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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

유앤미나 2008. 10. 1. 17:29




잔상(殘像)


인터넷 인구가 3천만이 넘는
IT강국 대한민국이 지금
때 아닌 음란(淫亂)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음란물에 영향 받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코리아는
이상하게도 음란물의 강국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정보(情報)화와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는 자부심 이면에,
이러한 부끄러운 자화상을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다.


청소년들은
‘어디가 끝내준다’,
‘내가 최고의 사진을 갖고 있다’면서
음란물을 과시용으로 여기며
정보를 교환하는 그들에겐 자신들도 모르게
마약(痲藥)이 되어버린 음란물을
하루라도 안 보면 불안해 견디지 못하는
인생의 암초가 되어버렸다.

안타깝게도 이 불은 초등(初等)생까지
이미 번져갔으니 어쩌란 말인가.
대구 모 초등학교에서는
상급생 학생들이 음란물을 보고
그 내용을 모방하여
후배들에게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했다는 것은
음란물의 악영향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를 알게 하는 좋은 사례가 된 격이다.

직장(職場)인에게는
오래 전부터 관행된 일이었다.
야한 동영상에 빠져 새벽까지 자판에서
손을 떼지 못하다가 토끼 눈이 되어
회사에 출근하는 그들로 인해
직장에서도 대책을 세울 정도라고 한다.





음란물에 대한 부작용(副作用)은
이젠 청소년들에게만 극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초등학생과 성인들에게도
그들과 비슷한 정도의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잇따르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되었다.

음란물로 인한 여러 피해들이 많이 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잔상(殘像)에 있다.


사람은 시각적인 어떤 매체를 접했을 때,
반드시 잔상이 남게 된다.

어떤 사람을 만난 후에
다시 그 사람을 만날 때까지 잔상은
그 사람을 대신(代身)한다.

시간이 흘러도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음을
알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곤 한다.
우린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줄 알지만,
중년이 되어서도 거울 속에 나타난
또 다른 자신의 모습 속에서
아쉬움과 그리움이 묻어나오는 것을 보고
인생의 여상(如常)함을 느낀다.


물론 좋은 잔상이라면 그것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에
오히려 생의 좋은 자원(資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대중적인 이미지로 다가가므로
긍정적 잔상이 생겨나도록
그 사람을 언제나
생각나게 하는 중독성을 의도적으로
만들기 위해 이러한
잔상의 법칙을 역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어떤 회사에서는 우뇌 활성화를 위하여
잔상이미지를 사용할 정도로
잔상의 법칙은 어떤 자원과
비할 수 없는
뇌 속의 무한한 자산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성공(成功)과 실패란
물질과 지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잔상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음란물은 명백하게
부정적(否定的)인 잔상만을 만들어준다.

음란물을 접속하면
자신이 보았던 영상의 잔상이
남아 모든 신경세포를 감염(感染)시키듯이,
모든 영역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한다.

마치 구름에 떠 있듯 몽상(夢想) 속에 헤매느라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없어,
학생은 학업을 포기하기에 이르고
직장인은 사직이라는 최악의
경우까지 다다르게 된다.

이러한 잔상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매사에 자신감을 잃게 만들어 급기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抛棄)하게 만든다.


나중에 가서야
그 잔상의 해악을 알고서
나쁜 이미지를 제거하려 나름대로 노력해보지만,

어느 한 순간 유사한 영상이나 그림을
보고선 다시 자극을 받아,
또 다른 음란물 앞에서 클릭하는
모습 앞에서 끝없이 나락(奈落)으로
떨어지는 자아를 보며
인생은 더 깊은 좌절 속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부정적인 잔상은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성 개념의
포로(捕虜)가 되게 한다.

사람을 대할 때,
인격적인 관계로서가 아니라
성의 대상으로만 상대를 쳐다보게 한다.

심지어 어머니까지도 음란(淫亂)물에서
보았던 어떤 여자로 착각하는
자신을 보며 괴로워한다.

어느 학생은
화장하는 누나를 보고서
갑자기 여자(女子)로 느껴졌고 이어서
비디오 내용과 겹쳐져 깜작 놀랐다고 고백했다.

급기야 거리에 다니는
모든 여자들이
더럽고 추한 존재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듯 성(性)을 오직 행위로만
부각시키는 음란물은
부정적인 잔상을 만들어주면서 사람들에게
더럽고 추한 성 개념을 만들어
남녀 모두를 저질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한 성에 관한 잘못된 의식(意識)들은
여기에 한 단계 더 나아가
이제는 행동으로
옮기면서 문제를 더욱 커지게 만든다.





초보 단계를 지나면
음란물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드시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먹이를 찾는 야수처럼 성적대상을
찾아 거리에 나간다.

책임을 지는 사랑이 아닌
욕구만을 분출하는
풋내기 사랑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인생은 더욱 자신감(自信感)을 잃게 한다.

단회적인 이런 충동적인 행동보다
더 두려운 일은
이제는 점점 더 자극적인 내용만 찾으며
다니기에 결혼 이후라도 정상적인
부부관계에서는 불감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음란물은 이렇게 잘못된 성의식을
가져다주고 성충동이라는
덫에 걸리게 만든다.

아울러 정상적(正常的)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일의 능률이 떨어뜨리므로
이것보다 인생에서 큰 암초가 또 있을까.





잘못된 성적 잔상은
더욱 없애기가 어려운데,
이런 부정적인 잔상을 치료(治療)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묵상(黙想)이 필요하다.

성범죄자들은
의외로 흉악한 사람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평소 주변에 잘 알고 지냈던
친척이나 친구, 이웃들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겉모습은
향기 나는 화장품을 바르고
세련된 옷을 입어 깔끔하게 보이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져 미래는커녕
육체 하나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들도 결코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다만 잘못된 습관으로 생겨난
시궁창 같은 잔상이
오늘의 그런 사람을 만들었던 것이다.

습관(習慣)이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원이던가.
문제는 좋은 습관을 형성해야 하는데,
나쁜 습관에 길들이면
갈수록 더 어려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단순히 나쁜 습관을 버리겠다는
결심만으론 부족하기에 새로운 습관,
더 창조적이고 거룩한 습관을
몸에 익혀야만 음란물 같은
나쁜 습관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나쁜 잔상을 이겨내려면
좋은 잔상이 많이 생기도록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의 하나가 묵상(黙想)이다.

현대인의 약점은
여러 경로(經路)를 통해 나쁜 잔상은
자연스럽게 쌓여가건만,
좋은 잔상의 재료가 될 묵상의
시간은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묵상이 없기에
분명한 인생의 기준(基準)도 없고,
묵상의 없기에
유혹을 이겨낼 능력이 도무지 없다.

우리에게 필요(必要)한 것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이전에 걸어 다니던 길에서 유혹을 이겨낼
새로운 힘(power)이다.

그것은 온전히 묵상의 능력(能力)이다.
이제는 잔상 대신 묵상이
필요한 시대다.





둘째는 활발한 대인(對人)관계가 필요하다.

본래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므로
항상 무언가를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의존도가 지나치면 중독이라는
함정에 빠지면서
가치관(價値觀)에 혼란이 가져다주고
대인관계를 기피하게 된다.

음란물 중독자들은
가상(假想)세계에 몰두하느라,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특별히 부부사이가 원만치 못할 때,
낮은 자존감을 음란물을 통해
충족(充足)하면서부터
대인관계는 더욱 무능한 사람이 된다.


우리나라처럼 결혼 전에
궁합(宮合)보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궁합보고 결혼했는데
왜 이혼율은 높은가.

이혼한 사람은
결코 궁합이 나빠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상대를
오로지 이질적인 존재로만
생각하다가 하나 됨이 깨진 것이다.





로만 라이트의
‘너와 나는 다를 뿐이야!’라는 책에선
사람의 관계는 일반적 만남에서
친숙한 사이로 거기에서
밀접한 사이로 발전한 후에 비로써
성숙(成熟)한 관계로 바뀐다고 했다.

이런 관계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순수함에서 신실함이 있어야 하고,

비소유적인 투명성에서
이타적인 태도와 의지적인 행위가 요구되고,

공감(共感)하는 사이에서
이젠 배려와 존경 그리고 사랑을
베풀어야 일반적 사이에서
친밀하고 성숙한 관계로 변한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말처럼 ‘사랑은 기술’이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배워야 한다.
다른 기술처럼 이론과 실천이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받는 문제만 생각하지
상대를 사랑하는 능력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그저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만 신경 쓸 뿐,
정작 상대를 대해선
소홀하기에 평행선 관계로 지내다가
갈라서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좋은 관계란 타고난 성품(性品)으론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서로 간에 노력해야만
모든 관계에서 자유를 누리고
행복한 인생이 될 것이다.





셋째는 균형(均衡) 잡힌 인생이 필요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飮食)만 먹는다든지
몸에 좋다는 음식만 먹어도
영양불균형에 걸리고,
짠 음식이 몸에 나쁘다고
또 소금을 멀리해도 병이 생긴다.

음식도 이렇게 골고루 섭취하지 않으면
건강이 깨지고
성격도 원만하지 못 하듯이,
삶의 방식에서도 외골수는 반드시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를 만들어만 간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세상만사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게 된다.
지나치는 일은 반드시 본인에게 패망을
안겨주게 된다.


사람은 한 가지 일에 몰입하면
세상 소리에 귀가 막히고
이웃을 볼 수 있는 눈이 멀어가고
마음도 굳어져 도무지 여유가 없게 된다.

하물며 음란물에 빠져있는 사람이
자아가 보이며
가족이 보이며
미래가 보이겠는가.

음란물 외에는
세상에는 그 어떤 것도 가치 있는 일이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세상엔 음란물 외에도
가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러한 우상에서
벗어나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결단에 있지 방법이 아니다.

운동이나 등산, 여행 등
다른 분야의 취미생활로 조금만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면
음란물보다 더한 그 무엇에서도
얼마든지 빠져 나올 수 있다.

먼저 자신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정상적인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라

내가 조금만 낮추고
도움을 요청하면 세상은 세상보다
날 못 도와 안달하는 사람이 무지 많다.

아무리 세상이 악(惡)해도
아직까진
살만한 곳이다.





주여,

제 약점이 무엇인지
제 우상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제 자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겉으론
모든 것을 다 지킨 것처럼
여기나 실상
그것과 비할 수 없는
더 중요한
거룩을 헌 신짝처럼
버려온
이 연약한 종을

당신은 아십니다.

아직까지
구습을 쫓게 하는
잔상이 제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악한 잔상을 이겨낼
지혜를 주소서.

2008년 9월 30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작가ꁾ 이요셉님 투가리님 박종현님(크로스맵) 우기자님(해와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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