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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회복

유앤미나 2008. 3. 31. 14:13

태풍(颱風)과 회복
갑작스런 강풍과 폭우는
너울성 파도까지 몰고 오면서,
한 순간에 강원도 영동(嶺東)지역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강원도 상징이라는 소나무는
대형 산불과 수해라는 모든 자연재해와
온갖 병충해까지 이겨냈건만 이번
돌풍에는 이겨내지 못하고
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져 버렸다.
그 다음 날 물이 빠지자 거리는 온통
토사와 쓰레기더미로 뒤덮였다.
바닷가 횟집들은 깨진 유리를 치우면서
하늘을 원망(怨望)하듯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풍 ‘루사’ 이후 최고기록을 갈아치운
이번 폭우 피해는 기상이변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언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태풍은 이렇게 이미 계획된 무슨 행사처럼
당당하게 찾아오듯이, 우리네 인생도
예의치 않는 수많은 돌풍들이
불어와 당혹케 하고 고통을 주고 있다.
이러한 고난은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만약에 인생에서 시련(試鍊)이 없길
기도한다면 그것은 신앙을
빙자한 기복(祈福)적인 종교일 뿐이다.
문제는 인생에서 외적인 환난이 아니라,
그것을 반응(反應)하는 자세에 따라
해(害)가 되기도 하지만
반면에 이득(利得)이 될 수도 있다.
기업들도 침체나 불황(不況)이라는
폭풍을 만날 때 더 성장하는 곳이 있었고,
그만 쓰러지는 기업이 있는 것은 오직
시련에 대처하는 자세에 달린 것이다.
우연(偶然)이란 세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곧 모든 고난이 그가 주관하심을 믿는다면
고난도 분명한 목적(目的)과 더불어
계획이 있다는 사실이다.
폭풍 뒤에 고요가 찾아온다고,
아무리 거친 광풍이 불어도 곧
평온이 찾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기에
어부(漁夫)들은 폭풍이 불면 초조해
하지 않고 그 날을 준비하고 있다.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그 시간은
결코 인생의 낭비(浪費)가 아니라,
평소 미루었거나 부족했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먼저 인생의 폭풍이 불 때 우리는
내면(內面)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어떤 작가는 인생폭풍을
이렇게 비유(比喩)한 적이 있었다.
‘신은 인간에게 보통(普通) 때는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이 말씀하시지만,
고통을 당할 때는 확성기로 말하듯
누구나 알아듣도록 크게 말씀하십니다.’
배가 부를 때는 그 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
개인적인 폭풍들을 만날 때는
그의 음성(音聲)은 다시 크게 들려진다.
그러므로 자신이 과거에 고생했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만 놓을 수 없는 것은,
그런 고난(苦難) 중에서도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말 그대로
죽도록 고생(苦生)만 한 것이지 정작
본인에게는 아무 유익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은 고난(苦難)을 통하여 거듭난다.
인생의 폭풍을 통해 음성을
듣는 사람은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계획성 있게
살아갈 수 있지만, 그러한 고통을
통해서도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고집 세고 말만 많은 교만한 사람이 된다.

요나는 그의 음성(音聲)을 무시하고
다시스로 갔다가 인생의 방향과
삶의 목적까지 상실했다.
인생에서 방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새삼 말할 필요(必要)가 없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한다 해도,
비전도 있고 존경까지 받는다 해도
방향을 상실한 사람에게 모든 수고들은
열매로 연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대풍(大風)을 만나면서
다시 그의 음성이 들려지므로
변질에서 변화(變化)로,
상실에서 회복(回復)의 길로
돌아설 수 있었다.
욥도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苦痛)을 겪었지만
그것이 그의 귀와 눈을 열게 했다.
결국 시련(試鍊)은 사람을 실패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그들의 작은 소리까지도 무슨 의미인지를
깨우치도록 도와주는 가장 가치 있는
신의 선물(膳物)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론 태풍(颱風)은 인생을
뿌리 깊은 나무로 만들어 주고 있다.
겉보기에는 튼튼한 한 그루 나무가 있었다.
그러나 그 나무는 바람만 불면 전체가
흔들리는 약한 나무였다.
그런 자신을 다른 나무들이 무시할까봐
그는 기회만 되면 새 가지들을
더 멋지게 만들어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큰 태풍을 만났다.
그는 뿌리 채 흔들리는 바람 앞에
넘어지기 직전에 옆 나무의 도움으로
무사히 그 위기(危機)를 넘겼다.
‘아니, 자네는 어떻게 그런 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가.’
‘그거? 아주 간단한 일이야.
자네가 가지에만 정신 팔려 있을 때,
나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

똑같은 태풍(颱風) 앞에서도
뿌리의 깊이에 따라 피해가 달라진다.
이것은 지진(地震)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난 번 인도네시아의 지진에서 특별히 큰
피해를 입은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그들이
집과 건물을 지을 때 내진설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발견된 것이다.
진도 7도 이상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처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인생에서도 뿌리가 깊이
박히어 있어야 한다.
결국 인생이란 어떤 기초 위에
세우느냐에 따라 큰일을 만날 때
대처능력이 결정되는 것이다.
인생을 반석(盤石)위에 세우려면
수십 배 노력이 요구되지만,
모래 위에 짓는 집은
순식간에 지을 수 있어서 좋지만
바람이나 홍수가 날 때 문제가 생겨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 당장 편하다고 모래 위에
세우듯 모든 일에서 기초를 무시하고
손쉽게 넘어가려고 하지만 우리는
이 속담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공을 들여 기초를 든든하게 건축하면
어떤 시련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뿌리에
대해선 무시할 때가 더 많다.
뿌리가 깊어야만 쓰러지지 않는다는
근본적(根本的)인 의미보다는,
인생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길 원하고,
풍성한 삶의 열매를 바란다면
반드시 뿌리가 깊어야하기 때문이다.
내일(來日)이란 불확실한 시간이다.
아무리 재난 대응 시스템으로
폭풍들을 대비한다 해도
인생은 언제나 허점(虛點)투성이다.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 미래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섭리적인 관점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뿌리를
더 깊이깊이 내려야 한다.

주여,
기다림이라는 고통과
예의치 않았던
수많은 태풍(颱風)들로 인해,
저는 너무 불공평(不公平)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도 쳐보았지만
...
헌데 그 일들은
내 어떤 힘과 지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또 지나고 보니 그러한 바람들이
저를 더 안전한 항구(港口)로
인도하셨음을 안후로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폭풍으로부터 보호하신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은신처가 되어 주셨다는
사실 앞에서
감격하며 서원(誓願)합니다.
2006년 10월 29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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