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과 가이사랴(Caesarea)
이스라엘을 떠나는 날 가이드는
헤롯 대왕의 무덤을 고고학 팀이 발견했다는
속보(速報)를 우리에게 먼저 알려주었다.
나는 헤롯만큼 엽기적인 지도자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평소 많이 했었다.
그는 왕조를 배반하고 로마의 앞잡이가 되면서
가장 잔인(殘忍)한 독재자가 되었다.
정권을 위해 유대사람이었던 처자식까지 죽이고,
예수 탄생 때는 후에 자신의 정적이 될까봐
아이들까지 죽였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건축(建築)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었다.
역사만큼 상처 깊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再建)할 뿐 아니라,
마사다는 왕권을 위해 더욱 요새화 했고,
헬라의 신전(神殿)들은 셀 수없이 많이 지었다.
그 많은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혁혁한 공은 역시 모든 악조건
속에 있었던 가이사랴(Caesarea)를 가장 아름다운
항구(港口)도시로 만든 일이었다.
사람들이 가이사랴 항구를 보고
외적인 미(美)에 놀라고,
건축 과정들을 들은 후에 또 놀란다.
전문가들조차 파도가 심한 이 곳에
돌로 바다를 메워 인공항을 만들고 그 위에
성벽과 여러 망대를 건설했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 신(新) 도시 텔아비브를 지나
헤롯의 역작인 가이사랴 항구에 도착하여
지중해 바다를 바라볼 때
나는 모든 피로가 일순간에 씻겨 나간 듯,
순간 황홀하기까지 했다.
예수 탄생 당시 로마 황제는 헤롯왕에게
불모지 같은 이 지역을 하사(下賜)하자,
그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공법으로 10여년 만에 만든 후,
로마황제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Caesarea)’라 명명하자,
황제는 그곳을 유대 지방의 행정과
정치 중심지로 사용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은
가이사랴 안에는 로마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최첨단 시설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가이사랴에는 당시 아고라라는 시장(市場)과
공중목욕탕, 원형경기장과 원형극장까지
당대 최고의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들이 즐비했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은
5천 명 이상 앉을 수 있도록 만든
원형 야외극장이었다.
물론 이 극장은 헤롯이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로마사람들은 어딜 가나 가장 먼저
야외극장(野外劇場)을 만들곤 했었다.
요르단 페트라에서도 순전히
돌로 깎아 만든 야외극장은 극장이 아니라
무슨 예술작품을 무더기로 산 속에
옮겨놓은 듯 정교하게 깎아놓은 것을 보고서
새삼 로마의 국력이 실감났었다.
특별히 가이사랴 야외극장은 무대 중앙으로
나가 말을 하면 구석구석 모든 좌석까지
들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에,
우리 팀에서도 즉석으로 중창을 했는데
다른 순례자(巡禮者)로부터
금방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던 것이다.
이렇듯 가이사랴에 있는 많은 시설물들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도 대단했지만,
그 중에서도 로마식 수로(水路)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헤롯은 사막과 같은 마사다에서도
지하수로(地下水路)를 만들었고,
황량한 가이사랴에서도
멀리 갈멜산 줄기부터 도수교를 만들어
물을 끌어와 사람 사는 도시로 만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기름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듯이, 모든 것이
다 구비된 도시라도
물이 없으면 공동묘지와 다를 바가 없다.
비행기(飛行機) 안에서
코에 호흡이 있어야 사람이지,
호흡이 멈추는 그 순간 사람은 화물로 전락된다.
이렇듯 물은 우주(宇宙)가 되고 있다.
사람과 짐승, 자연(自然)
그리고 일(work)속에서 물이란
하루만 없어도 살 수 없는 생명 자체가
되고 있기에 사람들은 옛날부터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물이란 이렇게 삶의 모든 근원이 되고 있기에,
일상 속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지
않아도 다 알고 있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이러한 물리적인 필요성보다는
더 밀접한 삶의 진리(眞理)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먼저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진리다.
뭐가 막혀있어도 따지지 않고
밑으로 흘러가다보면
사람들은 물처럼 평온함을 느낀다.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물은
특별(特別)한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흘러가는 동안에
떨어지고 부딪치고 깨지면서
원래 자신의 모습을 잃게 되지만 그 사이에
더럽게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정화(淨化)시켜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흐르는 물은
내려가면서 필요(必要)에 따라
생명을 공급해 주면서,
냇물이 강이 되고 강은 바다가 되고
바다는 세상이 되므로,
물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물(水)은 물이요, 산(山)은 산이다’
라는 어떤 분의 격언이
요즘 들어 더 생각나는 것은,
각박한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은 많지만 도무지
그런 물 같은 사람이 없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헤롯은 안타깝게도 가장 아름다운 항구를
건축하여 사람들에겐 오아시스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바이블에 나오는 많은 사건의
주 무대가 되었던 역사 깊은 곳의
개척자였건만 어찌된 일인지
정작 가기 자신만은 불충한 사람이 되었다.
곧 헤롯은 다른 어떤 왕보다
자의든 타의든 아니면 섭리든 간에
신과 교제할 많은 기회(機會)가 있었음에도,
만남은커녕 오히려 대적했고 핍박자가
됨으로 가장 불행한 왕이었다는
것은 가이사랴가 발굴되면서
온 천하에 공개(公開)되었던 것이다.
고고학자들이 가이사랴를 발굴할 때
놀랄 만한 유물과 유적을 많이 발견했지만,
그 중 돌에 새겨진 특별한 기념비가 하나있었다.
비(碑)에는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이것은 예수를 재판했던 로마 총독
빌라도가 이 곳 가이사랴에
주재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니었겠는가.
저주도 대물림된단 말인가.
아버지 헤롯은 피해망상증 환자처럼
유아들을 잔인하게 죽였고,
헤롯의 아들은 세례요한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조롱했으며,
그의 손자 헤롯은 야고보를 죽였다.
그리고 헤롯의 증손자
아그립바 2세는 14년 후에 바울을 심문했다.
모든 사람에겐 기회(機會)가 있다.
그렇다고 그 기회를 다 잡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불공평한 삶이지만
살아가면서 역전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헤롯과 같이 많은 호조건(好條件) 속에서도
기회를 원수로 바꾸는 사람도 있다.
헤롯은 뛰어난 외교관이었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로마가 원하는 일이란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했었지만,
정작 신(神)이 원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만든 가이사랴는
지중해안에서 가장 번성하던 도시요,
역사적으로 수많은 일들과 함께
기독교적으로도 유서 깊은
곳이었지만,
헤롯은 이 모든 기회들을
자신을 위한 영광만을 위해 사용했지,
정작 본질적인 인생의 주인 앞에서는 포악한
영웅의 무상함 외에는 보여준 것이 없었다.
사람은 남이 알아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 절대자 앞에 가야하므로 항상
세 가지를 염두하며 살아야만
성공 속에서도 실패하지 않는 인생이 될 수 있다.
먼저 영혼(靈魂)을 생각해야 한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영혼은 육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육체란 영혼의 옷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죽음(死)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싫어하지만,
예고 없이 필연적으로 다가오므로
항상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절대자(絶對者)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그 분 앞에 서는 일도 피할 수가 없다.
주여,
헤롯은 뛰어난 기회주의자였으며,
스스로 산성과 요새(要塞)를
만들었지만,
자신의 영혼 앞에서는
언제나 피해망상증 환자였습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일을 했다 해도,
남겨진 것은 영웅의 무상함을
보여준 것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하기에,
더도 말고 덜 더 말고
물 같은 사람이 되게 하셔서,
늘 그 분을 만남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므로,
필요를 채워주는
소망(所望)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007년 6월 24일 단오제 마지막 날 강릉에서 피러한이 <성지순례3>
사진허락작가ꁾ포남님 박상준님 lovenphoto님 크로스맵사이트
이스라엘을 떠나는 날 가이드는
헤롯 대왕의 무덤을 고고학 팀이 발견했다는
속보(速報)를 우리에게 먼저 알려주었다.
나는 헤롯만큼 엽기적인 지도자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평소 많이 했었다.
그는 왕조를 배반하고 로마의 앞잡이가 되면서
가장 잔인(殘忍)한 독재자가 되었다.
정권을 위해 유대사람이었던 처자식까지 죽이고,
예수 탄생 때는 후에 자신의 정적이 될까봐
아이들까지 죽였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건축(建築)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었다.
역사만큼 상처 깊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再建)할 뿐 아니라,
마사다는 왕권을 위해 더욱 요새화 했고,
헬라의 신전(神殿)들은 셀 수없이 많이 지었다.
그 많은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혁혁한 공은 역시 모든 악조건
속에 있었던 가이사랴(Caesarea)를 가장 아름다운
항구(港口)도시로 만든 일이었다.
사람들이 가이사랴 항구를 보고
외적인 미(美)에 놀라고,
건축 과정들을 들은 후에 또 놀란다.
전문가들조차 파도가 심한 이 곳에
돌로 바다를 메워 인공항을 만들고 그 위에
성벽과 여러 망대를 건설했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 신(新) 도시 텔아비브를 지나
헤롯의 역작인 가이사랴 항구에 도착하여
지중해 바다를 바라볼 때
나는 모든 피로가 일순간에 씻겨 나간 듯,
순간 황홀하기까지 했다.
예수 탄생 당시 로마 황제는 헤롯왕에게
불모지 같은 이 지역을 하사(下賜)하자,
그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공법으로 10여년 만에 만든 후,
로마황제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Caesarea)’라 명명하자,
황제는 그곳을 유대 지방의 행정과
정치 중심지로 사용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은
가이사랴 안에는 로마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최첨단 시설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가이사랴에는 당시 아고라라는 시장(市場)과
공중목욕탕, 원형경기장과 원형극장까지
당대 최고의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들이 즐비했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은
5천 명 이상 앉을 수 있도록 만든
원형 야외극장이었다.
물론 이 극장은 헤롯이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로마사람들은 어딜 가나 가장 먼저
야외극장(野外劇場)을 만들곤 했었다.
요르단 페트라에서도 순전히
돌로 깎아 만든 야외극장은 극장이 아니라
무슨 예술작품을 무더기로 산 속에
옮겨놓은 듯 정교하게 깎아놓은 것을 보고서
새삼 로마의 국력이 실감났었다.
특별히 가이사랴 야외극장은 무대 중앙으로
나가 말을 하면 구석구석 모든 좌석까지
들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에,
우리 팀에서도 즉석으로 중창을 했는데
다른 순례자(巡禮者)로부터
금방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던 것이다.
이렇듯 가이사랴에 있는 많은 시설물들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도 대단했지만,
그 중에서도 로마식 수로(水路)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헤롯은 사막과 같은 마사다에서도
지하수로(地下水路)를 만들었고,
황량한 가이사랴에서도
멀리 갈멜산 줄기부터 도수교를 만들어
물을 끌어와 사람 사는 도시로 만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기름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듯이, 모든 것이
다 구비된 도시라도
물이 없으면 공동묘지와 다를 바가 없다.
비행기(飛行機) 안에서
코에 호흡이 있어야 사람이지,
호흡이 멈추는 그 순간 사람은 화물로 전락된다.
이렇듯 물은 우주(宇宙)가 되고 있다.
사람과 짐승, 자연(自然)
그리고 일(work)속에서 물이란
하루만 없어도 살 수 없는 생명 자체가
되고 있기에 사람들은 옛날부터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물이란 이렇게 삶의 모든 근원이 되고 있기에,
일상 속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지
않아도 다 알고 있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이러한 물리적인 필요성보다는
더 밀접한 삶의 진리(眞理)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먼저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진리다.
뭐가 막혀있어도 따지지 않고
밑으로 흘러가다보면
사람들은 물처럼 평온함을 느낀다.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물은
특별(特別)한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흘러가는 동안에
떨어지고 부딪치고 깨지면서
원래 자신의 모습을 잃게 되지만 그 사이에
더럽게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정화(淨化)시켜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흐르는 물은
내려가면서 필요(必要)에 따라
생명을 공급해 주면서,
냇물이 강이 되고 강은 바다가 되고
바다는 세상이 되므로,
물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물(水)은 물이요, 산(山)은 산이다’
라는 어떤 분의 격언이
요즘 들어 더 생각나는 것은,
각박한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은 많지만 도무지
그런 물 같은 사람이 없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헤롯은 안타깝게도 가장 아름다운 항구를
건축하여 사람들에겐 오아시스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바이블에 나오는 많은 사건의
주 무대가 되었던 역사 깊은 곳의
개척자였건만 어찌된 일인지
정작 가기 자신만은 불충한 사람이 되었다.
곧 헤롯은 다른 어떤 왕보다
자의든 타의든 아니면 섭리든 간에
신과 교제할 많은 기회(機會)가 있었음에도,
만남은커녕 오히려 대적했고 핍박자가
됨으로 가장 불행한 왕이었다는
것은 가이사랴가 발굴되면서
온 천하에 공개(公開)되었던 것이다.
고고학자들이 가이사랴를 발굴할 때
놀랄 만한 유물과 유적을 많이 발견했지만,
그 중 돌에 새겨진 특별한 기념비가 하나있었다.
비(碑)에는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이것은 예수를 재판했던 로마 총독
빌라도가 이 곳 가이사랴에
주재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니었겠는가.
저주도 대물림된단 말인가.
아버지 헤롯은 피해망상증 환자처럼
유아들을 잔인하게 죽였고,
헤롯의 아들은 세례요한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조롱했으며,
그의 손자 헤롯은 야고보를 죽였다.
그리고 헤롯의 증손자
아그립바 2세는 14년 후에 바울을 심문했다.
모든 사람에겐 기회(機會)가 있다.
그렇다고 그 기회를 다 잡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불공평한 삶이지만
살아가면서 역전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헤롯과 같이 많은 호조건(好條件) 속에서도
기회를 원수로 바꾸는 사람도 있다.
헤롯은 뛰어난 외교관이었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로마가 원하는 일이란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했었지만,
정작 신(神)이 원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만든 가이사랴는
지중해안에서 가장 번성하던 도시요,
역사적으로 수많은 일들과 함께
기독교적으로도 유서 깊은
곳이었지만,
헤롯은 이 모든 기회들을
자신을 위한 영광만을 위해 사용했지,
정작 본질적인 인생의 주인 앞에서는 포악한
영웅의 무상함 외에는 보여준 것이 없었다.
사람은 남이 알아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 절대자 앞에 가야하므로 항상
세 가지를 염두하며 살아야만
성공 속에서도 실패하지 않는 인생이 될 수 있다.
먼저 영혼(靈魂)을 생각해야 한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영혼은 육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육체란 영혼의 옷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죽음(死)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싫어하지만,
예고 없이 필연적으로 다가오므로
항상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절대자(絶對者)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그 분 앞에 서는 일도 피할 수가 없다.
주여,
헤롯은 뛰어난 기회주의자였으며,
스스로 산성과 요새(要塞)를
만들었지만,
자신의 영혼 앞에서는
언제나 피해망상증 환자였습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일을 했다 해도,
남겨진 것은 영웅의 무상함을
보여준 것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하기에,
더도 말고 덜 더 말고
물 같은 사람이 되게 하셔서,
늘 그 분을 만남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므로,
필요를 채워주는
소망(所望)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007년 6월 24일 단오제 마지막 날 강릉에서 피러한이 <성지순례3>
사진허락작가ꁾ포남님 박상준님 lovenphoto님 크로스맵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