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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과 성전

유앤미나 2008. 4. 3. 11:21
황금(黃金)과 성전


예루살렘 시에서 가장
독특(獨特)한 건물은 황금성전이다.
이전에 그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자리인데
지금은 이슬람의 성전으로 바뀐 곳이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에는 3개의 성전이 있었다.
최초의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했으나
바벨론군대가 파괴시켰고,
포로에서 귀환 후 스룹바벨 지도로
다시 세워졌으나 로마에 의해 또 훼파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헤롯이 지었는데,
이것마저 바이블 예언대로 기원후 70년경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로마군대에 의해 다 파괴되어 무너져 내려 버렸다.

이스라엘은 그 후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도 이전의 성전(聖殿)을 가지지
못하고, 솔로몬 당시 성벽이 남아있는 통곡의 벽에서
성전회복을 위해 눈물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분명 그 곳은 이스라엘 땅이요,
조상들이 대대로 예배를 드려왔던 곳이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원수(怨讐)처럼 여기는
이슬람교도들의 성전이 세워졌으니,

마음 같아선 한 순간에 다 밀어버리고 자기들의
성전을 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전쟁이 날까봐 건드리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 있기만 한다.

실제로 몇 년 전에 이스라엘 총리가
그 곳에 한 번 들어갔다가
테러가 일어나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에 돌아 온 정통 유대인들 속에서
성전 재건(再建) 운동은 비밀리에 전개되고 있다.

과격한 시온주의자들은 당장이라도
실행에 옮기자고 주장 하지만,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슬람과의 종교적 전쟁(戰爭)이 아니라,

지금 그 자리는 이전에 솔로몬 성전이 실제로
세워졌던 땅이기에 지성소는 대제사장
외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는
율법적인 언약이 두려워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성전(聖殿)이 무엇이 길래,
이스라엘은 이토록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면서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을까.

그들에게 성전이란
그들 자신의 정체(正體)성이다.

예루살렘을 다윗의 성, 시온 성,
거룩한 성이라 부르는 이유는 외적으로는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치한 땅이지만,
그 아들이 성전을 세우기 훨씬 전에 그들 조상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쳤던 곳이요,
예수 이후에는 교회의 전신이었기에
그렇게 거룩하게 부르는 것이다.

또한 본질상 그 곳은
다가올 그 나라를 예표(豫表) 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그 자리에 오말사원이 세워지면서,
성전(聖殿)은 모든 종교의
성전(聖戰)의 원인제공이 되고 있다.

무슬림들이 이 모스크 앞에서
메카를 바라보며 날마다 기도하고,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에서 그 모스크가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수많은 개신교인들은
당시 예수님을 생각하며 울며 기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平和)의 뜻을 지닌
예루살렘은 이렇게 이름과는 반대로
가장 치열한 싸움터가 되고 있다.





이토록 중요한 성전을 이스라엘은
바보같이 왜 빼앗겼단 말인가.

우리는 그 원인을
성전을 정화(淨化)하셨던
주님의 태도(態度)에서 찾아야 한다.

적어도 이스라엘에게 성전이란
삶의 모든 것과 함께
신의 현존과 선민과 구원을 상징하는
언약(言約)궤가 들어있는 가장 소중한 장소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사장과 장사꾼들이
결탁(結託)되면서
가장 추한 곳이 되었기에,

이 사건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성전 정화(淨化)를 공생애 서두와
말기에 둠으로써,
의도적으로 강조했던 것이다.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에 쳐 들어왔을 때,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黃金)이
있었는지 거두어들인 그 보석을
일시에 방출하자
이집트와 소아시아 지역 금값이
폭락했을 정도라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결국 성전은
황금으로 가득 찬 집이 되면서,
첫 번째 정화(淨化) 대상이 될 정도로
부패해지자 한 순간에
이방인에 의해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외형적으로 볼 때 아무리 화려하든
초라하든 성전의 일차적인
기능은 기도(祈禱)하는데 있다.

곧 신과
인간의 보이는 않는 관계가
최우선이건만 이 사이에 다른 것이
개입되면 성전은 강도의 소굴로 바뀌게 된다.

이스라엘은 어이없게도
기도보다 황금에 더 마음이 빼앗기더니,

목숨보다 귀한 성전을 잃게 되면서
하루도 멈추지 않고 전쟁 속에서
진정한 평화(平和)의
날을 간구하고 있게 된 것이다.





나에게 성전(聖殿)이란 무엇인가.
물론 종교적으로 보면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건물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참된 성전이란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 자신의 몸(body)이라고
말하는 것은 깨끗한 육체가 온전한 정신과
영혼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영종도가 떨고 있다고 한다.
공항 신도시 내 안마시술소
세 곳을 덮친 결과 이천 명에 이르는
성매매 혐의자 명단이 확보되었다는 뉴스에
관계자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내적(內的)인 성전이라 할 수 있는
내 몸은 더럽혀져 있는데,
외적(外的)인 성전에만 신경 쓰는 사람에게는
돼지에게 진주목걸이를 걸어준 일처럼
의미도 평안도 있을 수 없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타락(墮落)도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육체적인 탐닉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혼까지
옭아오면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육체는 약하고 하찮아
자주 넘어짐에도
그의 거처(居處)와 나라로 삼으셨으니,
다른 어떤 것 보다 먼저 육체를
이겨야만 한다.

육체를 이겨야
물질을 이길 수 있고,
그래야 내 이웃과의 관계가 바를 수가 있고,

마지막 그 날에 불에도 타지 않을
금과 같은 영혼이 되어 그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신과 만나는 장소가 성전이다.

수학자요 철학자였던 파스칼이 임종 시,
심장이 닿는 곳에 실로 꿰맨 메모지를 발견했다.
거기엔 그가 신을 체험했던 상황을
상세히 기록해놓았다.

‘1654년 11월 23일 월요일 저녁 아홉시 반에,
나는 확실하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만났다.
이젠 그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은
망각(忘却)하기로 작정했다...‘


누구나 파스칼처럼 그를 만나고,
그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는 현장이 바로 성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기도하는 그 장소(場所)가
이미 거룩한 성전인 이 된 것이다.

우리가 왜 기도를 해야 하는가.
성전의 변질은 인간이
가장 탐하는 쉬운 황금에서 시작되었다.

종교 종류를 떠나서,
누구든지 인생의 본질에서 벗어나
그 무언가에 중독되고 집착(執着)할 때부터,

거짓이 진리의 자리를 잡게 되면서
거룩한 성전은 남에게
다 빼앗긴다는 사실은 황금보다
기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교훈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이블에서도,
지팡이 같은 갈대를 갖고
성전과 그 안에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尺量)한다고 했다.

그것은 성전의 크기와 넓이를
잰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의 척도(尺度)를 잰다는 의미다.

생(生)을 다한 후,
절대자 앞에 설 때 그는
결코 세상 기준처럼 부(富)와
권세를 갖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각 자에게 준 은사와 달란트를
호흡(呼吸)하는 동안,
얼마나 진실하고 성실하게 감당했는가.
그것이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다.





주여,

성전은
‘몸’이라는 말씀이,

오늘따라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합니다.

황금,
명예,
쾌락.
...

잃어버린 거룩함을
다시 회복(回復)하게 하소서.

당신이 왜
새벽 미명부터 나아가,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하게
통곡하며 기도하셨는지,

이제 그 의미를
조금씩 알 듯 합니다.

성화는 오직
기도(祈禱)로 이루어짐을 알고,
본질보다 앞 선 것들을
겸손히 내려놓고,

내적인 관계의
성스런 성전이 세워지게 하소서.

2007년 7월 15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성지순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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