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언어(言語)
어느 날 딸은 학교에서 상을 받자
너무 기뻐 엄마에게 다음과 같이 문자를 보냈다.
‘엄마ㅋㅋ나오늘상받았어ㅋㅋㅋ’
하지만 엄마에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딸이 집에 들어가자 엄마가 웃으면서 물었다.
“근데 미영아 ㅋㅋ가 뭐야?”
“아! 분위기 전환할 때 쓰는 거야”
물론 아직 문자를 잘 못 쓰는 엄마라
이해는 되었지만 상(賞)을
받았음에도 아무 답장이 없는 엄마가
미워 대충 대답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몇 일 뒤 정말로 큰 일이 터졌다.
수업 중 엄마에게 문자가 왔는데,
딸은 거의 기절할 뻔했다.
‘미영아! 할아버지 돌아가셨다ㅋㅋㅋ’
요즘에는 젊은 부모들조차도
자녀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세대 차이는 더 커져만 간다.
디지털 시대에 인터넷 언어는
젊은 사람들의 개성적 특징에 부합하여,
직관적이면서 간결하고 또
유머러스하면서도 통속적(通俗的)인
특성을 갖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그 형태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보고 있다.
먼저 ‘방가’(반가워), ‘겜’(게임), ‘짱나’(짜증난다)
등과 같이 말을 줄이는 스타일이 있고,
‘칭구’(친구), ‘마자’(맞아), ‘추카’(축하) 등과 같이
소리대로 적거나, 된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껌이냐?’(무시하냐?), ‘담탱’(담임선생님)와
같은 은어를 사용하는 용어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용어들은 형태를 보고서라도
대충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겠지만,
한글과 외국어, 각종기호까지 함께 쓰는
외계(外界)어는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또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주장은 단순(單純)하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인터넷 언어도
시대의 산물이므로 문법과 어법에
매일 필요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웃지 못 할 실화(實話)가 하나있다.
어떤 과외교사가 학생에게 문자를
맞춤법대로 보내자 학생은 엄마에게
선생님이 자기에게 감정이 있는 것 같다면서
교사를 바꿔달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로,
의미 전달 방식이 이전과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어찌되었든 어떤 명분을 갖고 사용하든
이런 식의 비정상적인 언어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후유증(後遺症)이
있음을 알고 사용해야 한다.
첫째로 가치관(價値觀)에 관한 문제다.
사람의 말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세상은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배의 키처럼 자신이
말한 대로 인생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언어(言語)를 통해
감성을 키우고 가치관을 형성하듯이,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존재를 확인 시키고
삶을 창조해 가기에 평상시에 사용하는 말을 통하여
그 사람의 가치관을 엿볼 수가 있다.
또한 언어란 한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되기에,
일제 때 민족말살 정책에서 그들은
우리 언어를 없애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先祖)들은 언어에는
민족의 생사가 달려 있음을 알고
목숨 걸고 지켰던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우리말이 최근
인터넷 언어로 인해 사회적 약속(約束)인
규범을 무시하고 또 다른 언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권리와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에 따른 의무는 더 중요한 것은,
의무를 무시한 채 권리만 주장한다면
그 사회는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무질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직 말도 배우기 전,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아이들이
어법과 언어규범을 무시한 인터넷 언어를
먼저 알고 사용한다면 분명 가치관에
혼란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은 누구나 삶이 혼란스러울 때
먼저 언어가 타락(墮落)된다.
의심과 시기심이 배여 있는 말,
거짓말과 독설을 자주 사용한다면 분명
그 사람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언어(言語)란
각 개인과 민족의 가치관이 담겨있는
귀중한 도구로 쓰여 지고 있기에,
근거 없는 주장이나 어느 한 때의 유행에 빠져
가치 없이 사용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는 것은 그 나라 언어는
개인과 민족의 혼(魂)이
담겨있기에 언어파괴는 결국
자멸(自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다른 어떤 것보다
가장 소중한 자산인 우리말이
바르게 사용되어 지도록
관심과 애착(愛着)을 가져야만 한다.
둘째는 인성(人性)에 관한 문제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허울 좋은 명예는
인성(人性)에 큰 피해를 주었다.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대화(對話) 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무시되고,
또 자기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들을 사용하므로
언어 자체가 계속 위협당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욕설이나 비속어나
인신공격은 예사로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익명성 제도를 악용하여
인격적 책임이란 안중에도 없이 천박한
말들이 오가며 인간성(人間性)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 불똥은 이미 초등생에게 떨어졌다.
욕이 안 들어가면 대화가 안 될 정도가 되었고,
욕하는 연령도 갈수록 낮아져 1, 2학년
까지도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의 입에서
상상 할 수 없었던 욕이나 비속어를 들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 당황해 하지만,
그들은 오래 전부터
인터넷 소설과 메신저를 통해
욕을 배워 일상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 자신도 모르게 은연중에 배우게 되는
잠재적(潛在的) 교육과정은
말할 필요도 없이 역기능이 크다는 점이다.
곧 정상적인 감성에서 벗어나
비상식적인 환경에 노출되면서 그들의
정서(情緖)는 메마를 대로 메말라
기다릴 줄도 모르고,
상대에 대한 배려(配慮)란 이미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기에 그들의 정서와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 가장
먼저 언어 습관(習慣)부터 고쳐야 한다.
우선 명령에서 존중의 말로 바꿔야 한다.
자녀가 분명하게 표현하기 까지
기다리고 수용해 주어야 한다.
자녀를 리더로 만들고 싶으면
부모가 존댓말을 사용하라고 권할 정도로
아름다운 언어사용은 인성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되새기며 먼저 부모가 본을 보여야 한다.
셋째는 세대 간의 의사소통(意思疏通)이다.
각국마다 요즘 청소년들의 말을
어른들 눈높이에 맞춰주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상플러스’를 시작으로
'7옥타브', '육감대결' 등 잇달아
세대 간 소통에 대해 조명하는 프로가 늘고 있다.
인터넷과 핸드폰이 보편화(普遍化) 되면서
생활 전반에 격변을 가져왔지만,
가장 보편적인 특징은
시간이 자꾸만 단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히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전달하느라 말이 짧아지면서 줄임말이 생기고,
단어에 감정까지 넣다보니 각종 부호를
사용하는데 그 의미를 기성세대들이 알 리가 없다.
예를 들어 인터넷 용어로
손자가 도토리 없다고 짜증을 내자,
할머니는 시장에 가서 진짜로 도토리를 사
왔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이전에는 어른이 하는 말을
아랫사람이 알아듣지 못해 혼났는데,
요즘에는 어찌된 일인지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해 하는 세상이 되었다.
세대 간의 단절은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산물이라 하지만,
같은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의사소통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음에 착안하여
그런 류의 방송이 늘어나고
또한 세대 공감(共感)은 요즘 대중문화의
중요한 코드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세대 차이에서 언어란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불과하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삶의 배제(排除)에 있다.
요즘 자녀들은 부모의 애환이 담겨있는
삶의 현장을 알지 못하고 어렴풋이
책과 미디어를 통해 알아가면서
부모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훈계와 잔소리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진솔(眞率)하게 자신이 겪었던 삶을
이야기 할 때 자녀들은 공감하면서
현재와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하게 된다.
어차피 세상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서로 다르기에 사랑이 필요하고 또
내가 존재할 이유가 되는 법이다.
그 차이가 공존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 진다.
주여,
갈수록 대화가 실종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 자녀와
대화하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게 하소서.
물론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말 속에 감정(感情)은 무엇인지
또 의미(意味)는 무엇인가를
알며 대화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늘 부모와 교감하므로
생명의 씨를 심게 하소서.
2007년 7월 1일 강릉에서 7월을 시작하여 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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