때만해도
뇌가 말랑말랑해서 외부 자극에 따라
뇌 구조가 커지는데
올바른 감성이나 인성교육
그리고 이웃과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을 가정에서 하지 않고는
우리 미래는 공격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
교사가 스승이길 포기하고
수혜자들이 원하는 내신만 취급하는
기계가 될 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부모와 마찬가지로
교사는 학습만큼 중요한 것이
학생들과 소통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인성교육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개개인의 정신건강에 대한 교육,
약자에 대한 관심
그리고 같이 어울려 사는 법을
듣든 안 듣든 교사로서
가르침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가해자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부여시켜 어떤 경우에서든지 폭력이
용납할 수 없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아니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학교폭력은 근절되어야만 한다.





주여,

법도
원칙도 없이
오직
스스로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시대 속에서
무엇이
옳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할 말을 주옵소서.


고민하고

섬김으로

그들 스스로
분별력을 갖게 하소서.

2012년 1월 13일 (금)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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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허락작가ꁾ이요셉님, 투가리님, 우기자님, 포남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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