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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 인간

유앤미나 2009. 2. 3. 11:41




4차원 인간


남에게 피해(被害)를 주지 않지만
지구인이 아닌 것처럼,
엉뚱하게 말하거나 돌발행동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4차원 인간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3차원으로 이루어졌는데,
거기에 시간(時間) 축을 더한 공간이
4차원의 세계다.

수학이나 과학에서는
1차원을 점,
2차원은 선, 3차원은 입체로 보지만,
4차원은 불분명(不分明)한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정상적인 영역에서는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세상에 적응(適應)하지 못하거나,
특이한 걸 넘어서
지극히 위험한 불분명한 사람들이므로
4차원이라고 부르곤 한다.


황당무계한 자신(自信)만의 세계에
심취해있는 그들은
평범한 3차원 사람들을 두렵게 만든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사람 같으나
망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공격적인 성향과 함께
요강을 밥통으로까지 만드는 무개념적인
삶의 형태는 예측(豫測) 불가능한
X맨과 같이 별스럽다.

우리는 그들을 고상하게 말해서
4차원이지 실상 마음속으론
미친 사람으로 분류(分類)한지 오래다.





요즘 막장드라마가 뜨듯이,
갈수록 이런 4차원 인간(人間)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내 자신도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사이코패스까지는 안 간다 해도,
그들과 유사한 모습들이
많이 있음에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변명(辨明)같지만
이 시대 문화 코드 자체가 4차원적이며,
앞으론 그 차원을 지나
5차원, 6차원적으로 계속 진화되어
간다면 얼마나 더 황당한 일이
일어날까하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해보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친구를
요리해 먹은 요리사가 검거되었고,
멕시코에서는 염산탱크에 사체 300구를
유기한 희대의 살인마가 있듯,

우리나라에서는
군포 연쇄살해 사건을 통해
이질적으로 변질되어가는
이 시대를 향해
경고(警告)하는 것 같아 더 섬뜩하다.





이 시대 4차원적 문화는
첫째로 사람들을 단순(單純)하게
만들면서 단세포적인 괴물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모처럼 연말(年末)에
가족과 함께 노래방엘 갔었다.

나는 우리 두 딸이 부르는
노래에는 분명한 특징(特徵)이 있음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은 웅장하면서도 가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반복성이었다.


박진영 씨는 현대문화의 핵(核)을
간파하고 그에게 소속된
가수들 노래에는
의도적으로 가사를 수없이 반복시켜 왔다.

원더걸스의 ‘텔미’에서는 노래제목을 63번,
'노바디(Nobody)'는 64번,
바나나걸의 '미쳐 미쳐 미쳐'에는
무려 100번이나 나온다.


알고 보니 요즘 뜬다는 노래마다
이렇게 끊임없이 가사가 반복하고 있었다.

'원 모어 타임'이나
'어쩌다' 그리고 '미쳤어' 노래들은
모두 강한 후크를 가진 곡으로
대중에게 미친 영향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이 노래들은 듣기 만해도
머릿속에 그 가사가 맴돌게 하면서
곧바로 음악 판매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제작자들은 많은 돈을 벌어 좋을지 몰라도,
문제는 반복성이 강한 이런 노래는
사람을 더욱 말초적(末梢的)이고
감각적으로 만들어,

어떤 일이든 진득하게 기다릴 줄 모르고
순간적인 감정(感情)에 따라
행동하게 만든다.

된장국 같은 깊은 맛이란
상상할 수도 없고,
그저 단세포(單細胞)적인 사람으로만
만들기 때문이다.


강호순은 범행 동기(動機)에 대해,
성욕이나 돈도 아니고
순간순간 자신을 제어(制御)하지 못한데
있었다고 자백했다.

그의 거실 벽엔
근심은 애욕에서 재앙은 물욕에서,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죄(罪)는 참지 못함에서 생긴다는 장문의
격언이 붙어있었건만,

그는 어찌하여 참지 못하고
영혼(靈魂) 없는 사람처럼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렇게 이 시대 문화는
단순한 사람이 되게 하여
자신을 극복(克復)하지 못하고,
동물적인 본능대로 살다가
이런 황당무계한 일까지 저지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둘째는 4차원적 문화는 사람을
상품화(商品化)하고 있다.

어느 지인(知人)이 말하기를
가수 ‘비’가 어느 소속사와 계약을 할 때,
근육의 모습과 함께 구체적으로
몇cm까지 조건에 적어 넣었다고 한다.

제작자는 영화에서
‘비’를 로버트 모양 자신들이
의도한 최상의 상품(商品)을 만들어 팔려고
그런 세세한 면까지 계약조건에
넣었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은
경제와 건강이다.
그 중에서도 돈에 대한 생각은
아이부터 노인까지 상상(想像)을 초월한다.

돈을 위해서라면
몸만들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종교(宗敎)까지 아니 목숨까지 내 놓을 판이다.

300년 전 영국의 핼리팩스의 말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의심해도 좋다.’

이 땅에는 이런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
두려운 생각을 갖게 한다.





지금 세상은 확실히
돈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돈은 자신의 존재(存在)와 능력이다.

비록 자신은 부족하고 어리석고 미련할지라도,
돈만 있으면 누구도 깔볼 수 없는
능력(能力)자가 된다.

나는 비록 비열하고
사악한 비양심적인 사람일지라도
돈만 있으면 존경(尊敬)받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돈은 최고의 선(善)이요.
신(神)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는가.
외적으론 많은 것을 소유했다 해도,

4무(無)라 말하는
무감동 속에
무책임 속에
무관심 속에
무목적 속에 살면서,

인생의 진정한 목적과 사명도 모른 채
오매불망 물질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에게
인생이 무슨 낙(樂)이 있겠는가.





사람은 결코
물질적(物質的)인 존재가 아니다.

정신이 있고 영혼이 있는
목적적인 존재다.

곧 인생에서는 속도보다는
방향(方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방향이란
그 사람의 사명이요,
그 사람에게 주어진 인생의 목적이다.

인생의 부르심,
인생의 사명,
인생의 비전을 알아야만
물질을 초월하고 자아를 이기고
환경을 극복(克復)하여,

신 앞에 설 수 있는
준비된
영혼(靈魂)의 소유자가 되게 할 수 있다.





셋째는 4차원적 문화는 사람을
이중인격자(二重人格者)로 만들고 있다.

강호순의 이웃 주민들은
그를 예의바르고 착실한 사람으로
기억(記憶)하고 있었다.

고향에서도
개천에서 용(龍)났다고 할 정도로
공부 잘 하고 호감 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완전히 다르게 평가(評價)했다.
‘그거 다 위장(僞裝)입니다.
그 사람은 전부 여자 얘기밖에 없어요.’

성실하고 호감이 가는 이웃과
사람이길 포기한
파렴치(破廉恥)한 강호순의 이중적인 모습은
모든 것이 밝혀지면서
백일하에 드러났다.


다중(多重) 인격이란 한사람이
여러 개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가장 간단한 형태가 이중인격이지만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더
복잡해 질 수 있다.

사람은 태어 날 때
여러 가지 인격을 갖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환경과 자신만의 성품에 따라
여러 인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다중인격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인격들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진정한
인격과 차원(次元)이 결정된다.





보통 1차원은 점처럼 한쪽만 보고
사고하는 자신만 아는 사람을 말하고,

2차원은 점을 연장시켜 선은 만들듯이
나와 너를 알지만 여전히
단편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3차원은 공간적인 개념이듯이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영역까지
이해하는 깊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4차원이란 3차원에
만족하지 않고
더 생각하고 더 탐구하는
초현실적인 영역으로 천재(天才)와
미친 사람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샤를리세는 천재(天才)란
돈키호테의 영혼과 산초판자의 영혼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광기와 이성의 절묘한 조화가
진정한 천재의 자화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끔은 이런 차원이 필요하다.
보통사람과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면 당시에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取扱)받지만,

이들의 발명과 연구 그리고
예술이 인류에 혁혁한 공을 남기지 않았던가.


세상이 담을 수 없기에
세상을 초월했고,
미래를 이끌었던 선구자적인 사람들이다.

지능지수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겐
이 두 가지 영감(靈感)이 공존하고 있다.

문제는 선한 4차원을
개발시켜 세상에 유익을 줄 것인가,
아니면 나쁜 4차원을 진화시켜
세상을 두렵게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여지는 개개인의 과제이지
누구도 강요할 수는 없다.





주여,

저는 지금
몇 차원의 사람입니까.

때론 3차원은커녕
1차원에 머물면서 이웃과
당신을 아프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저는 자신에게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저에게 주신
은사들을 선용(善用)하여,

최소한
나와 너를 넘어
우리와 당신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길 기도했습니다.

그리하여
다가올 세상을
예견(豫見)할 수 있는
교감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009년 2월 2일 월요일에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이 드립니다.드림


사진작가ꁾ해와달사이트(우기자님) 투가리님 이요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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