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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마저 죽으면...

유앤미나 2008. 10. 9. 12:20




당신마저 죽으면...


안재환씨의 자살(自殺)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최진실씨까지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에 온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연예인이라기보다
친구 같고 가족 같은
느낌이 더 들었던 것은 보통사람처럼
굴곡 많은 삶을 살아가면서도
오뚝이처럼 억척스럽게 다시 일어났었는데,

어이없게도 사채설 루머에 빠져
사랑하는 자식들을 놔둔 채,
한 많은 세상을 그렇게 쉽게 끈을 놓았다는
사실 앞에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최근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자살대국답게 하루 30명씩
죽어가고 있는데 그 원인도
이전에는
경제적(經濟的) 원인이 많았는데,

지금은 돈과 명예를
걸머지고 있다는 유명 인사들과
연예인까지 유행처럼
줄을 잇고 있다.

3년 전에 이은주 씨,
작년엔 유니 씨,
그 사건이후 20일 만에
정다빈 씨도 또 목매 자살(自殺)했었다.





이들을 자살로 몰고 간 것은
심한 우울증(憂鬱症)과 악성댓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언제나 대중들의 인기를 업고 살아가는
직업상의 특성 때문인지,
대중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나면
스스로 버려졌다고 생각하고
앞 뒤 가리지 않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엔 더 큰 어려움도 이겨낸 사람이
그 정도 일로 죽느냐고 비난(非難)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화려한 직업이면에
사방이 훤히 보이는 유리성에 살면서
일반인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고 있었기에,

겉모습과는 달리 그런 루머를 이겨낼 만한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枯渴)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로 죽었든
공인의 자살은 사회에 주는 파장이 크다.

그녀가 자살한 이후에 유명인사가 죽으면
따라 죽는다는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 곧 바로
일곱 명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방법으로
목숨을 끊었다.

이제는 ‘자살문화’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로
사회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상태에 빠져
목숨을 끊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자살문화를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먼저 사회적 대책으로
인터넷 실명(實名)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더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다.

인터넷의 가장 큰 부작용은
근거도 없이 시기 질투로
원색적인 언어로 쏟아내는 악플에 있다.

인간의 본능적인 폭력성은
성숙한 인격이 되지못할수록 그 공격성은
더욱 커져 당사자들에게 명예훼손은 물론이요,
심리적 고통을 유발시켜
급기야 자살까지 이어지게 한다.

실제로 최근 4년 동안
사이버 폭력 신고가 15배가량 크게
늘었다는 보고는 이제 누구라도
사이버 테러에서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그녀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이참에 반드시 인터넷 실명제인
일명 ‘최진실법’을 통과(通過) 시켜야만 한다.

원래 인터넷 실명제는
음란이나 스팸 전자메일을
걸러내기 위해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자유로운 인터넷 문화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다시 유보되었는데 이번 일로
그 필요성을 다시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모든 말에는 자신이 책임 져야하듯이,
공적인 표현은 실명(實名)으로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익명(匿名)성을 악용해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풀이를
악플을 통해
분출하기 때문이다.

촛불 시위 때도 그랬지만,
중국 쓰촨성에서 지진이 날 때도 악플은
멈춰지지 않아 결국 중국인들에게
혐한증을 심어주지 않았던가.

심지어 최진실 씨 자살 이후에도
도를 넘는 악플이 줄을 잇자
인터넷 실명제 도입(導入) 여론이
비등했던 것이다.


외국에서는 악플 사례가 거의 없는데,
그 원인은 그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엔 게시판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대신 의견이나 질문사항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운영자에게 이메일을 보냄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게시판이나 리플들은
또 다른 언론이 되고 있기 때문에
실명제를 통해 분명히 걸려내야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익명을 이용하여 별짓을 다하는
사람들로 인해 제 2, 제3의 최진실 씨는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네티즌들도 비판(批判)을 하려면
정당성과 대안이 있는 비판,
사실에 의한 비난을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상생(相生)의 삶이 필요하다.

최진실 씨의 어머니는 경찰에게
평소(平素)에 딸이 늘
'외롭다. 힘들다'라는 말을 해왔고 했다.

모든 사람 마음속에는
깊고 예리한 다양한 상처와
고독(孤獨)이라는 독버섯이 자라고 있다.

우리가 겉보기엔 인기와 명예가 있기에
웬만한 일에선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당차 보이는 어떤 사람일지라도,

생각지 않았던 일로
자신을 지탱(支撑)해 주었던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되어가는 순간에

간절히 자신의 상처와 고독한 영혼을 달래줄
사람을 애타게 찾아보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대신할 수 없기에
어이없이 쓰러지게 된다.


평소에
말이 없는 사람일수록
마음속으론 많은 말을 하며 외로워하고,
말이 많은 사람은
허풍이 심해 친구가 없어 늘 고독케 하고,
평소 큰소리치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더 약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늘 떠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약점(弱點)이 있고,
그것을 감추느라 상대는
또 다른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인생이므로
서로 격려하고 칭찬해야
서로가 산다는 것이 상생(相生)의 원리다.





바울(Paul)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어떤 일에서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謙遜)한마음으로
먼저 자신을 돌아본 후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돌아보라고 권면했다.

그 돌봄이란 경제적 도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 도움이 더 큰 돌봄이라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상처(傷處)받는 것은
말이 원인이 될 때가 대부분 이듯이,
삶의 위로도 진심어린
말 한마디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용기(勇氣)를 주는
많은 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다섯 마디가 있다.

Cheer up! (힘내세요!)
Don't worry! (걱정 마세요!)
Thank you! (고맙습니다!)
I love you! (사랑합니다!)
I am sorry! (미안합니다!)

이것이 생활(生活) 속에서 선플 달기다.

이번 일로 사단법인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는
10월 7일을 선플의 날 선언했다.

사제 간이든
부자간이든 어떤 인간관계든지
서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자는 것이다.

특별히 악플이 집중하는 사안에
선플을 달아주므로,
사이버 괴담을 자제시키자는 캠페인이다.

이렇게 언어를 통해
선플을 통해
상대를 섬길 때 상대가 살고
자신이 사는 길이 된다.





세 번째는 개인의 사명(使命)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최진실 씨는
사채 괴담을 인터넷에 옮겼던
여자와 전화 통화 후 분을 참지 못하고
우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은 그녀의 자살을
‘충동적 자살 잠정 추정’이라고 했듯이,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최진실 씨는
일순 감정이 격(激)해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바람에 좁은 대한민국
땅이 난리가 났던 것이다.

아니 왜 그녀는
7살 먹은 아들과 5살 딸에 관해서는
좀 더 깊이 생각지 못하고,
왜 자신을 억울하게 만든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므로 스스로
감정의 저수지가 터지도록 방치했단 말인가.

남들보다 풍부한 감수성(感受性)이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건만,
이젠 그러한 감성이 세상을 마감하게 했던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세 가지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했다.

먼저 키소(돈주머니)를 통해 인색함을
코소(술잔)를 갖고 절제함을
그리고 카소(분노)를 통해 인내력을 판단했다.

이 중에서 ‘분노’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질(質)이 달라지고 있다.

분노 감정은 불같은 에너지이므로
돈 보다 술보다
더 잘 관리(管理)해야만 인생이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결코 돈과 명예의 유무가 아닌
감정의 절제에 따라 온다는 것은
조금이나마 인생을
살아본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그녀는 인생의
온갖 고난을 다 이겨냈음에도
충동적(衝動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그러한 감정과 자존심 그리고
사람들의 평가와 비할 수 없는
소중한 자식들까지 포기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분노(憤怒)라는 괴물을
잘 처리하기 위해선
화가 날 때 분노의 초점을
상대에 두지 말고 일 자체에 두므로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해야 한다.

다음으론 분노의 원인을 줄여야 한다.
분노의 원인은 대체로
나에게 집착할 때 생겨나므로
항상 상대 입장에서 배려하는 자세로
살아가야만 생각지 않았던
불같은 시험들을 이겨낼 수가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분노의 격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날마다 자신의 사명(使命)를
새롭게 깨달으며
일의 우선순위를 정할 줄 알아야 한다.

사명보다 다른 어떤 것에 빠지지 않도록
날마다 자신을 성찰하고
이웃을 돌아봐야
감정이 아닌 영광(榮光)을 드러내는
삶이 될 것이다.





주여,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生命)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에게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인
생명을 주시려
당신의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우릴 사랑했던 주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所重)한 생명에
위기가 찾아올 때,

생명의 주인 되신
당신께
부르짖는 지혜를 주소서.

하지만
근본적으론
사람들의 인기와 평가보다
우릴 거듭나 산 소망을
갖게 하신 당신의
사명(使命)에 초점을 맞추므로,

감정의 덧에
빠지지 않고 나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상생(相生)의 삶을 살게 하소서!

2008년 10월 16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작가ꁾ 투가리님 이요셉님 우기자님(해와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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