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전(挑戰)
5일 IOC 과테말라 총회에서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 대신
‘소치’가 호명되는 순간 온 나라는 말을 잃었다.
출근길의 시민이나 전국의 집집마다
국상(國喪)을 당한 듯
탄식과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오면서,
감동이 아닌 좌절과 통한(痛恨)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300만 강원도민은 이전에 호남(湖南)처럼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낙후를 면치 못한 채 홀대를 받아왔기에,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지난 8년간의
도전은 모든 명분을 잠재우고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꿈이었건만,
소치 결정으로 그 꿈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평창은 분명 현지실사조사와
프레젠테이션에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았는데
왜 유치가 실패로 돌아갔단 말인가.
그 원인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첫째는 정치(政治)와 자금력이다.
러시아 소치는 가장 늦게 뛰어들었지만,
그들에겐 권력과 돈이 있었다.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푸틴은 분명
유럽지역 가스공급 자원을 통해
유럽 위원들에게 승부수를 띄우는 한편
저돌적인 로비를 벌렸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둘째는 자국이익(自國利益) 논리에 있다.
평창은 나름대로 아시아를 기반으로
아프리카와 중남미를 다졌지만,
일본과 중국도 다음에 유치를 계획하고 있고,
러시아의 아프리카와 중남미에 대한 막대한 지원 앞에
표심 잡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셋째는 대륙별 순환(循環)개최 관행이다.
우리는 이미 인천의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대구의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들을 잇따라 유치에
성공한 것이 동계올림픽에는 마이너스로
작용(作用)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러시아는 겨울 올림픽의 강국임에도
올림픽은 한 번도 개최하지 못했다고 호소하였다.
어찌되었든 이런 저런 원인(原因)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지난 8년의 도전이 헛되지 않았음은,
그 과정에서 세계만방에 강원도의
아름다움과 우리 고유문화를 보여주었고,
두 번의 실패를 통해 우리의 약점을
알았기에 다음 도전에 큰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평창의 꿈은 연기(延期)되었을 뿐이다.
좌절은 또 다른 희망이다.
철저하게 실패를 극복(克復)할 대안을 찾으면
절망도 더 큰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극복 대안은 첫 번째로 적극적인 외교(外交)다.
결국 평창은 국제 스포츠 외교무대의
냉정한 현실과 우리 외교의 한계를 본 것이다.
도지사는 수차례 세계를 돌며 해외홍보에 주력했고,
모든 도민들도 8년 동안 최선을 다 하므로
최고라는 객관적 점수를 얻었지만,
강대국이 벌리는 외교전에서는 쓴 잔을 보았다.
평창과 소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도 같다.
지방자치의 활동과 국가적 지원과의
경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누굴 원망(怨望)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썩어도 준치란 말처럼 러시아는
가난해도 기름과 가스가 있기에 우리와
비할 수 없는 외교(外交)를 행사할 수 있었다.
그것도 부족한지 우리는 아직도
중국과 일본, 다른 아시아국과도 동질감이
별로 없는데 어찌 세계(世界) 속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원인을 우리는
한국문화 코드에서 찾아야만 한다.
평창좌절엔 한국문화의 코드가 숨어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음은,
대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독립경영에
익숙했던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유별나게
협력과 연대를 죄악시 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정치에선 원수까지도
내편으로 삼아야 할 판에,
우리는 가까운 이웃까지 적으로 생각하니
유럽의 표심을 얻겠다는 꿈은
다부지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노대통령이 과테말라에 가 있을 때,
푸틴은 한가롭게 부시와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이전에 적(敵)이었던 그들이
왜 그런 여유를 부리고 있었을까.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부시의 마음을 알았다.
단순히 돈과 정치력에 밀렸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냉정하게 마음을 다듬고 도전해야 한다.
표를 쥔 IOC 위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맥과
로비력의 위력은 다시 내일을 기약해야 할
명백한 우리의 과제(課題)다.
다음으로는 더 적극적인 자세(姿勢)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기구의 독립적인 특성상
앞선 대구와 인천에서의 세계권 대회 유치가
평창 실패(失敗)의 원인이라는 일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2차 투표에서 소치에게 역전을 당한 요인은
아시아와 남미 등 전통적인 우호표들이
이탈(離脫)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높은 점수를 받고
감동을 주었다 해도 IOC 위원 개개인에게는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의
정신만큼이나 먼 이야기밖에 안 된다.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자.
IOC위원들에게 올림픽이 어디서
개최되든지 사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들은 정치인처럼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오히려 우리 입장에서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IOC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냉철하게
분석한 후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언론에선 평창은 '클린 유치전'을
표방하며 차분하게 진행시켜 왔다하지만,
러시아는 대외명분 다 무시하고
처음부터 적극적인 자세로 나갔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들은 우리보다 5배나 많은 유치단이
과테말라까지 날아왔고 그리고 겨울 스포츠 강국답게
스타들과 아이스링크 설치 등을 통해
후한 점수를 받았음을 모든 것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에
우리도 2002년 월드컵 유치 때에는
그들 이상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모 기업의 모든 해외 지사는
축구협회 요원처럼 2-3년 동안 꾸준하게
주재국 나라에서 축구협회장에 로비를 벌였었다.
나중에야 밝혀진 사실이었지만,
관계자들의 무슨 기념일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식들 유학알선까지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통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이 꼭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자세로
대처 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일까.
그럼에도 평창의 내일(來日)은 외롭지가 않다.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함께
기업(企業)들의 지원과
조직위의 열성적 활동은 분명
내일을 준비할 평창에게 큰 재산이므로
평창의 꿈은 언젠가는 활짝 필 것으로 믿는다.
끝으로 더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
이번 평창의 실패가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렇게 말하는
배경에는 다음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내부(內部)원인이다.
그동안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는 293개를
한국은 31개 메달을 획득했다.
그만큼 우리는 그들에 비해
겨울올림픽 기반(基盤)이 너무 취약하다.
소치는 이런 평창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만약에 우리가 겨울스포츠 강국이었다면
결과는 또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에,
다음 도전까지 어린이부터 구슬땀을 흘러
쇼트트랙만이 아니라 동계스포츠의
꽃인 스키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선수들을
많이 배출시키는 기간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강원도에서 가장 우려하는 점은
유치실패로 개발이나 지원,
SOC사업 등이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균형발전 차원에서도 계속 추진하며
아울러 국민들의 의식 향상과 함께
실제적인 겨울스포츠의
저변확대가 차근차근 이루어 져야 한다.
둘째는 대회 후 시설(施設)활용의 문제다.
우리는 이미 월드컵을 통해서 경험했다.
월드컵 유치를 통해 재미도 봤지만,
시설들은 지금 적자덩어리로 알려져 있기에
동계올림픽도 시설활용에 대해
대회전부터 철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어 중부지역까지
아열대 기후로 변해 가므로 2,30년 뒤에는
용평 외에는 스키 탈 곳이 없어진다는데
결국 스키장 외에 다른 시설들은
거의 유휴시설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에
10, 20년을 대다보고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셋째는 환경(環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도시에 지은 월드컵 시설은 그나마
적절한 사용도에 따라
환경파괴를 최소화 할 수 있지만,
겨울스포츠 시설들은 상황이 엄청 다르다.
동계올림픽이 유치되면 우리나라 마지막
허파와 같은 천혜의 강원도 땅은
온통 공사장이 될 판이다.
그러므로 ‘2018’도전에 대해,
경험과 인프라 토대로
꿈을 이루어 한다는 찬성파와
도정 에너지가 한 곳으로 집중하므로
오히려 더 큰 손실이라는 반대파가 생겨나고 있다.
내 자신도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올림픽 개최는 많은 이득도 주지만
사실 과장된 면이 많다는 것은
찰스부르크 주민 40%가
반대한 것 만 봐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천혜(天惠)의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길은
외적인 이익과 견줄 수 없는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값진 보화이기 때문이다.
주여,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당신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해 봅니다.
우리 모두가 오매불망(寤寐不忘),
'YES! 평창!!'의 함성을
기다리듯이,
그 날에,
'YES! 피러한!!'
이 준엄한 음성이 들려지도록,
제 취약(脆弱)점을 알고
더 적극적으로
그 날을 대비하게 하소서.
2007년 7월 8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평창유치 건으로 성지순례 4번째 글은 다음 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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